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식기세척기를 상상해보다.
나는 워킹대디다. 워킹맘이라는 말은 다들 자주 쓰는데 워킹 대디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워킹맘의 뜻을 찾아보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을 이른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워킹 대디는 사전에 없다.
가족 들 중 제일 일찍 일어나 아이들의 아침을 만들고 출근을 하면 아내는 그 아침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등원을 시킨다. 회사에서는 일을 하고 틈틈이 아이들을 위한 정보를 찾거나 어플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알림장을 읽으며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퇴근을 하면 제일 먼저 빨래통을 살핀다. 빨래가 많이 쌓여 있으면 옷을 갈아입자 마자 세탁기를 돌린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나서는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가 끝나면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 빨래 건조대에 널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고 아내와 한 명씩 맡아서 씻긴 뒤 잠을 재운다.
아침부터 잠에 들 때 까지 쉴 틈은 거의 없다. 일과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기에 스스로 나를 워킹대디라 칭한다. 집안일 중 가장 싫은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설거지를 꼽는다. 요리는 잘하기만 하면 그 과정이 재미지다. 빨래는 세탁기에 빨래감을 넣어서 돌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건조대에 일일이 널어야 하는 과정이 있지만 그 전체 과정을 봤을 때 적어도 50%는 자동화 되어있다고 본다. 하지만 오직 설거지 만이 가전회사들에게 정복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정용 식기세척기가 있기는 하다. 나도 12인용 식기세척기를 사용해 보았다. 처음에는 신세계라고 느꼈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직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빨래는 세탁기가 전체 과정에 50%이상을 부담해 준다면 식기세척기는 내가 느끼기에는 많으면 35%정도를 부담해 주는 것 같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식기세척기를 판매하는 가전회사에서 들으면 엄청 섭섭해 할 지도 모른다.
향후 10년을 생각해 보았을 때도 설거지는 기술의 발전에 정복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설거지를 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다. 빨래와 비교해 보겠다. 손빨래를 한다면 우리는 빨래비누를 세탁물에 뭍히고 비비고 물로 헹구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 세가지 과정에 탈수 동작을 더해서 만든 제품이 세탁기다. 하지만 설거지는 좀더 많은 관찰과 의사결정, 판단 그리고 복잡한 동작을 통해 진행 된다. 먼저 주방세제를 묻히는 것은 빨래와 다름없다. 하지만 빨래와 달리 설거지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세제를 묻히는 동작이 달라진다. 접시냐 밥그릇이냐에 따라 팔과 손의 동작이 달라진다. 그리고 눌러 붙은 때인지 가벼운 때인지 관찰해서 어떠한 강도로 수세미를 가지고 설거지 감을 비벼야 할 지 결정해야 한다. 또한 설거지 감에 붙은 잔여물이나 제거 대상의 오염 물질의 종류에 따라 설거지의 강도와 반복횟수도 달라져야 한다. 세심한 관찰과 의사결정 그리고 복잡한 동작들이 어우러져야 하는 집안일이 설거지인 것이다.
지금 시판되는 식기세척기를 사용한다면 먼저 눌러 붙은 오염물을 먼저 제거하는 초벌 세척 과정을 거친 후 기계에 일일이 설거지 감을 정렬해 넣어야 한다. 식기세척기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기에 오염물의 종류를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동작 또한 균일하고 일관되게 반복적이다. 그래서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나면 어떤 것은 깨끗하고 어떤 것은 다시 세척해야 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꿈의 식기세척기란 이런 것이다. 먼저 그 모양은 싱크대 일체형이어야 한다. 사용자는 싱크대에 그릇 등을 넣어 놓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단순히 시작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좀더 나아가서는 ‘설거지 시작해’ 등의 음성 인식 기능을 사용 할 수도 있겠다. 기계가 작동을 시작하면 먼저 싱크대 상판이 자동으로 닫히고 싱크대 내부에 장착된 카메라와 각종 센서가 설거지 감을 스캔해 오염의 정도와 그릇의 모양을 파악한다. 사람의 손 모양을 변형 시킨(손가락이 꼭 다섯개일 필요는 없다. 필요에 따라 그 개수와 모양은 다를 수 있겠다.) 인공 손이 설거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식기세척기는 관찰된 결과를 토대로 다양한 동작을 수행하며 설거지를 진행한다. 인공 손에서는 세제도 나오고 각종 다양한 수세미들이 달려있어 효과적으로 설거지를 할 수 있다. 기계에 내재된 물 분사기를 사용해 그릇 등을 헹군 후 인공지능은 다시 결과물을 스캔해서 깨끗한 정도에 대해 검수를 진행한다. 만약 오염물이 발견되면 재 세척을 한다.그리고 건조 기능이 끝나면 싱크대 상판이 열려 우리는 깨끗하게 세척된 접시와 그릇 등을 보게 된다.
물론 그릇 정리까지 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가정부 로봇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부분은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정도만 되더라도 휘파람을 부르며 기꺼이 그릇정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직장이 있는 여의도에는 국밥을 나르는 서빙 로봇도 있고 키오스크가 각 테이블 마다 있는 식당과 까페도 꽤 많다. 그곳에서 우리는 로봇에게 서빙을 받고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무려 음식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선결제를 한다. 인공지능과 무인화는 어느새 살금 살금 우리 생활로 들어왔다. 내가 생각하는 꿈의 식기세척기도 곧 인공지능을 탑재해 나를 집안일로부터 탈출 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 내 일자리는 그대로 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