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쩌다 임플란트 공화국이 되었을까?

제2장 "임플란트로 향하는 길"

by 반석원장

제1장에서는 임플란트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치아 하나를 잃은 사람에게 가장 확실한 대안이자 삶의 질을 회복시켜 주는 치료라는 점에서 임플란트는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그 축복이 너무 흔해지고, 너무 빠르게, 너무 쉽게 선택되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치료는 정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게 된 것일까?


내 치아를 빼고 임플란트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는 자기 치아를 오래오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왜 치아를 상실해야만 했을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과 치아의 건강과는 닭과 달걀의 선후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6세에서 9세 사이에 맹출 하는 영구치아를 사용하는 시간도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과거에 60년을 살아내기가 어려웠을 때에는 50여 년만 쓰면 되었지만 100세 시대에서는 90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기간이 늘어난 만큼 치아의 손상이 생길 확률은 높아진다. 반대로 치아의 관리 능력이 향상되어 치아 건강을 유지한다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볼 수도 있다. 건강한 치아는 원활한 섭식이 가능케 하고 소화기관의 원활한 운동을 도우며 심지어 뇌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치아의 건강이 결국 100세대를 만들어 냈다고 보아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치아 상실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요소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치아 그 자체의 파괴에 의한 것이다. 치아가 깨지거나 부러지면서 치아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때 치아의 통증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치아의 통증 자체는 치아 상실과 완전한 상관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두 번째는 치아의 주변 조직인 치주조직, 우리가 잇몸과 잇몸뼈로 알고 있는 부분의 결손에 의한 것이다. 구강 내에는 수많은 세균과 이물질이 있기 때문에 잇몸은 이에 대한 저항을 하게 되지만 오랜 시간 병인 요소에 노출된 치주조직은 염증반응이 일어나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그러다 보면 잇몸이 붓고 잇몸뼈가 녹아내리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잇몸뼈가 치아를 든든히 받쳐주지 못한다면 치아가 흔들리고 치아 상실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치과의사의 몫이다. 치과의사는 엑스레이와 구강 내 검사를 통해 치아의 상태를 알아내고 진단을 하며 치료를 계획하고 실행하게 된다. 대부분의 환자는 치아의 통증을 호소하며 치과에 내원하게 되는데 치아 건강에 대한 정보 격차는 환자가 치과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인이라고 하는 직종에서는 좀 더 윤리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을 요구받게 된다.


치과의사가 검진을 통해 치아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계획을 결정하였을 경우 모두 옳은 판단이었을까?


치과의사들은 본인이 익숙한 진료나 자신감을 갖고 있는 진료 위주로 치료계획을 잡는 경향이 있다. 본인의 진료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리워드가 큰 쪽으로 생각과 마음이 쏠리게 된다. 리워드라는 것은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의도했던 치료의 결과, 환자와의 원만한 관계, 경영에 도움이 되는지, 본인의 노동집약도 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 반면 본인의 리워드와는 상충되지만 환자의 유익이 크다고 판단될 때는 다소 힘들더라도 감내하는 치료계획도 세울 수 있다.


간단한 치료에서는 의견이 다르기 어렵지만 치아의 질병상태가 심각해질수록 치료계획에 대한 판단은 극과 극으로 나뉠 수 있다. 어떤 치과의사는 빼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치과의사는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빼야 한다고 결정한 치과의사는 나쁜 사람일까? 앞서 말한 리워드에 따라 생각해 보면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는 진료가 발치이기 때문에, 치아를 빼는 것이 환자의 불편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치아를 살리는 것은 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불편을 만들 수 있고 그로 인해 환자와의 관계가 안 좋아질 수 있고 고객을 잃게 되어 병원 경영에 해가 된다 판단할 수 있다. 치아를 빼게 되면 통증의 원인을 제거하기 때문에 빠르게 증상이 없어지고 환자의 만족감을 통해 고객층 확보로 이어져 병원 경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발치 후 임플란트까지 이어졌다는 전제가 있어야 경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좋은 사람이라고도 볼 수 없을 것이고 괜찮은 경영자 또는 경영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치아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치과의사는 좋은 사람일까? 마찬가지로 리워드에 따라 생각해 보자. 치아의 상태가 썩 좋지 않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부분은 많지만 본인이 좀 더 노력한다면 환자의 증상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환자의 증상이 개선된다면 좋은 관계 형성을 할 수 있고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다른 지인들에게도 자기 치아를 보존한 것을 이야기하고 주변인들을 소개해줄 수 있다면 초기의 이익은 다소 적을지라도 충성심이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여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괜찮은 경영자 또는 경영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판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소는 본인이 치료를 했을 때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겠느냐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점이다. 두 치과의사는 모두 좋은 경영자이고 인재일 수 있지만 치아를 치료하는 면에 있어서는 두 번째 치과의사가 더 큰 자신감을 갖고 있다 볼 수 있다. 본인의 치료에 의해 환자가 나을 수 있다는 경험과 자신감이 치아를 살리는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고 보인다. 첫 번째 치과의사는 본인의 경험으로는 치아를 회복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치아를 빼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모든 치과의사의 실력은 같지 않기 때문에 치아를 살리는 치료를 하기로 했지만 결과가 모두 좋을 수는 없다. 다만 현대의 치과의사의 역할이 치아를 뽑는 것보다 치아를 치료하는 역할이라 생각한다면 치료해보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면이다.


(치아를 보존하는 척하면서 이짓 저짓 하다가 결국 발치로 인도하는 치과의사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그냥 나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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