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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발레리나, 그늘 속의 프리마

단편

by Dennis Kim

파리의 발레리나, 그늘 속의 프리마


퇴근 시간의 파리 지하철 6호선은 썩은 장미 향과 땀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발레리나 발레리 뒤랑은 창가에 기대어 핏빛 립스틱으로 덧댄 입술을 깨물었다. 가방 속에선 새로 산 에르메스 스카프가 부들부들 떨렸다. 20분 전, 오테옐 역 인근 호텔에서 만난 남자의 체온이 아직도 그 스카프에 묻어있는 듯 했다.


"발레리아."


예지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목소리는 그녀의 등뼈를 관통했다. 앙투안이었다. 그가 알 잖은 소리로 "발레리아"라고 부를 땐 항상 문제였다.


그는 오늘따라 더 차가웠다. 카페 크렘의 담배 연기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가 빛을 잃은 건 분명했다. "또 그 자식이지?"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을 조였다. "이번엔 몇 번이었어? 3번째? 4번째?"


그녀는 웃음을 뱉었다. "네가 사준 발레 슈즈 값이 얼마인지 알아? 레슨비, 스튜디오 월세, 샹젤리제 극장 뒷구멍 로비스트들... 네 월급으론 내 린넨 속옷 한 장도 못 산다."


앙투안의 주먹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에스프레소 잔이 넘어지며 검은 강이 흘러내렸다. "그럼 왜 나를 골랐어?"


"네가 날 망가뜨리니까." 그녀는 담배를 물었다. "너만큼 순수하게 병드는 사람은 처음이야."


그 밤, 그녀는 세느강 다리 위에서 푸아레 가죽 코트를 벗어 던졌다. 12월 강바람이 스웨이드 스타킹 사이로 파고들었다. "뛰어내릴 거야." 그녀가 외쳤다. "네가 떠나면, 난..."


앙투안이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손길에서 비단결 같은 냉기가 스며왔다. "너 같은 여자랑 죽는 게 나쁘진 않겠다."


그 순간, 그녀의 핸드백이 진동했다. 49세 사업가 장-클로드의 문자가 반짝였다. <내일 오후 7시, 몬드리안 호텔 507호. 새 다이아 목걸이 준비했네.>


발레리는 앙투안의 품에서 고개를 돌렸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세느강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두 개의 얼굴. 발레리나의, 창녀의. 사랑의, 배신의.


"날 죽여." 그녀가 속삭였다. "제발."


앙투안은 칼날 같은 입술로 그녀의 눈꺼풀을 핥았다. "넌 이미 죽었어. 매일 다른 남자 침대에서."


그가 떠나버린 뒤, 발레리는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새빨간 구두를 하나씩 강물에 던졌다. 발레리나의 발끝으로, 창녀의 발끝으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퐁피두 센터의 네온사인들이 그녀를 조롱했다.


다음 날 오후 3시 01분, 몬드리안 507호 열쇠를 돌리며 그녀는 생각했다. 이 방문 뒤에선 다이아몬드보다 차가운 무언가가 기다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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