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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Sep 01. 2023

[인터뷰] 로봇수술 대중화 뒤에 숨겨진 비밀은?

로봇 수술 명의 김욱환 아주대학교병원 외과 교수와의 대담


<Den>이 만난 명의

김욱환 아주대학교병원 췌담도외과 교수 인터뷰


김욱환. 아주대학교병원 췌담도외과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로봇수술 트레이닝 매뉴얼을 만들고, 가이드에 없는 수술법을 고안해 자신만의 방식을 동료들에게 보급하고, 심지어 실비보험 약관의 글자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분석해 환자에게 직접 로봇수술 보험에 관해 설명하는 의사.


김욱환 교수는 뭐든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외과 전공의 때는 공부방을 조직해 후배는 물론이고 선배들까지 공부시켰으며, 배구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의과대학 내 배구 동아리의 인원을 100명까지 불렸다. 또 아이디어가 넘치는 창조적 인간으로서 필요하면 수술 도구까지 제작해 사용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이 남다르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픈 거 하고 사는 사람’으로 이만한 이가 또 있을까? 그가 명의인 건, 하고 싶은 이 수많은 일 중 허투루 임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결단력, 천재적 두뇌, 승부 근성, 강철 같은 배짱 등은 그를 받치고 있는 요소들이다. 이런 요소 덕분에 김 교수는 오늘도 원하는 대로 삶을 살 수 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뭐든 그가 하면 주변에서 도움을 주고 사람이 모여드는 마성의 남자. 이달의 명의 김욱환 교수는 세상을 바꾼 혁명가에 가깝다.



외과의사로 살기로 결심한 계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의과대학 들어가 공부하다 보니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의사 본연의 모습’, 즉 우리가 의사 하면 떠올리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수술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것 없이 환자를 살리는 그런 삶 말이다. 그게 뭘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외과의사였다. 그냥, 의사라면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왜 하필 췌담도외과였나?

그것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 외과를 택하고 트레이닝을 하던 중에 지도교수님이 췌담도 쪽이라 그 분야를 많이 봐오고 공부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췌담도 분야에 한해 수술하는 건 애초에 꿈꾸던 의사 본연의 삶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건 우리 의료체계가 변하면서 벌어진 일이라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예전에는 ‘제너럴 서전’이라고 해서 일반외과가 있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수술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그런 과정을 베이식으로 공부한 뒤 각 분야 외과로 세분화한 일종의 심화 공부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예컨대 일반외과를 공부한 뒤 성형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간담췌외과 등으로 가는 것 말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외과의사 하면 분야는 달라도 기본적인 수술이 가능했다. 아마 그런 시스템 속에서 공부한 건 내가 마지막 세대이지 않을까?


처음부터 분야를 세분화해 공부하면 더 전문화되는 것 아닌가?

글쎄,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든다. 전문화되기는 했지만 중환자를 관리하는 기술은 없어진 것 같다. 의사끼리는 외과의사를 ‘물장사’라고 한다. 물, 그러니까 환자의 피를 채우고, 수액을 채워주고, 전해질을 맞추는 등 일종의 액체를 케어하는 게 외과의사에겐 수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는 중환자를 관리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지금처럼 어느 한 분야만 파고들어 수련하는 시스템으로 가면서 의사 개개인의 중환자 관리 능력이 약해졌다. 예를 들어 ‘물장사’를 할 때도 본인이 주도할 수 없고, 다른 과의 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내 환자를 케어하는 걸 주도할 수 없다는 건 의사로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제너럴 서전 과정을 디폴트로 하는 시스템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외과의사로서 요즘 이슈는 뭔가?

재미가 없다?(웃음) 암을 다루는 각종 수술이 표준화되어 의사로서 삶이 평탄하게 흘러간다. 대학병원이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질환에 따른 생존율이 똑같다. 위중한 수술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가끔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 따라 생존율에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그건 통계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달라진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 누가 수술하나 똑같은 방법으로 하는데 생존율이 좋고 나쁘고가 확연할 정도로 차이 나는 건 말이 안 되는 세상이다. 오히려 수술보다는 항암제의 좋고 나쁨이 암 생존율을 판가름하는 것 같다.


