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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바람, 공허한 관계

이상한 사람은 너일 뿐이야.

by Dennis Kim

그녀의 이름은 수아였다. 이름처럼 물처럼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유영 방향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으며.


준영은 안정적이었다. 포근한 그늘처럼 그녀를 감쌌다. 그녀의 꿈, 슈퍼스타가 되겠다는 어린아이 같은 포부를 들을 때면, 그는 그저 고분고분하게 웃으며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라고 말했다. 그의 사랑은 너무나 당연해서,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여겨졌다. 수아에겐 그 사랑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창밖의 번쩍이는 불빛을 원했다.


그리고 민혁이 있었다. 민혁은 빛이었다.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그렇기에 매력적인 불꽃이었다. 그는 수아의 꿈을 '도전'이라고 칭찬했고, 준영의 그늘을 '한계'라고 매도했다. 수아는 민혁과 함께 할 때면, 마치 무대 위에 선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무거운 그늘을, 더 따뜻한 그늘을 버리고 번쩍이는 불꽃을 선택했다.


그것은 화려한 추락의 시작이었다.


민혁과의 생활은 끊임없는 소비의 연속이었다. 옷, 액세서리, 밤늦은 클럽. 수아의 통장은 빠르게 얇아졌다. 준영이 채워주던 것이 이렇게 많았구나, 라는 걸 깨달은 것은 너무 늦은 뒤였다. 민혁은 "투자는 필요하다."며 그녀의 지갑을 열게 했지만, 정작 그의 지갑은 항상 '다음 프로젝트'에 묶여 있다 했다.


그런 날이었다. 수아는 우연히 민혁의 스마트폰을 봤다. 잠금 화면에 뜬 문자 메시지의 발신자는, 그녀의 옛 동료이자 가끔 연락하는 친구 승희였다. 문구는 짧았지만, 모든 것을 와해시켰다. *"어제 밤 정말 최고였어, 그 남자."*


그녀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 있었다. 그저 승희의 익숙한 프로필 사진이 눈에 아릴 뿐이었다.


민혁은 집에 돌아와서도 당당했다.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승희에 대해 묻자, 그는 놀랍도록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맞아. 승희랑 만났어."


"너, 나를 배신한 거야? 내 친구랑?" 수아의 목소리는 붕괴 직전의 건물처럼 흔들렸다.


그때 민혁은 빈정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수아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는 일종의 승리감이 스쳤다.


"배신? 재밌는 소리 한다. 너는 준영이랑 찔끔찔끔 연락한 거 다 알고 있어.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수아는 할말을 잃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가끔, 지칠 때면 준영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말 없이 그의 숨소리만 들은 적이 있었다. 그건 그녀의 마지막 안식처 같은 것이었는데.


"그건 바람이 아니야… 그저…"


"그저 뭐?" 민혁이 비웃으며 말을 끊었다. "넌 네 편안함을 위해 남자를 두고 놀았어. 나는 그냥 네 방식대로 놀아준 거야. 너도 바람을 폈으니, 나도 복수한 거지. 공정해."


'복수'. 그 단어가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의 바람은 단순한 유혹의 실수가 아니었다. 계산된 징벌이었다. 그녀를 심판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그녀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준영에게? 그 따뜻한 그늘은 그녀가 스스로 등진 곳이었다. 그의 다정함은 이제 그녀의 배신을 기억하는 눈초리로 가득할 테다. 그녀의 꿈? 빈 통장과 함께 먼지 쌓인 공간의 구석에 던져져 있었다.


그날 밤, 수아는 자신의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그녀가 한때 갈망하던 번쩍이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빛들은 모두 빈 공허를 비출 뿐이었다. 그녀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남은 잔고는 한 달 월세도 감당하지 못할 금액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승희의 SNS에 새로 올라온 사진이었다. 민혁과 어깨를 견주고 찍은, 환하게 웃는 승희의 얼굴. 수아는 스크린을 껐다.


그녀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빈 통장과, 그 안에 가득 찬 배신의 공기뿐이었다.


#단편 #바람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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