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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Jun 29. 2023

의사가 '오지 탐험' 휴가를 떠나는 이유

그는 왜 오지만 찾아다닐까?

내게 휴가는 마치 화성 탐사, 

혹은 인류의 원초적 세계에 대한 탐험 같은 것.



최재완. 센트럴서울안과 공동설립자. 유튜브 '녹내장TV' 운영자. ⓒ최재완




  

휴가 때마다 오지로 향하는 이유?
일반 궤도를 이탈해 바라보면궤도 속 삶이 더욱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삶을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어떤 곳을 탐험했나?

미국 낸터킷섬(Nantucket Island)과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네바다 사막의 데스밸리, 캐나다 밴쿠버섬(Vancouver Island), 호주 멜버른 근처 야생 캥거루 서식 지역, 핀란드 린난사리(Linnansaari) 국립공원, 그리고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섬(Corsica Island)가 기억난다. 그 외 많은 오지를 여행했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휴가가 있다면? 

곧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Sicilia Island)으로 떠난다. 해외 학회를 갈 때면 근처 외딴섬을 찾아 여행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에는 로마에서 열리는 세계녹내장학회가 시작되기 전에 시칠리아섬부터 다녀오려고 한다. 시칠리아는 상당히 큰 섬인데 유럽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에트나 화산이 있다. 일정 중 하루는 이 산 정상에 올라가 볼 생각이다. 해발 3357m이고, 올라갔다 오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핀란드 린난사리 국립공원의 고성과 호수. 헬싱키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나오는 외지로, 여행 가이드북에도 안 나오는 지역이다. 워낙 사람이 없어서 주변이 적막하고 고요한 게 특징. 바람의 움직임, 새의 날갯짓 등 적막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자연 그대로의 소리를 마주할 수 있다. ⓒ최재완



오지를 탐험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유구한 시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또 오지에 가면 좋은 점이 있다. 첫째, 휴대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전화나 문자, 인터넷이 안 되는 데다 예상치 못한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다. 그런 위험 요소를 찾아 피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이 짜릿하다. 

 

담력도 세지는 만큼 의사로서 좋은 훈련이 되기도 된다. 백내장 수술의 성패는 0.1초 사이에 갈린다. 예를 들어 굉장히 예민한 조직은 0.1~0.2초 사이에 손상되기도 한다. 그런 큰 수술을 하는 데 대담함은 많은 도움이 된다. 담력을 키우는 훈련을 따로 하진 않았지만 오지 여행에서 길러진 대담함이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탐험할 때 가져가는 준비물은 무엇인가?

오지는 사람들이 주변 몇 킬로미터 안에 거의 없는 경우가 흔해 생존을 위한 준비가 필수다. 휴대폰이 안 터져도 길을 잃지 않도록 GPS 수신이 가능한 내비게이션, 아웃도어에 최적화된 스마트워치, 어떤 환경에서도 전자 장비를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케이블과 충전 세트 같은 것은 병적일 정도로 꼼꼼하게 챙기는 습관이 있다. 휴가지에 가서 살아 돌아와야 하니까.(웃음)


그리고 의외로 현지에서 시간이 나는 경우가 꽤 많아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정도 들고 간다. 삶 전반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책이면 더욱 좋다. 예전에 코르시카섬에 있는 나폴레옹 생가 옆에 자리한 호텔에 묵을 때에는 <나폴레옹 평전>을 들고 갔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1시간 내외로 이동하면 도달하는 작은 무인도. 관광객이 없는 섬을 일부러 찾아 들어가 보는 건 오지 탐험의 기본이다. 외딴 섬, 특히 무인도를 찾아다니다 보면 사진처럼 놀라운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최재완



어려서부터 탐험가 기질이 있었나?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것은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익숙해지고 나면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는 것에 특화된 성향을 지녔다.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내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고 할까? 병원에서도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여러 가지 시스템을 새로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탐험을 하라면 정신력도 중요할 텐데, 노하우가 있나?

오지 여행의 콘셉트에 맞게 신체적, 정신적 준비가 필요하다. 정신력은 건강한 신체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오지로 떠나기 한 달 정도 전부터 식이 조절, 운동 등으로 몸 상태를 최적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준비 기간에는 현장에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고 각각의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하면서 철저히 대비한다.


혼자 탐험하나?

오지에 가자고 하면 따라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웃음) 혼자 가거나 마음 맞는 파트너 한 명 정도와 함께 간다. 위험한 지역은 타인과 같이 가야 한다. 만일의 경우에 한 명이라도 소식을 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혼자 탐험할 때는 자연에서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마칠 때에는 성숙해져 돌아온다. 이런 기쁨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대도시나 관광지 여행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오지 탐험할 때 나만의 철칙이 있다면?

살아서 돌아가자!


미국 서부에 있는 데스밸리 국립공원. 총 면적 1만3000k㎡에 이르는 데스밸리는 사막과 숲, 험준한 절벽이 압권이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고독하지만 대자연의 위세가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다. 특히 누렇고 붉은 땅과 잿빛 풀이 광활한 대지에 펼쳐져 있는데, 마치 화성에 온듯 신비롭다. ⓒ최재완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은 적이 있나?

낸터킷섬에서 야생 모기 떼에 물려 거의 한 달간 열병을 앓았다. 데스밸리 같은 곳은 여름에 가면 큰일 난다. 기온이 50℃ 가까이 올라가고 통행하는 차량도 거의 없어 자동차가 고장 나면 곧장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모두 직접 겪은 일이다.


위기를 겪으면 다시 하기 싫어지지 않나?

위기를 극복하는 재미가 여행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을 더 하고 싶어진다. 물론 다음에는 더욱 철저히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다. 


또 도전할 곳이 있나?

갈라파고스군도와 그린란드, 알래스카 혹은 남극을 가보고 싶다.


오지를 탐험하는 휴가가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길 원하나?

바쁜 일상에서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자연과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망 하나 말하자면, 철이 계속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아직 새로운 오지를 발견하면 흥분된다. 그동안 다녀온 오지 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아직 철이 좀 덜 들었구나 싶어 안심이다.


최근 최재완 원장이 보내온 이탈리아 시칠리아 오지 트레블로그. 그는 여전히 오지를 탐험 중이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7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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