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n 매거진 Jun 29. 2023

[워케이션 in 발리] 워케이션의 중심, B Work

24시간 공유 작업실 ‘비워크’는 디지털 노매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덴> 취재진이 비워크를 방문한 날, 회의실에서는 여성 독립 개발자들의 주간 정기 모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발리에 거주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외국인 여성들이 주요 멤버다. 다른 방에서는 비워크가 제공하는 대형 모니터와 자신의 노트북을 나란히 펼쳐두고 코딩이나 영상 편집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음 처리된 1인 부스에서는 두 건의 화상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건물 입구 카페와 야외 수영장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로, 이용자들은 벤치에 앉아서 환담을 나누거나 선베드에 누워 각자의 노트북으로 일을 했다. 완전한 정적과 백색 소음 중 어느 쪽이 집중에 도움이 되는지는 작업자의 성격과 업무 특성에 따라 다르다. 비워크에서는 소음과 개방 정도를 단계별로 구분해 이용자가 원하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공간 특성상 부서 단위의 단체 워케이션을 진행하기도 적합해 보인다.



압도적 프로페셔널 공유 공간 B WORK


우붓, 스미냑, 사누르 등 발리의 관광 거점에는 어김 없이 공유 작업실이 있다. 이용자들은 가정용 인터넷이 불안해서, 기분전환차, 장시간 작업의 피로를 덜어줄 수영장과 정원을 찾아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 단체 모임을 위해서 등 여러 이유로 공유 작업실을 찾는다. 스캐너, 팩스 등 간단한 집기만 제공하는 카페에 가까운 곳도 있고, 나름대로 사무실 분위기를 낸 곳들도 있다. 아티스트들을 위해 영감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 공간도 있다. 그중 압도적으로 프로페셔널한 공간이 비워크다.


비워크가 자리한 짱구는 발리에서도 가장 젊고 활기가 넘치는 지역이다. 발리 서안은 수심이 얕으면서도 큰 파도가 쳐서 초보부터 세계 최고의 프로들까지 다양한 수준의 서퍼들이 모이는 곳이다. 서핑 관광지는 공항에서 가까운 꾸따를 시작으로 스미냑, 짱구, 타바난 등 북쪽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가장 먼저 개발된 꾸따가 배낭 여행객을 타깃으로 했다면 스미냑은 ‘발리의 청담동’이라 불릴 정도로 고급 호텔과 해변 클럽이 즐비한 곳이었다. 짱구는 기존 발리 번화가의 성패를 학습한 결과로 탄생했다. 낭만을 좇아 해변에서 뒹굴며 허름한 티셔츠로 사시사철을 나지만 사실은 구매력 높은 젊은 서퍼들이 이곳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들은 대형 클럽 보다 작고 개성 있는 공간에서 파티를 즐기고, 프랜차이즈 보다 나만 아는 작은 카페를 좋아하고, 명품 브랜드 보다 희소성 있는 로컬 부티크에 비용을 지불한다. 여기에 우붓의 요가, 오가닉, 채식 문화까지 끌어들이면서 짱구는 발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떠올랐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커스텀 바이크를 모는 남자들, 청바지 브랜드 모델 같은 여자들, SNS 인플루언서들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대형 리조트 보다 작은 렌탈 빌라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이런 젊은 인구를 위한 편의시설이 빠르게 갖춰지면서 짱구는 다양한 장기 거주자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쯤되면 그 자신이 힙스터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발리의 엑조틱함을 누리는 동시에 대도시의 유행과 감각을 따라잡아야 하는 디지털 노매드에게 짱구는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때문에 이곳에 위치한 비워크도 의외로 진지한 분위기를 띤다.



“비워크의 최대 수용 인원은 332명입니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해 멤버 수를 수용 인원 보다 적게 유지합니다. 

비워크는 2021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 판데믹 기간에는
회원 가입 대기자만 300명에 달했어요. 
주변 상업 시설과 공유 작업실들이 폐업을 할 때 비워크는 오히려 가격을 
30% 올렸습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보다 목적이 확실한 사람들이 모이기를 바랐거든요. 

집중할 공간이 필요한 정예 멤버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는 편이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어갔더니
나중에는 떠드는 회원이 있으면 자기들끼리 조용히 시키는 상황이 되더군요.”



비워크 매니저 제시카의 설명이다. 이 전략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개관 이래 비워크에 대한 사용자들의 유일한 불만은 회원 가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기 기간은 2주까지 줄어든 상태다. 단기 여행자라도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단 가입이 통과되면 회원들의 만족도는 다른 공유 작업실과 비할 수 없이 높다.



휴식은 일의 중단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의 필수 과정


발리에는 유럽, 북미 여행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거래처도 다른 대륙에 있기 십상이다. 시차 때문에 비워크는 24시간 운영을 한다. 줌 회의가 보편화되면서 1인 부스 수요가 폭증하자 비워크는 1인 부스를 대거 확충했다. 인플루언서, 온라인 쇼핑몰 창업자 등을 위한 촬영 스튜디오 역시 비워크가 사용자를 깊이 고민하고 분석한 흔적이다. 스튜디오는 카메라만 가져오면 촬영이 가능하도록 조명, 배경 등 다양한 보조 장비를 갖추었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사무용 의자가 구비된 널찍한 공간들, 거기서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들은 여기가 발리가 아니라 여의도나 판교 어디쯤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혼자 호텔 방에서 작업을 하거나 외부 카페의 느슨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긴장, 자극, 집중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애초에 이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올 이유가 없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좇아 발리에 온 사람들이라면 휴식이 ‘일의 중단’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필수 ‘과정'임을 깊이 이해할 것이다. 비워크는 다양한 행사와 운동, 체험, 여행 프로그램으로 이를 돕는다. 한 편으로 이런 프로그램들은 프리랜서나 1인 여행자들에게 가장 결핍되기 쉬운 사회적 연결감, 나아가 소속감을 제공해준다. 이건 외국에서 친구 사귀고 놀러 다니는 일이 어색한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특히 반가운 소식이다.