요즘 암 생존율이 높아지는 건 항암제의 영향이 크다는 말인가?

그렇다. 예전에는 수술이 끝난 뒤 항암제 치료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수술 전에 먼저 항암제를 써서 암 크기를 줄여놓고 수술을 하니 생존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항암제도 계속 진화하고 있고, 그에 따른 생존율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결국 수술 방법의 개선보다는 어떤 항암제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시대다.


항암제 싸움으로 가는 트렌드가 외과의사로서 달갑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혁신적 수술 방법을 개발하기에는 이미 많은 부분이 표준화된 터라 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병원에 로봇수술을 도입한 건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걸 싫어한다. 자기 발전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타입이라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내는 수술 방법을 고안한 건 사실이다. 내가 맨 처음 로봇수술을 개발한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잘하기 위해 새로운 로봇수술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어떤 로봇수술 방법을 개발했나?

구멍을 3개 뚫어 수술하는 방법이다. 현재 로봇수술 기기 제조는 다빈치라는 미국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 그 회사가 로봇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수술 가이드를 제공한다. 애초에 다빈치에서는 쓸개를 제거할 때 배꼽으로 구멍 1개를 크게 뚫어 수술하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건 딱 그 수술에 국한해서만 적용할 수 있어 보였다. 배꼽에 구멍을 뚫는 건 보기에도 좋지 않고.


반면 볼펜 심만큼 작은 구멍 3개를 팬티 아래쪽 하복부에 뚫어 수술하면 수술 자국이 노출되지 않아 보기에도 좋고, 수술할 때 몸속 어디라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다른 어떤 수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수술 구멍이 작으니 통증도 덜하다.


직접 개발한 수술법은 표준화됐나?

물론이다. 수술법을 만들고, 때로는 수술 도구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췌장을 위장에 붙이는 ‘휘풀 수술’이나 출혈에 산도스타틴이라는 뇌하수체 종양에 쓰는 약을 적용한 것 등은 내가 원조다. 로봇수술 도입 초기에는 의사를 대상으로 로봇수술 트레이닝 매뉴얼을 만들었고, 실비보험 약관을 공부해 환자와 동료 의사에게 로봇수술을 전파하기도 했다. 보험의 경우,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는 간호사나 코디네이터도 잘 모르니 환자가 답답해한다. 그걸 해결하려고 열심히 로봇수술 관련 보험을 독학했다. 당시엔 나보다 보험 약관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할 때까지 파고들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데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필요한 건 하고 마는 성격이다. 그래서 삶이 피곤하다.(웃음)



외과의사에게 필요한 건 결단력이다.
선택의 순간에 해내는 결단이야말로
외과의사가 의료 현장에서가장 많이 마주하는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극적이진 않다.
외과수술은 대부분 수술 전에 결정된다.
의사는 수술 전에 수술법부터 이후 상황까지 치료를 위한
최적의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외과의사의 시간 중 수술 이전이 가장 치열한 이유다.



많은 걸 개발, 개선하려면 아이디어가 많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남을 따라 하는 것이다. 기존에 있는 것도 따라 하는 걸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의사 3명이 있다고 쳐보자. 그중 누가 하든 차이가 없다면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내가 아니어도 잘 돌아가는 분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느니 나만 할 수 있는 걸 만드는 데 투자하자는 것이 인생 모토다. 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원천 같은 건 없다. 그저 한계가 명확하다고 판단되면 밤새 연구해서라도 극복 방법을 찾고야 만다. 그게 아이디어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내려면 뭐든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남들보다 먼저 경험해 보는 것도 필요하고. 원래 그런 ‘얼리어답터’ 기질이 있었나?

꼭 남들보다 먼저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승부사 기질은 있는 것 같다. 결과를 내야 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성적이 좋았다. 로봇수술을 배울 때도 그랬다. 국내 도입 초기에 다빈치 본사에 일주일간 연수를 간 적이 있다. 로봇수술을 배우러 간 것이었지만 하루 만에 이미 모든 걸 마스터해 버렸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작동하기 쉬웠다.


