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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Sep 19. 2023

재활의학과 의사는 트레이너다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재활의학과 김준성 교수의 신념

성과 중심의 의료진 평가가 팽배한 이 시대에,
봉사와 헌신을 기치로 내건 의사를 만났다.
PROFILE 
김준성 
현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재활의학과 의사
현 대한의료감정학회 회장
현 대한임상통증학회 회장
전 대한암재활학회 회장
전 대한림프부종학회 회장
현 화성시 봉담노인보건센터 센터장
국제장애인사이클 등급분류사(International Classifier)
2014년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 취득


격의 없고 말을 잘 들어주는 의사. 말하기를 좋아해 환자와의 소통을 즐기는 의사. 지역사회에 봉사 활동을 가서 땅바닥에 털썩 앉아 환자 발을 서슴없이 만지는 의사. 그런 모든 진료 행위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친근해 환자들이 편안해하는 의사.


김준성 교수는 딱 그런 사람이다. 머리로 계산해 가며 무언가를 계획하지 않으며 오직 마음이 끌려야 실행에 옮기는, 따뜻하지만 뚝심 있는 ‘강한 사람’이다. 이런 성향은 환자와의 유대가 중요한 재활의학에 오면서 꽃을 피웠다. 환자의 운동 능력을 회복해야 하기에 아주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하는 재활의학의 특성상,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따뜻하고 친근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김 교수는 병원 내 진료도 모자라 봉사 활동까지 다니며 환자들의 회복을 돕는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언성 히어로’, ‘숨은 명의’라고 할 수 있다.



재활의학과 의사로 살기로 결심한 계기는?

처음에는 내과를 희망했다. 그러나 군의관을 거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당시 수화 관련 단체에서 수화를 배우면서 봉사 활동을 하러 갈 일이 많았다. 그때 장애에 관심이 생겨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레 재활의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군의관 시절이면 1980년대 말일 텐데, 장애와 재활의학에 대한 인식이 좋진 않던 시대 같다. 그럼에도 재활의학을 택한 건 용기 있는 결단으로 보인다

1988~1990년, 당시만 해도 한참 전이니까 아무래도 지금과 인식 차이가 있었다. 재활의학 하면 장애인만 상대하는 학문으로 축소해 생각하던 시대였다.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선입견이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재활의학을 선택한 건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기조는 변함없다. 후배들에게도 말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계산만으로 할 수 없고, 끌림에 따라야 한다”라고.


김준성 교수는 틈틈히 연구실에서 턱걸이를 할 만큼 운동에 진심이다. 철저히 건강 관리하는 그의 모습은 환자들에게 귀감이 되곤 한다.

수화 봉사 활동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은데, 원래 봉사 활동을 많이 해왔나?

어릴 적부터 성당을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봉사 활동을 많이 하며 살았다. 대학 때도 주말 진료라든가 하계 봉사 활동 같은 걸 많이 했다. 그건 내게 어떤 큰 이벤트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활동이었다. 봉사 활동 이후에는 보람도 느낄 수 있으니 이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학생 때는 직접 환자를 진료하는 게 아니라 선배들의 보조 역할에 그치는 일을 했는데도 많은 걸 배웠다. 그런 순간들을 즐긴 것 같다. 


원래 꿈은 뭐였나?

내가 의대를 다닐 당시만 해도 진로를 결정할 때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정신과냐, 아니냐’. 당시에는 정신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의대생 사이에서 굉장히 컸다. 지금은 더 이상 프로이드의 이론이 주목받지 않지만, 그때는 뭔가 신비롭고 멋있어 보였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을 다룬다는 건 뻔한 의학과는 차원이 다른 분야라고 여겼다. 그다음이 '가정의학과를 할 것이냐, 아니면 수술하는 분야를 할 것이냐'를 고민했다. 나 역시 그 갈림길에서 평소 흥미를 느꼈던 생화학적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내과로 비전을 설정했다. 그러다 군의관 이후 한순간에 재활의학으로 바뀐 건 전혀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봉사와 재활의학에 대한 교수님의 철학이 느껴진다. 삶의 신념으로 생각하는 말이나 글귀가 있나?

‘감사는 바로, 질책은 나중에!’ 살다 보니 어떤 일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고마움이 큰 고마움일 수도 있고, 작은 고마움일 수도 있다. 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건 시간이 지나면 고마움의 정도가 옅어진다는 것이다. 고마움을 뒤늦게 표현해선 안 되는 이유다. 그래서 봉사나 재활의학과 의사 일을 하면서도 고마움은 바로바로 표현하는 편이다. 반면 질책은 늦게 할수록 좋다. 뭔가 잘못됐을 때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면 얻는 게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오해했거나 화를 낼 만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 철학이 재활의학과 시너지를 내나?

글쎄, 내 생각이 다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재활의학은 나름대로 사회적 약자를 많이 접하다 보니 내면적 풍성함, 아니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 측은지심 등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는 내 신념이 어느 정도 잘 맞다고 할 수는 있다. 


재활의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재활의학의 역사를 다룰 때, 재활의학은 예방의학, 치료의학에 이은 ‘제3의 의학’이라고 말한다. 출발점이 보통 의학과 다르고 철학도 다르다. 즉 출발이 질병을 치료해도 계속 남아 있는 장애를 다루기에 환자를 교육하고,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또 재활의학은 환자의 기능을 중점에 두는 학문이다. 타과에 비해 약을 적게 사용하는 편이다. 침습 치료도 상대적으로 적게 한다. 그것은 약이나 침습 치료 이외에 물리치료, 운동치료, 작업치료 등의 방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직접적인 ‘휴먼 터치’가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이러한 방법이 더 효과적이다. 재활의학적 치료가 확대될수록 국가의 의료비도 절감될 수 있다. 



