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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Aug 04. 2023

선마을 목공방에서 만난 사람

선마을 인터뷰

일상을 벗어난 여행에선 다양한 사람을 마주한다. 때론 타인의 인생을 엿보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목공은 자연과 호흡하는 시간이다.
섬세한 결을 따라 완성되는 작품 세계에 매료됐다




강대윤
1971년생
대우건설 상생협력팀 팀장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쬐는 여름날, 선마을 목공방에 한 중년 남성이 찾아왔다. 단정한 폴로셔츠에 반듯하게 다림질한 베이지색 바지, 광이 나는 가죽 신발. 처음 마주한 그의 모습은 깔끔함과 댄디함을 겸비한, 중후한 멋이 나는 영락없는 도시 남자였다. 시계로 치면 시침과 분침이 바쁘게 움직이는 아날로그 시계보다 불연속적인 0과 1의 조합으로 시간을 나타내는 체계적인 세련미를 갖춘 디지털 시계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랄까.


선마을 목공방의 손님은 대부분 오랜만에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길에 오른 중년 여성이나 워크숍, 단체 여행을 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중년 남성의 목공방 방문이라니 ‘혼자 온 걸까?’, ‘왜 온 걸까?’ 생소하고 어색한 광경에 한참을 눈여겨봤다. 도마나 책꽂이 같은 간단한 작업을 위해 방문한 손님이겠거니 치부했다. 하지만 평범한 나무판자를 금세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섬세한 솜씨는 가히 전문가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선마을에서 만난 첫 번째 여행자, 그는 대기업에 다니는 25년 차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다면?

대우건설에 1998년도에 입사해 25년째 재직 중이고, 현재 부장으로 상생협력팀 팀장 직책을 맡고 있다. 주로 하는 업무는 대외 협력과 정책, 제도 개선이다.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토목 공사 현장에서 시공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중년 남성이라면 으레 골프, 캠핑, 여행 같은 취미를 즐기지 않나. 목공을 선택한 특별한이유가 있나?

골프나 캠핑 같은 취미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특히 나처럼 대인 접촉이 빈번한 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잡생각을 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휴식이 꼭 필요하다. 목공은 머리는 쉬고 몸은 움직이는 단순한 활동이라 좋다. 그리고 아버지가 목수이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해 목공이 친숙한 편이다.



역시 초보자 실력으로는 느껴지지 않더라. 아버지는 어떤 목수이셨나?

아버지는 건축 목수이셨다. 목수는 크게 '소목수', '대목수'로 구분한다. 작은 소품이나 조각품을 만드는 목수를 소목수라고 하고, 주택이나 한옥을 짓는 목수를 대목수라고 한다. 아버지는 주택을 건설하는 대목수이셨다.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선택이었나?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토목공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또래에 비해 전공을 빨리 선택한 편인데, 아무래도 아버지가 목수이다 보니 어린 시절 함께 산에 올라간 적이 많다. 그때 아버지가 나무 이름, 쓰임새 등 나무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동년배에 비해 비교적 나무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이라고 자부한다.(웃음) 자작나무가 왜 자작나무인 줄 아나. 불에 넣으면 자작자작 소리가 나면서 타기 때문이다. 재밌지 않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무에 대한 소소한 지식이 쌓이니 산이 좋고 나무가 좋고, 자연이 더 좋아지더라. 그래서 목공을 취미로 선택했다.


목공 솜씨가 예사롭지 않더라.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다른 편이었나?


아주 어릴 때는 자투리 나무로 탱크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아쉽게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지금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국민학교 시절에 방학만 되면 빠지지 않는 숙제가 ‘만들기’였다. 그때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작품을 제출했다.



나무는 단단함과 유연함을 함께 지닌다.
그 속에서 새어 나오는 보이지 않는 온기는 마음속 깊은 곳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나무가 주는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나 되는 시간, 그게 바로 진정한 목공이다.






애착이 가거나 자랑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

하나만 꼭 짚어 말하긴 어렵다. 숟가락, 젓가락, 국자 이런 건 기본으로 만든다. 밥그릇도 가능하다. 한창 캠핑을 즐길 땐 빛 세기 조절이 가능한 목재 전등도 직접 만들었다. 아, 최근에 차량용 콘솔 트레이를 만들었다. 스피커는 물론 작은 물건을 올려둘 수 있어 아주 요긴하게 사용 중이다.