아무리 적응이 잘됐어도 실전은 다르기 마련이다. 로봇수술을 처음 했을 때를 기억하나?

정말 편했다. 왜냐하면 화면을 거꾸로 뒤집을 수 있으니 내가 보기 편한 방향으로 놓고 수술할 수 있었다. 또 육안으로 보며 수술할 때보다 시야가 8배나 넓어지니 복잡한 수술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쉽게 적응하다 보니 로봇수술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한 건가?

그렇다. 기계를 다뤄야 하는 상황이니 사람마다 적응하는 건 다르기 마련이다. 보통 처음에는 조작하기 어려워한다. TV를 보며 수술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클러치가 있는 데다 수술을 돕는 스태프의 움직임을 능수능란하게 컨트롤하는 것도 굉장히 낯설다. 트레이닝이 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가장 난도가 낮은 수술인 쓸개를 떼내는 수술을 할 때 로봇으로 하는 걸 매뉴얼화했다. 이후 로봇으로 쓸개만 떼내던 동료 의사들이 어느 날부터는 간, 췌장도 제거하게 되더라. 내 판단이 옳았다는 데 보람을 느꼈다.


국내에 아직 로봇수술이 자리 잡기 전, 과감하게 아주대학교병원에 도입했다. 어떤 점에서 확신이 들었나?

2008년 10월부터 아주대학교병원에서 로봇수술을 시작했다. 로봇수술 도입을 내가 주도면밀하게 진행한 건 아니고 찬성파 중 한 사람이었다. 우선 외과 입장에서 굉장히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의사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수술이 쉬워져서 좋고, 의사가 쉽게 수술하면 환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좋고, 또 구멍을 작게 뚫어 수술하니 통증이 적어서 좋고,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니 좋고. 아무리 생각해도 의사와 환자, 병원 모두 윈윈이었다. 도입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장비가 꽤 고가인 데다 새로운 수술 방식을 도입하는 사안이었다.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데 따르는 부담감은 없었나?

음, 성격 자체가 워낙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터라 이런저런 상황이나 변수, 주변의 의견 등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혹자는 한 대에 20억~30억원에 이르는 로봇의 가격 대비 수익이 날지 의문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로봇수술이 과연 인간이 하는 정교함을 구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로봇수술로 인한 실수는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그런데 그건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간이 아무리 완벽하게 수술했다고 해도 다음 날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 그때 의사가 아무리 복기해도 실수한 게 없다면 인간의 눈으로 발견하지 못할 정도의 사각지대에서 아주 미세한 출혈이 발생했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의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뭔가 부정적인 일이 생길 수 있더라도 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지레 겁먹어 봐야 도움이 안 된다. 문제가 생기면 대처를 하지, 미리 걱정하고 대비하느라 해야 할 일을 미루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한 번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자신감이 놀랍다. 그 기저에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사실은 그런 결정을 하기 위해 이미 최선을 다해 공부한 거다. 내가 궁금한 것, 아는 걸 다 쏟아부어 심도 있게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니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거다. 나는 매사에 그렇게 결정한다. 


머리에 들어 있는 건 지식이 아니다.
자기가 눈으로 확인한 것만 지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뻔한 질병, 이미 겪어본 케이스더라도
환자가 입원하면그에 관한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
그건 의사로서 갖춰야 할 필수 마음가짐이다.



2023년 현재 로봇수술은 어디까지 확장됐나?

제일 먼저 도입된 건 위암 수술이었지만, 적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아주대학교병원만 해도 담낭 절제 및 담도 종양 제거, 갑상선 적출, 위암, 자궁근종 절제, 자궁암, 전립선, 신장 절제, 난소 종양 절제, 대장 및 직장 절제, 췌장 관련 수술 등 다양한 사례에 로봇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로봇수술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다 보면 그만큼 많은 수술을 할 줄 알아야 하겠다

그렇다. 의사들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맨날 보던 수술이니까 익숙해진다. 그러면 수술 방법도 뻔하다. 해오던 대로만 한다. 하지만 학교 교과서도 2년마다 개편되듯이 의료 트렌드도 미세하게나마 끊임없이 변한다. 새로운 논문이 나오고. 그걸 염두에 두고 더 많은 수술에 적합한 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행여 돌발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아는 게 많은 사람이 해결하게 되어 있다. 많은 것을 알려면 방법은 하나다. 공부해야 한다.