가장 많이 다루는 질병에는 어떤 것이 있나?

전통적으로 재활의학 하면 뇌성마비, 척수 손상, 뇌졸중, 절단 환자 등이다. 재활의학은 장애를 줄이고, 남은 기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의학 분야이기에 신경, 근육, 뼈를 다룬다. 몸의 움직임(Movement)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며 보행, 즉 걷기에 대한 중요도가 높다. 따라서 스포츠 손상, 근골격계 질환, 심폐재활, 노인재활로 확대해 진료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오십견, 관절염, 척추관협착증 등으로 재활의학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질병은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데,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도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는 어떤가?

오십견, 관절염 등은 퇴행성 질환이고 노화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젊은 층에서는 많이 발생하지 않지만,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사고로 외상성 손상을 입은 경우 퇴행성 변화가 빨리 일어나면서 젊은 층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 


재활의학도 세월이 지나면서 변하는 트렌드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과거 재활의학은 물리치료에 국한된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좀 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뇌를 포함한 신체 구조에 대한 지식과 공학이 발달하면서 뇌를 직접 자극하고, 로봇을 치료에 도입하고, 의족도 기술이 매우 발달해 좀 더 효과적으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까?

척수 손상 환자를 볼 때면 손상 당일부터 회복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함께하며 인간적 교감을 많이 한다. 한 번은 치료했던 여성 환자가 결혼을 하게 됐다. 치료 과정을 겪으며 워낙 가까워진 터라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 줬다. 척수 손상으로 여성 환자는 휠체어를 타고 입장했고, 남편이 뒤에서 밀면서 버진 로드를 걸었다. 그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그땐 치료 외적으로 좋은 인연을 맺게 되어 보람을 느꼈다. 그 환자는 아직까지 외래 진료를 보러 온다.


안타까울 때도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재활을 돕고 있는데, 그 과정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아주 오랜 기간을 함께하면서 나도 늙어가지만 엄마들이 점점 나이 먹어가는 모습에 애잔할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재활의학과 의사들은 환자의 희로애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이 있다. 힘듦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어렵지만 때로는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다.(웃음) 


만약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나?

의사 역할 중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대신 처음부터 “당신은 걸을 수 없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대개 걸을 수 없는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스스로 알게 된다. 그래서 일단은 옆에서 지지해 준다. 



최근 암 재활에도 매진하고 있다. 암과 재활의 상관관계가 궁금하다

암 환자의 치료 과정을 보면 장애인 재활 과정과 닮아 있다. 암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 암과 함께 생활하는 시대가 되면서 암 치료, 회복 또는 재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신체적, 심리적 회복과 기능 유지가 중요해졌다. 또 암 환자의 수술 전후 과정에서 운동의 중요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럴 때 재활의학과 의사가 개입해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합병증을 관리하고, 활동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통증을 경감시키는 역할도 그중 하나다. 특히 기능을 개선해 암 치료 기간 중이라도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한다. 


암 재활 치료 트렌드는 세계적 흐름인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암 환자를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에는 암 재활을 담당하는 재활의학과 의사들이 한 부서를 담당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미국의 MD 앤더슨, 메로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 메이요 클리닉 등에서도 암 재활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 재활의학과는 어떻게 될 것 같나?

노인인구가 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재활의학에서 다루어야 할 영역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삶의 질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회에서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재활의학이 발달하는 여건이 되는 것이 선진국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재활의학과 의사로 사는 건 행복한가?

재활의학 지식을 계속 습득하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다. 일상에서 가족이나 지인들의 건강을 챙겨줄 때 바로 접목할 수 있는 분야이다 보니 더욱 유용하다.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사람 좋아하는 내게 더없이 좋은 직업이다. 


평소 푸시업을 100개씩 한다고 들었다. 그것도 환자의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스로 수행하는 연구의 일환인가?

아니다. 오롯이 내 건강을 위해 하고 있다(웃음).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시작했다. 당시 영화 <록키 2>에서 주인공이 한 손으로 푸시업을 하는 걸 보고 완전 빠졌다. 그걸 따라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됐다. 그걸로 부족해 연구실에 장비를 사다 놓고 틈틈이 턱걸이도 한다. 그래서 몸은 보통의 내 또래 남자들에 비해 좋은 편이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아내에게 청혼할 때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푸시업 100개 하면 결혼하자”고 말한 뒤 그 자리에서 푸시업 100개를 했다.



재활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교수님을 보면 의욕이 샘솟겠다

그런 경우가 없지 않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럴 때 의사가 담배 피우면서 환자에게는 담배 끊으라고 할 수는 없다. 내 경우,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운동을 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만 좋은 죽음을 생각한 적은 있다. 시신을 의대에 기증하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의사로서 수많은 시신을 이용해 공부했다. 그렇게 신세를 졌으니 나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 나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기에 가능하다. 앞으로 휴머니즘에 입각해 죽음을 보는 사회가 된다면 좀 더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활의학과 의사는 트레이너다.
환자에게 운동을 시키고, 걷게 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면서 좌절에 빠진 환자를
격려하고 때론 푸시해
목표에 이르게 해야 한다.
만약 목표에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때는
절대 강요해선 안 된다.
대신 환자를 설득해야 한다.
이는 재활의학의 숙명이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10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사진 송승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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