마치 1980년대 흥행한 추억의 외화 <맥가이버>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다. 일일이 만들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시중에 판매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기능이 없거나 쓸데없는 기능을 추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기능을 넣어 가구나 소품을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그 뒤로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게 됐다.



목공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그린 도안을 구현하는 작업이다.
아버지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도면을 설계하고 평면화되어 있는 도면을 하나의 외형으로 완성해 가셨다.
0에서 시작해 완벽한 1을 만들어가는 작업,
진정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일이다.






최근엔 도심 어디서도 목공이 가능할 정도로 공방이 넘쳐난다. 굳이 서울에서 먼 선마을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보통 대부분의 공방은 작은 소품이나 조각품을 만드는 우드 카빙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난도가 높거나 지금 만들고 있는 테이블처럼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품을 제작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이런 점에서 선마을은 작은 소품부터 의자, 테이블 등 비교적 크고 고급스러운 가구 제작도 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을이 고립되어 있어 집중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일반 공방에 비해 최신 설비를 많이 들여 놓았다. 목공 하기에 좋은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혹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종의 도피처로 삼은 건 아닌가?

도피는 아니다.(웃음) 정말 도피하고 싶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선마을 여행은 또다시 현생을 잘 살아내기 위한, 일면 충전의 시간이다.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풀고 오히려 이곳을 찾을 땐 모든 걸 비우고 오자’ 이것이 내 철칙이다.





목공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나?

인내심이다. 목공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무엇보다 마음을 비우는 게 우선이다. 온전히 나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도 사람과 같다. 저마다 지닌 성질과 성격이 다르다. 아무리 인내심을 갖고 오랜 시간 좋은 도구, 좋은 설비로 뚝딱거려도 나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내가 원하는 작품을 구현할 수 없다.


목공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시작하기 어렵다면, 대나무로 만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먼저 가장 만들기 쉬운 젓가락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아라.



대나무 목공은 생소하다

대나무는 일반적인 목공예에 쓰는 체리, 월넛 같은 나무에 비해 비교적 유연하고 부드러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구하기도 쉬운 편이다. 젓가락을 공정하는 방법이 가장 쉽다. 그냥 긴 대나무를 반으로 가른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조금씩 깎아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젓가락 하나가 뚝딱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대나무 공예는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그러다 점차 목공에 흥미가 생기면 나무를 활용해 본격적으로 작은 소품 만들기부터 하나씩 도전하는 거다. 목공도 시간과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하면 된다.


목공을 취미를 넘어 제2의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늘었다. 혹시 본인도 목수를 꿈꾸나?


다른 중년 남성도 그렇겠지만, 은퇴 이후 하고 싶은 건 많다. 하지만 가장 큰 목표는 아버지처럼 내 손으로 직접 한옥을 지어보는 것이다. 아직 한옥을 지어본 경험이 없다. 도면 작업부터 완공까지 내 손으로 하나하나 완성해 가고 싶다. 또 한 가지는, 숲 해설사다. 산을 다니면서 나무와 꽃에 대해 강의하는 직업인데, 몇 시간 강의만 수료하면 취득할 수 있어 요즘 제2의 직업으로 많이 선택하는 추세다. 나는 은퇴 후에도 나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본인이 매료된 나무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앞서도 말했지만, 나무는 저마다 그 성격이 다르다. 질감부터 색감, 그리고 나무에서 느껴지는 감각까지. 이런 다양한 느낌이 나무에 흥미를 갖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삶과 죽음. 인간은 느끼지 못하지만 세상 모든 나무는 본래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베이며 온갖 시련을 겪고, 결국 생명력을 잃는다. 삶과 죽음으로 연결되는 모습이 우리 인생과 닮았고 생각한다.




PHOTO ⓒ KANG DEA YOON
그가 직접 제작한 차량용 콘솔 트레이. 목재로 만들어 단단할 뿐 아니라 레일을 활용해 앞뒤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비좁은 콘솔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그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Den>은 두 호에 걸쳐 선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의 유쾌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8월호
글 정보금(하이닥 작가)

에디터 정지환(stop@mcircle.biz) 
사진 한도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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