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지하지 못한 포퓰리즘과 역사적 교훈과 현대적 함의
대영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제국 중 하나로, 19세기 전성기에는 전 세계 육지 면적의 4분의 1과 인구의 6분의 1을 지배했습니다. 세계 산업과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막강한 해군력과 광대한 식민지를 바탕으로 세계 정치·경제·문화를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제국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내리막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으며 국력을 소모했고, 1956년 수에즈 운하 분쟁을 계기으로 제국주의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영국의 흥망성쇠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제국의 필연적인 종말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 연구입니다. 17세기 이후 200년에 걸쳐 서서히 융성하여 정점에 오른 대영제국은 다시 200년에 걸쳐 서서히 쇠퇴했으며, 19세기가 그 절정기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영국이 직면한 브렉시트와 경제적 위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예견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2.1 제국의 과도한 확장과 내부 모순
팽창주의의 한계 :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은 결국 '대경쟁의 시대'를 격화시켜 선진국과 후발 공업국과의 마찰을 빚었습니다. 식민지에 대한 무리한 억압은 식민 지배의 도덕성과 명분의 상실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팽창은 광범위한 지역의 군사적 개입을 수반하며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초래했고, 이는 결국 고전적인 제국의 피폐로 연결되었습니다.
경쟁력 약화와 경제 정책의 실패 : 19세기 말의 20년 동안 세계를 덮은 경제불황은 각 국을 보호무역주의로 몰아넣었고, 영국의 수출은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영국은 경쟁력이 저하된 자국 산업 유지를 위해 식민국가와 경제 블록화를 형성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제국의 과잉 확대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2 군사적 과부하와 경제적 취약성
대영 제국의 성공 요인
대영 제국의 성공 요인은 단일한 원인이 아닌, 여러 강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첫째, 막강한 해군력은 제국이 전 세계에 걸친 식민지를 방어하고, 해상 무역로를 장악하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둘째, 산업 혁명의 발상지로서의 거대한 공업 생산력은 영국에 기술적 우위와 경제적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이는 군사력과 외교적 영향력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셋째, 전 세계에 퍼진 광대한 식민지는 원자재의 안정적인 공급처이자 완성품을 판매할 시장 역할을 하며 경제적 순환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넷째, 금융, 보험, 해운업의 발달은 런던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이는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는 혈관 역할을 했습니다.
다섯째, 유럽 대륙에서 국가 간 균형을 유지하며 강대국 간 갈등을 조정하는 세력균형 외교정책은 상대적으로 적은 군사비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대영 제국의 쇠퇴 요인
반면, 제국의 쇠퇴는 이러한 강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점으로 전환되거나, 새로운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전 세계에 퍼진 방대한 영토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과도한 군비 지출은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짐이 되었습니다.
둘째, 19세기 후반부터 독일, 미국 등 후발 주자들의 추격과 자체적인 제조업 기반 약화는 영국 경제의 경쟁력을 서서히 떨어뜨렸습니다.
셋째, 식민지에서 발생한 독립 운동은 제국의 통치 비용을 급증시키고, 전후 민족 자결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제국의 해체를 가속화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넷째, 제조업이 쇠퇴한 후 경제의 중심이 금융 등 서비스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서, 실물 경제 기반이 취약해지고 외부 충격에 민감한 구조로 변모했습니다.
다섯째, 한때 유럽의 세력균형을 주도하던 영국은 점차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거나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으며,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양극 체제 속에서 초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영 제국의 흥망성쇠는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 지리적 조건 등 국가 흥패의 핵심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 연계되어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교훈입니다.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영국이 오랫동안 제국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효율적인 군사비 지출에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영국은 전성기인 19세기에도 국민생산의 2%만 군사비로 지출했습니다. 이처럼 적은 군사비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력균형 정책이라는 외교적 역량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과도한 군비지출이 영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강대국 몸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식민성의 근무자가 늘어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직은 끝없이 팽창했습니다. 이를 파킨슨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하며, 훗날 생산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경제구조를 지칭하는 영국병이 되었습니다.
직원 수 증가 현상 (파킨슨의 법칙): 영국의 행정학자 C.N. 파킨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식민지 수가 급격히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성 직원의 수는 반대로 크게 늘어난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1935년 372명이었던 직원은 식민지 독립이 활발했던 1954년에는 1,661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파킨슨은 이를 바탕으로 공무원 수는 업무량과 관계없이 계속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3.1 국민투표에서 시작된 연쇄 붕괴
2016년 6월 23일, 영국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영국 경제에 장기 침체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단 4%포인트 차이(찬성 51.9%, 반대 48.1%)로 내려진 이 결정은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정치적 선택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브렉시트 운동 당시만 해도 달콤한 약속들이 난무했습니다. 매주 3억 5천만 파운드를 EU에 내는 돈을 영국 의료 시스템에 쓰겠다는 공약과 함께, 이민자들 때문에 줄어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며 영국은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부터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 파운드화는 즉시 급락했으며, 투표 전날 1파운드가 1.5달러였는데 일주일 만에 1.28달러까지 떨어져 15% 폭락을 기록했습니다. 금융 시장의 반응은 더욱 극심해서 런던 증시는 이틀 연속 폭락했고, 부동산 펀드들이 연쇄적으로 거래를 중단하며 영국 자산에 대한 대량 매도가 시작되었습니다.
