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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Sep 14. 2023

여행 크리에이터 김영수는 걷는 게 행복하다

목적 없이 걷는 길에서 행복을 찾다

자신이 걸어온 트레킹 코스를 설명하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걷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까. 그에게 걷기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Profile
김영수
1972년생
여행 크리에이터 겸 여행작가


한 분야에 10년간 몸담아 온 사람을 전문가라 부른다. 김영수 작가는 트레킹을 30년간 해왔다. 국내에서는 아직 ‘트레킹’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임에도 말이다. 트레킹에 대해 말하는 내내 미소를 띠는 그를 보며, ‘걷는 게 그렇게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걷는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며,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고, 그는 말한다. 트레킹 전문가가 아닌, 그저 인생의 걸음걸음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두고 온 인생의 발자국이 궁금했기에.





언제부터 걷기 시작했나?

트레킹을 즐긴 지는 30년 정도 됐다. 20대 초반부터 시작했으니 말이다. 과거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마다 트레킹을 다녔다. 걸으며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하고자 유튜브 콘텐츠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지금은 전업 여행 크리에이터로서 트레킹 유튜브 ‘김영수TV’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엔 <둘레둘레 트레킹>이라는 이름으로 책도 냈다.


‘덕업일치’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를 ‘하비프러너(hobby-preneur)’라고 부른다.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을 뜻하는 용어다. 과거에는 일과 생활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즐기면서 일할 수 있어서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트레킹을 시작한 계기가 뭔가?

처음엔 등산으로 시작했다. 20대 당시, 우연히 태백산 정상의 설경을 담은 사진을 봤다. 사진을 보자마자 압도적 풍경에 매료돼 무턱대고 한겨울에 태백산에 올랐다. 그 이후로 등산에 빠져 이 산 저 산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는 지리산으로 등산을 갔는데, 비가 내렸다. 폭우는 아니었지만 산 정상에 오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산 정상에 가진 않더라도 온 김에 지리산 근처나 구경해 보자는 마음으로 지리산 주변을 걸었다. 무작정 걷다가 지리산 화엄사를 방문했는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동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정상을 올려다보는 풍경도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로는 산 정상을 오르기보단 산 주변을 걷는 트레킹을 더 즐기게 됐다.


‘트레킹’이라는 용어가 헷갈린다. ‘등산’과 어떤 차이가 있나?

크게 구분하면 목적지가 산 ‘정상’이냐, 산 ‘둘레길’이냐로 나뉜다. 등산은 과정보단 결과에 초점을 둔다. 특정 산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트레킹은 코스를 따라 걷는 여행이다. 산을 오르더라도 정상에 도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산 주변의 풍경을 즐기거나, 산속 사찰에 방문하는 등 걸으며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즐긴다.


아무래도 ‘트레킹’은 해외에서 시작된 용어이다 보니 국내에 들어오면서 개념이 모호해져 명확히 정의할 순 없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웃음)



트레킹은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게 중요하다.
등산처럼 목적지를 정복한다는 개념과 다르기 때문이다.
과정을 즐겨야 한다는 것,
우리 인생의 교훈과 닮지 않나 싶다.



트레킹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힐링이 된다’라는 점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등산보다 운동 강도가 낮다. 트레킹이라 해도 간혹 산을 오를 때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6부 능선 정도까지만 걷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 않다. 몸의 부담이 덜하다 보니 주변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게 된다.


쉬운 접근성도 장점이다. 운동 강도가 낮다 보니 비교적 가벼운 장비로도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몸이 가볍다 보니 마음먹기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트레킹은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나?

아무래도 맑은 날이 좋지 않겠나.(웃음) 그래도 등산과 달리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 편이다. 오히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숲이 많은 코스는 비가 오면 풀내음을 진하게 맡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산자락에 비구름이 걸려 있는 모습이 절경이다. 겨울철 눈 내리는 날엔 산사를 보러 가는 트레킹 코스도 좋다. 눈이 쌓인 산사의 풍경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물론 바닥이 미끄러워 위험할 수 있으니 난도가 낮은 안전한 코스로 걷는 게 좋다.


트레킹을 하다 겪은 에피소드가 있나?

포천 한탄강에 있는 벼룻길 코스를 간 적이 있다. 코스의 절반을 조금 넘어 걷고 있는데 길목에 독사 한 마리가 있었다. 돌아가거나 뛰어넘기엔 좁은 길목이라 나뭇가지로 뱀 주변을 탁탁 쳤다. 그래도 뱀이 자리를 비키지 않더라. 10분 정도 씨름한 끝에 결국 뱀이 자리를 비켜줬다. 코스의 끝자락에 도착했는데, 내가 모르던 방향에서 사람이 걸어왔다. 어디서 걸어왔는지 물어보면서 내가 몰랐던 새로운 길을 알게 됐다. 뱀과 실랑이를 벌인 덕에 새로운 코스를 알게 된 셈이다.(웃음)



트레킹을 하다가 위험했던 적은 없나?

