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의 신호와 소음은 여기서 나타난다.
최근 일본의 여권 보유율이 단 17%에 그친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이는 OECD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며, 한국의 60% 보유율과 비교하면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일본 여권은 한국 여권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여권 파워'를 지닌 여권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활용률은 매우 낮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를 넘어 일본 사회의 내향적 전환, 경제적 제약, 국제화 의지의 저하 등 복합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일본인의 35%는 "해외여행을 전혀 갈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과거 해외여행이 일종의 문화적 성취이자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여겨졌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해외로 나가려는 열망보다는 안정과 익숙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화되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내향적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교육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인이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숫자가 급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교육정책의 문제라기보다는 국제 사회와의 연결성을 끊어가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일본인의 해외여행 의욕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엔화의 약세다. 해외여행 시 환율로 인한 지출 부담이 증가하면서, 실질적인 여행 경비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특히 중산층 이하에게는 해외여행이 사치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여권 자체의 발급 비용도 적지 않다.
성인 기준 10년 여권: 16,000엔
12세 이상 5년 여권: 11,000엔
11세 이하 5년 여권: 6,000엔
이 비용은 한국 여권 발급 비용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해외에 나갈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여권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일본의 변화는 '갈라파고스화(Galápagos Syndrome)'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갈라파고스화란, 외부와의 교류 없이 자국 내에서만 발전하다가 글로벌 스탠다드와 괴리된 방향으로 고립되는 현상을 뜻한다. 일본은 이미 과거 휴대폰 산업에서 독자적 기술 발전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된 경험이 있다. 지금도 백색 가전과 같은 분야에서 일본과 글로벌이 확연히 다른 로컬 스탠다드를 추구하고 있는 점이 일본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의 여권 보유율 감소와 국제화 의지의 약화는, 일본이 경제적, 문화적, 인적 교류 측면에서 국제 사회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이는 단순히 여권의 숫자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 전략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글로벌화 시대에 역행하는 움직임은 결국 일본의 국제적 위상 하락과 경제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흐름을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일본의 '황혼기'로 향하는 전조로 본다면, 지금이야말로 일본 사회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