비워크에는 널찍한 루프탑 요가 스튜디오가 있다. 발리 우붓에서 아메리칸 스타일의 역동적인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명성 높은 래디언틀리 얼라이브(Radiantly Alive)가 이곳 운영을 맡고 있다. 짱구 지역 유명 요가 스튜디오의 ‘우리가 근본이고 불평하면 당신이 바보'라는 식의 거만한 태도에 질린 요기들은 이 결정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 비워크의 요가 클래스는 매일 열리고 비회원도 이용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비워크에서는 정기 무에타이 강좌가 열리고, 회원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탁구대가 있다.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세미나, 창업과 비자 컨설팅, 발리 외곽으로의 여행도 자주 기획된다.



“비워크는 생산성 최대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만 하는 건 원치 않아요. 며칠씩 밤을 새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그래서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게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고요.”



매니저 제시카의 설명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특별한 프로젝트 공간


남다른 규모, 전문성, 최신 설비, 안정된 운영에서 눈치챌 수 있듯 비워크는 기존 발리의 공유 작업실들과는 다른 성격의 자본이 투입된 곳이다.



“비워크의 ‘B’는 ‘베어(Bear)’의 이니셜이었습니다.
대웅제약의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에서 투자부터 운영까지 직접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체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B’를 발리, 뷰티풀, 비즈니스 등 다양하게 해석하죠.”



비워크 서창우 대표의 설명이다. 그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이 공간에 한국 기업이 연관되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목요일 오후에는 공간이 70% 가량 차 있었는데 한국인 이용자는 없었다. 대웅제약은 인도네시아에서 제약, 바이오, 의료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발리에서도 클리닉을 운영한다. 그중 비워크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특별한 프로젝트다. ‘이 지역에서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라는 단순한 발상이 출발점이었다.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면 흔히 기부와 후원 같은 직접적인 방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의 소비자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고 큰 규모의 해결책을 수립해 실천하는 것, 이를 통해 긍정적인 문화를 만들가는 것도 기업의 중요한 역할이다. 현재 비워크의 수익은 전액 재투자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실 사용자들의 수요를 파악해 꾸준히 시설을 보완했고, 대기 인원을 줄이기 위해 또 한 차례 증축을 예고하고 있다. 인근에 비워크와 연계한 공유 주택도 건설할 계획이다. 워케이션을 위해 발리에 온 사람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주거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업무 공간과 생활 공간을 효율적으로 분리하는 건 워케이션의 성공 비결이다.





현대인은 밤에도, 주말에도, 휴가 때도 끝없는 울려대는 메신저와 이메일 알람음에 정신이 없다. 노트북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가 되었다. 우리가 휴가 때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일터를 휴가지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물론 아직은 이를 허락하는 직업군이 많지 않다. 판데믹 기간 기업들이 재택 근무를 허용하면서 장기적으로 직장 문화가 바뀔 거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많은 기업들이 판데믹 종료와 동시에 과거로 돌아갔다. 특히 한국처럼 휴가가 짧고, 대면 소통과 구성원간 유대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직장인이 워케이션을 꿈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의 주택난과 높은 물가, 노동인구 감소, 젊은 세대의 의식 변화를 고려하면 변화는 필연이다.

올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MZ세대가 취업에 가장 우선시하는 요건이 ‘워라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20~30대 827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36.6%가 취직하고 싶은 기업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기업'을 꼽아 ‘월급과 성과 보상체계가 잘 갖추어진 기업(29.6%)’, ‘정년 보장 등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기업(16.3%)을 앞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비워크의 행보는 단순한 공간 비즈니스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라이프스타일 실험처럼 보인다.


사용자 입장에서 비워크는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해외 생활에 긴장을 불러넣어주는 공간이다. 서울의 공유 작업실들이 개인이나 소그룹 단위로 구획된 독립 공간 위주인데 반해 연결된 책상이 많은 비워크에서는 서로의 열정이 쉽게 전달된다. 책상 각각의 크기가 널찍해서 사적 거리는 충분히 유지된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무언가에 몰두하여 눈을 빛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마주칠 것이다. 마음 속에 사표를 품고 마지 못해 출퇴근하는 시들시들한 직장인이 아니라 삶의 방향타를 제 손에 거머쥔 사람들의 건강하고 적극적인 에너지가 대기에 흘러 넘친다. 그들 사이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 자체가 당장의 업무 못지 않게 중요한 경험이 된다. 그리고 일을 마치면 당신은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카페, 부티크, 열대 식물 들이 있는 거리를 10분 정도 걸어서 해변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에서 노을을 보며 맥주를 마시거나 서핑을 할 것이다.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취재 협조 : 비워크 
Jl. Nelayan No.9C, Canggu, Kec. Kuta Utara, Kabupaten Badung, Bali 80361
bwork.id
work.bali@gmail.com
+62-817-797-908


https://www.youtube.com/watch?v=KxxkS_3KWqg




ㅣ 덴 매거진 2023년 7월호
글 이숙명(작가, 발리 거주)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https://www.theden.co.kr/

작가의 이전글 2023 발리 여행 필수 TIP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