가끔 이슬이 맺힌 바위를 밟아 미끄러질 때도 있다. 바위 지대를 걸을 땐 접지력이 우수한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신는 게 좋다. 그리고 내리막길에선 양발이 수평이 되도록 ‘11자’로 걷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걸으면 발바닥과 바닥의 접촉면이 많아져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다.
잔돌이 많은 비탈길이나 흙길에선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땐 배낭이 도움이 된다. 배낭은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지만 뒤로 넘어질 땐 쿠션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트레킹을 할 땐 작은 가방이라도 매는 걸 추천한다.

다치지 않으려면 결국은 본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주변 경치를 즐기며 걷는 것도 좋지만 바닥이 불안정하거나 비탈길에선 항상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기억에 남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면?

두 곳이 있다. 동해 두타산 베틀바위 코스와 순천 용궐산 하늘길 코스다. 두 코스 모두 트레킹에 최적화되어 있다. 두타산 정상까지 오르는 건 전문 산악인이 도전할 만큼 어렵지만, 베틀바위 코스는 차를 타고 어느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다. 이곳 코스를 잇는 목재 덱은 누가 설치했는지, 안목이 좋다고 할 정도로 코스가 좋다. 굳이 정상까지 등반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웅장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순천 용궐산 코스도 상당히 맘에 든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용궐산을 끼고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이 코스에도 목재 덱이 설치되어 있는데, 높이가 섬진강 풍경을 오롯이 담을 수 있도록 아주 적절하다. 트레킹을 떠난다면 두 코스 모두 한 번쯤 가보길 권한다.



국내의 다양한 명소를 여행했다. ‘이곳에도 목재 덱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장소가 있나?

좋은 장소는 굉장히 많다. 다만 목재 덱 설치는 환경문제와도 얽혀 있어 좀 복잡하다. 사람 손이 닿으면 닿을수록 자연은 훼손되지 않나. 나는 그저 자연 속을 거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웃음)


트레킹은 등산과 다르게 산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다. 특히 선호하는 코스가 있나?

글쎄, 딱히 가리지 않는다. 산과 바다는 보여주는 풍경의 인상이 확연히 다르다. 산은 나무가 많고 볼 게 많은 만큼 걸을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보는 매력이 있다. 바다는 광활한 인상을 주는데, 눈에 보이는 모습이 똑같다 해도 걷다 보면 각도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매력이 있다. 꼭 산과 바다가 아니어도 최근엔 유적지나 산성을 중심으로도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고 있다.



풍경이 주는 단일한 인상은 강렬하다.
나 역시 사진 한 장에 매료돼 트레킹을 시작하지 않았나.
장소가 같아도 계절, 날씨, 시간 등에 따라 풍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이를 보는 맛에 계속 걷는다.



트레킹 관련 저서도 집필했다

팬데믹 이후에 등산이 유행하면서 트레킹 코스가 많이 생겼다. 새로운 목재 덱이 설치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찾아가보곤 하는데, 새로 생긴 길이 모두 너무 아름답고 걷기에도 좋았다. 유튜브를 하며 여러 코스를 소개하고는 있었지만, 이것을 한데 모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냈다. 입문자도 트레킹 코스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대중교통 편과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도 지도에 표시했다. 추가로 코스 인근에 있는 직접 맛본 맛집도 정리했다.(웃음)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를 꼽는다면?

신발이 가장 중요하다. 걷는 행위에서 행복과 건강을 온전히 얻으려면 좋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신발이 곧 비싼 신발을 뜻하는 건 아니다. 접지력이 우수하고, 자기 발에 잘 맞는 신발을 선택해야 한다. 그 때문에 신발은 꼭 신어보고 구매해야 한다.



트레킹 입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런저런 거창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은 ‘걷기’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만 결정해 길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일단은 가벼운 둘레길부터 시작해 트레킹에 재미를 붙여보길 권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동해 두타산 베틀바위처럼 활동적인 코스를 도전해 보면서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자연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두면 걷는 행위 자체가 행복하다. 부담을 내려놓고 오로지 걷는 행위에 집중해 즐기길 바란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10월호

에디터 정지환(stop@mcircle.biz) 

사진 김덕창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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