3.2 구조적 취약점을 외면한 근시안적 포퓰리즘
브렉시트를 통해 영국 경제의 근본적 취약점이 드러났습니다. 영국은 이미 제조업 기반을 상실하고 금융업과 서비스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전체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0%에 불과했는데, 이는 독일의 23%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무역 의존도는 더욱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영국 수출의 45%가 유럽 연합으로 향하고 있었고, 수입도 53%가 유럽 연합에서 들어오는 상황에서 유럽 연합과의 관계 단절은 한국이 중국과의 모든 무역 관계를 하루 아침에 끊어 버리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브렉시트 협상에서 영국의 협상력은 예상보다 훨씬 약했습니다. 유럽 연합은 27개국이 단결하여 영국을 상대했지만, 영국은 혼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영국 내부에서도 스코틀랜드의 독립 위협과 북아일랜드의 국경 문제가 영국의 협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4.1 금융허브 지위의 상실
브렉시트 이후 런던 금융가의 변화는 극적이었습니다. 브렉시트 이전까지 런던은 유럽 전체 금융 거래의 75%를 처리하던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유럽 연합을 떠나면서 이런 특권을 잃게 되자, 주요 투자 은행들이 직원들을 파리, 프랑크푸르트, 더블린으로 이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JP모건은 런던 직원 4,000명 중 1,000명을 대륙으로 옮겼고, 골드만삭스는 파리 사무소를 대폭 확장했으며, 도이체방크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갔습니다.
브렉시트의 최대 수혜자는 영국이 떠나려던 유럽 연합 국가들이었습니다. 파리는 런던을 제치고 유럽 최대 증시가 되었고, 암스테르담은 유럽 최대 주식 거래소로 부상했습니다. 더블린과 룩셈부르크는 영국에서 이전한 금융 회사들로 특수를 누렸습니다. 이러한 금융 인프라의 이전은 영국 경제에 장기적이고 복구 불가능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4.2 트러스 노믹스 - 정치적 불안정의 경제적 대가
2022년 9월, 리즈 트러스 총리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트러스 노믹스는 영국 경제에 결정타를 안겼습니다. 450억 파운드 규모의 대규모 감세를 골자로 한 이 경제 정책은 시장의 신뢰를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트러스 정부가 감세 재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자, 파운드화는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고 한때 1파운드가 1.03달러까지 내려가 달러와 거의 동등한 수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국채시장의 반응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하루 만에 1%포인트 이상 급등하면서 영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 중앙은행이 긴급히 국채 매입에 나서야 했고, IMF까지 나서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을 재평가하라고 공개적으로 권고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트러스 정부는 역사상 가장 짧은 재임 기간인 49일 만에 물러나야 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영국 경제에 입힌 상처는 엄청났습니다.
'트러스 노믹스(Trussonomics)'는 2022년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추진한 대규모 감세와 경기부양 정책을 의미합니다. 이는 공급 측면 경제학에 기반하여 기업 및 고소득층 감세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였으나, 재정 계획이 미비하고 경제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초래하며 단기간에 실패했습니다.
5.1 제조업 기반 붕괴: 과거와 현재의 유사성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의 산업 구조 변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의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해외 투자가 급증하며 영국 경제의 불안감이 높아졌습니다. 1820년대까지 보호무역을 시행했던 영국은 경제패권을 확립하고 공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자 해외 시장확보를 위해 자유무역의 기치를 들고 외국에 시장개방을 요구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2016년 브렉시트 이전 영국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였으나, 2024년 현재는 8%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는 독일의 20%, 한국의 27%와 비교하면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자동차 산업의 몰락이 가장 극적이어서, 2016년 영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172만 대에서 2023년에는 89만 대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5.2 지리적 현실과 경제적 선택의 괴리
영국은 본질적으로 섬나라라는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 몰락의 핵심 원인이 되었습니다. 도버 해협은 영국과 유럽 대륙을 가르는 폭 34km의 바다에 불과하지만, 이 짧은 거리가 영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장벽으로 변모했습니다.
브렉시트 이전까지 이 바다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과 물건이 자유롭게 오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1년 2월 1일부터 이 바다는 장벽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지리적 조건을 보면 유럽 연합 의존이 불가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고속 열차로 2시간 20분이 걸리는 반면, 런던에서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8시간이 걸립니다. 지리적으로 영국은 완전히 유럽에 속해 있습니다.
대영제국의 몰락과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현 상황은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정치적 선택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역사적으로도 19세기 말 보어전쟁(1899~1902)을 통해 제국주의의 자성론이 일기 시작했고, 1,2차 세계대전으로 국력을 거의 소모하였으며, 수에즈 운하 분쟁(1956)으로 제국주의의 막을 내리게 된 영국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영국은 지역적 격차, 사회적 분열,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습니다. 런던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1인당 GDP가 영국 평균을 밑도는 상황이고, 브렉시트 찬성과 반대층 간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8년간 5명의 총리가 바뀔 정도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 당시 영국 경제는 세계 5위 규모였지만, 2024년 현재는 인도에 밀려 6위로 내려앉았습니다.
핵심 교훈은 명확합니다.
경제적 현실과 지리적 조건을 무시한 정치적 결정은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브렉시트라는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국가 전체의 미래를 바꿔 버린 것입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된 다른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경고가 됩니다. 고립주의적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국가적 결정은 역사적 맥락과 경제적 현실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이제 영국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는 것과 핵을 보유한다는 것 외에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쇠퇴는 식민지를 운영했던 제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얻어낸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함에 따라 얼마나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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