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빗속의 파리지엔느 (Parisienne in the Rain)
1. 몽마르트의 해질녘
에로디의 팔뚝에 걸린 레이스 장갑이 석양빛에 스며들었다. 카페 "르 쁘띠 루주" 테라스에서 앙투안은 그녀의 손가락 끝에 묻은 파스텔 크레용 자국을 발견했다. "화가 지망생이오?" 그의 물음에 그녀는 체리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몽마르트 언덕 아래로 흐르는 센 강의 반짝임처럼, 그들의 첫 만남은 순수함으로 가득했다. 그 순간은 찬란했고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다. 에로디는 앙투안이 자신이 해가 지고 하는 밤일을 영원히 모르리라 믿었다.
2. 베르사유 장미는 밤에 피어난다.
모리스 끌로드의 살롱.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 에로디는 몸을 흔들며 시계 태엽 인형처럼 춤추었다. 사교계의 왕 로랑 후작이 그녀의 허리춤을 틀어쥐었다.
"당신은 내 최고의 걸작이오."
그의 입술에서 스카치 향이 났다. 에로디는 그가 건넨 루이비통 지갑을 받아쥐며, 내일 앙투안과의 약속을 생각했다. 오후 3시, 뤽상부르 공원. 그가 가져올 피크닉 바구니 속 사과 파이 향기가 이미 그녀의 코를 간지럽혔다.
3. 두 남자의 그림자
앙투안의 화실. 벽면을 채운 에로디의 초상화 속 그녀는 백합 꽃잎보다 순결해 보였다.
"왜 항상 밤 11시면 집으로 가는 거요?"
그의 질문에 에로디는 창문 너머 파리 지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머니가 병약하시니까요."
진실의 문을 열려는 두려움 사이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앙투안은 그녀의 어깨에 입맞춤을 했다. 그녀는 파리의 어둠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그 순간, 길 건너편 문틈으로 로랑의 단정한 수염이 스쳤다.
4. 폭풍 전의 왈츠
오페라 극장 로비. 로랑이 에로디의 목덜미를 핥으며 속삭였다.
"당신의 가난한 화가에게 이걸 보여주겠소?"
그는 앙투안이 그린 누드 스케치를 휘날렸다. 다음 날, 몽마르트 골목에 그 스케치가 벽마다 붙었다. '매춘부 에로디'라는 낙서와 함께. 앙투안은 파리 지붕 위로 뛰어올라 울부짖었다.
"왜 나를 속였소!"
5. 비 내리는 회색 유년기
에로디가 발견한 것은 빈 화실이었다. 이젠 앙투안의 붓터치도, 테레빈유 냄새도 없었다. 유리창에 기대어 놓친 편지 한 장.
"당신의 거짓이 내 팔레트의 모든 색을 앗아갔소. 하지만 당신이 행복하기를."
그녀는 공원 놀이터 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비가 그녀의 슈프림 원피스 위로 스며들었다. 5년 전, 고아원에서 달아났을 때의 빗속과 똑같이 차가웠다. 로랑은 이미 새 인형을 찾았고, 앙투안은 브르타뉴 어딘가에서 새 그림을 그릴 테다. 에로디의 손가락이 스케치북을 더듬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앙투안이 써놓은 문구가 번졌다.
"진정한 사랑은 결코 그림자가 되지 않는다."
에필로그: 퐁피두의 거울
다음 날 아침. 세느 강변 노숙자가 에로디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얼굴은 비에 젖은 렘브란트 초상화처럼 고요했고, 입가에 걸린 미소는 마치 앙투안의 첫 키스처럼 순수했다. 생제르맹 대로에선 새로 온 화가들의 전시회가 한창이었다. 누군가의 붓끝에서 여전히 몽마르트의 석양이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