공부에 관한 철학이 인상 깊다. 동료들도 동의하는 편인가?

여태까지는 그랬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외과 전공의 시절 1년에 열 권씩 의학 교과서를 만들어 선후배를 공부시킨 일화다. 이쪽저쪽 분야를 다 알고 싶어 벌인 일이었다. 각 분야에서 새로 나온 논문부터 아주 오래되어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고전 논문까지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 우리만의 요약집을 만든 거다. 유방·갑상선·간담췌·대장 등 분야별로 한 권씩 책을 만들었고, 열 권을 완성한 뒤에는 2주일에 한 번씩 밤 10시에 모여 새벽까지 공부했다. 우리 책에는 전문의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은 없었다. 시험을 위한 교재가 아닌, 진짜 의학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배야 그렇다 치지만, 선배까지 공부를 시켰다니 놀랍다

특별한 케이스이긴 하다. 선배 중에 내 공부 계획을 기특하게 보고 힘을 실어준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확신에 찬 모습이 사람들을 움직인 것 같다. 뭘 확신했냐 하면, 공부하지 않으면 계속 모른다는 걸, 케이스가 복잡한 환자는 공부하면 할수록 치료의 길이 넓어진다는 걸 말이다.


공부 결과는 만족스러웠나?

반반이다. 3년 동안 공부하면서 엄청난 지식을 습득한 건 좋았지만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긍정적 측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우리 책은 점점 유명해졌고, 매년 버전을 달리해 출간하니 다른 학교에서도 책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책을 판매하기도 했다. 물론 수익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훗날 그 책 덕분에 인생이 바뀌거나 가는 길이 달라지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소식을 들으면 엄청난 보람을 느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그립다. 졸면서 공부하던 그 시절이.(웃음) 인생에서 그런 몇몇 순간에는 굉장히 진심이었다.


교수가 된 뒤에도 공부는 현재진행형인가?

물론이다. 아주대학교병원에 온 뒤에 연수를 가는 대신 포닥(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 과정에 들어갔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쯤인데, 보통의 교수들과 다른 행보였다. 외국의 유명한 병원이나 대학에 들어가 논문을 쓰는 연수 과정보다 랩에서 실험하는 임상의가 되길 원했다. 더 많은 걸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 오사카대학교에 간세포 성장에 관한 권위자가 있어 그의 랩에 들어갔다. 나는 의사였지만 자연계 박사들과 경쟁해 당당히 합격했다. 2년 3개월 이상 머물며 2주일에 한 번꼴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치열함을 견뎌내고 한층 발전한 기분을 만끽했다.


교수님 스타일을 보면 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수소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가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는 등 모든 활동을 할 때는 활성산소가 나온다. 그 활성산소가 DNA를 손상시키고 암을 유발한다. 중풍이나 노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류는 활성산소를 없애기 위해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고 끝에 활성산소는 곧 활성화된 산소라는 점에 주목했다. 활성화됐든 되지 않았든 그 정체는 산소(O2)이니 수소(H)를 갖다 붙이면 물(H2O)가 되는구나! 물은 몸 밖으로 배출되니 결국 활성산소도 제거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걸 위한 산소 요법의 대중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로봇수술 다음 스텝은 수소인가?

글쎄, 굳이 단계별 스텝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다. 그저 새로운 것이라는 데 매력을 느꼈다. 일본 등 해외에선 이미 어느 정도 대중화가 이뤄졌으나 아직 대단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러니 내가 한번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다. 어쨌든 의사로서 연구와 공부는 계속할 것이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9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사진 최현석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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