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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준 Jan 08. 2022

의형제의 아무 생각 없는 제주도 여행기

귤 농장 결의라도 해야 하나

제주도 여행의 마음가짐


나에겐 의동생이 한 명 있다. 후한 말 삼국지 시대도 아닌 21세기에(로봇이 대신 운전하고, 가상 인간이 광고를 꿰차는 이 시기에) 무슨 놈의 의형제냐고 비아냥거릴 수 있지만, 어쨌든 나에겐 의동생이 있다.


 그는 나보다 한 살(정확히 말하면 7개월 늦게 태어났다) 어리고, 나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며, 훨씬 더 의지가 강한 남자이다. 35년을 한동네에서 살아온 탓인지 서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나와 마찬가지로 ROTC로 입대하여 중위로 제대했고 나와 같은 업계에 입사하여, 나와 같은 업계로 이직했다.


 의동생 C군에게 2021년은 꽤나 힘든 한 해였다. 하프 마라톤을 손쉽게 완주하던 그가 큰 병에 걸렸다. 마침 나는 그즈음 휴직 중이었고, 나 또한 이런저런 사건에 맞서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힘든 시기에 서로 의지했고, 함께 낄낄거리며 2021년을 이겨냈다.

 

2022년 새해,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새해를 희망차게 맞이하자는 다소 거창한 슬로건을 걸고 출발한 제주도 10박 11일 여행.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1월 7일(금). -  DAY 1


서울에서 제주도를 가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1.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하여 렌터카를 빌린다.

2.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하여 (탁송 보낸) 자신의 차를 사용한다.

3. 인천에서 Beyond Trust 호를 타고 소유한 차량과 함께 제주도에 도착한다.


우리는 3번을 택했다. 첫 번째 이유는 3 방법의 비용이 모두 같다는 것, 두 번째 이유는 소요 시간(14시간) 때문에 다시는 배편으로 제주도를 갈 것 같지 않다는 것. 세 번째 이유는 일출을 보기 위해.


스크린 골프를 치고 늦은 점심을 먹은 후, C군의 차를 타고 인천항을 향했다. 금요일 저녁의 차량 혼잡을 피하고자 일찍 운전대를 잡았지만, 정체는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었다. 덕분에 차이나타운의 맛있는 짜장면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했다.


배는 생각보다 컸고, 기대보다 불편했다. 세월호의 4배 크기인 Beyond Trust 호는 취항한 지 한 달도 안된 신참 선박이다. 25노트(약 40km/h)의 속력으로 서해를 질주했고, 정확한 시간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안에 WiFi가 없다는 것, 오락실 게임이 킹오파 98이라는 것(차라리 97을…), 더 하우스 오브 데드가 1500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철저히 주관적으로) 내부 편의시설에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우리는 가져온 책을 3page도 읽지 못하고 커피만 연신 들이키며 정치 이야기와 연애 이야기와 건강 이야기와 골프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여행지에서 책을 읽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급하다.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책을 읽을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다. (성급한 일반화일까요. 경험자의 여행지에서 책 읽기 노하우를 공유해주시면 잘 참고하겠습니다.) 아무튼 나는 내가 전형적인 우리나라 사람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쨌든 자기 전에 글로 남겨두고 싶은 말은 의형제가 있어서 참 좋다는 것이다. 35년을 함께 한 내 동생 C군.


 우리는 정치색도 상반되고, MBTI도 정치만큼 그 간격이 크다. 하지만 나는 그 앞에서 어떠한 주저함도 없다. 술을 끊은 그 앞에서 열심히 맥주를 마셔대면서도,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다시 한번 술을 들이켜면 곡소리 나게 패주겠다고 말한다.


 술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C군을 앞에 두고 “이 진토닉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야”라고 놀려대는 동시에, “너 술 먹으면 가만 안 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 그게 의형제가 아닐까. 서로 장시간 아무 말이 없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사이. 그런 동생. C 군이 있어서 행복하다. 2022년에도 우리가 함께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그가 술을 참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어느 정도 짐작한다. 그런 그에게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고 싶지 않다. 의형제라는 건 그런 게 아니다.



 C 군이 술을 마시고 싶은데, 참는다는 걸 알면서도(다시 말하지만, C군은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 맥주캔을 손에서 놓는 적이 없는 애주가였다)  “술은 백해무익하고, 결국은 돈만 버리는 거야”라는 가식적인 멘트로 그를 대우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의형이니까.


 “술을 미친듯이 마시고 싶겠지. 그리고 지금 이 루프탑에서 내가 마시고 있는 진토닉은 죽여주게 맛있다. 하지만 넌 마시면 안 된다. 내가 가만 안 둔다. 그러니 참아라. 그뿐이다.”라고.


나에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의동생이 있다. 그는 지금 우리 집 반려견 태리도 안 먹을 것 같은 쓰디쓴 차를 마시고 있다. 썩소를 지으며.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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