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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

가격을 올리다가 역풍, 미래를 예지 못한 탐욕

by Dennis Kim

명품의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

- 가격을 올리다가 역풍, 미래를 예지 못한 탐욕


"명품은 더 이상 명품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다는 고가의 럭셔리 가방이 사실은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외주 공장에서 이탈리아 장인이 아닌 사람들의 손에 만들어졌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많은 소비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라벨 뒤에 숨겨진 글로벌 효율화의 민낯, 그리고 사라진 장인 정신.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명품의 신화’가 무너지는 징조이자, 럭셔리 브랜드가 더 이상 과거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꿈을 파는 산업의 냉혹한 현실, 엄청난 순이익의 문제점

명품 가격은 갈수록 올라가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짜 가치’는 점점 의심받고 있다. 루이비통, 디올, 샤넬 등 주요 명품 브랜드의 영업 이익률은 40~60%로 인반 제조업의 영업이익율 5~7%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물론 이익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높은 가격이 실제 품질이나 생산 가치보다는 ‘로고와 이미지’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700만 원에 판매되는 한 고급 브랜드의 핸드백이 실은 단가 20만 원에 불과한 원자재와 외주 인건비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내가 사는 건 가방인가, 환상인가?"


고가의 제품이 꿈을 사고 있다는 서사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 그 꿈조차도 현실에서 멀어진 ‘허상’처럼 느껴진다.


흔들리는 거인들, 명품 브랜드의 충격적 실적 부진

실제 수치는 그 위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샤넬: 2023년 매출 187억 달러, 전년 대비 -4.3%, 영업이익은 무려 -30% 감소. 팬데믹 이후 첫 동반 하락이다.

LVMH (루이비통, 디올 등): 매출 846억 유로(-2.0%), 영업이익 195억 유로(-14.0%)

케링(Gucci, Saint Laurent 등): : 매출 172억 유로(-12.0%), 영업이익 26억 유로(-46.0%)


구찌의 부진이 케링 그룹의 미래를 어둡게하고 있다.단 한 해만의 일시적 하락으로 보이기엔, 너무 많은 경고등이 동시에 켜지고 있다.


위기의 본질, 아시아 시장 냉각과 중국 소비자의 ‘지갑 닫기’

이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아시아, 특히 중국 소비자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2023년, 샤넬의 아시아 매출은 전년 대비 7.1% 감소했다. 글로벌 명품 소비의 30%를 차지하던 중국 소비자들이 더 이상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경제적 불확실성 – 중국 내 경기 둔화, 부동산 위기, 청년 실업 등으로 소비 여력이 감소했다.

MZ세대의 가치관 변화 – 90년대생, 2000년대생은 ‘로고’보다는 ‘경험’, ‘개성’, ‘자기계발’을 중시한다. 과시적 소비는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진다.

가격 대비 가치의 의심 – 고공 이익률, 비싼 가격 대비 저렴한 원가 구조가 드러나며 브랜드 신뢰가 흔들린다.

현지 브랜드의 부상 –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감각적인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처럼 “중국인은 결국 명품을 산다”는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명품의 미래: 신화의 종말인가, 재탄생의 기회인가?

명품 브랜드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화려한 로고’와 ‘과거의 영광’만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를 설득할 수 없다.

1. 진정성 회복

‘메이드 인’의 의미를 회복하고, 생산지·과정·노동에 대한 투명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실제 장인의 손길과 윤리적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적 콘텐츠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2. 가격 대비 가치 재정립

단순히 제품이 아닌, 경험·내구성·서비스·디자인이 결합된 ‘종합적 만족’이 정당한 프리미엄이 되어야 한다.

예: 에르메스는 장인 한 명이 한 가방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방식을 고수해 고객의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3. 새로운 가치 제안

지속가능성(친환경 소재), 개인화(커스터마이징), 디지털 경험(NFT, 메타버스 패션쇼), 문화 콘텐츠와의 접목 등으로 MZ세대와 연결되어야 한다.


4. 고객 중심 철학

명품은 이제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브랜드와 고객 간의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고객이 브랜드를 통해 자기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맺은 말, 위기는 진정성을 잃은 자에게 먼저 찾아온다

이탈리아 외주 공장 사건과 주요 브랜드들의 실적 부진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비싼 가격표’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스토리, 철학, 가치, 그리고 투명성이다.


명품 브랜드가 과거의 상징적 지위에 안주할 것인지, 혹은 시대 변화에 발맞춰 ‘문화적 아이콘’으로 거듭날 것인지는 오롯이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환상과 신화는 끝났다. 미래를 예지하는 것보다 본질로 회귀해야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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