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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을 나왔다. 직장을 옮길 수 없어 같은 도시에 있지만 집을 나오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낡았지만 혼자 사는 집...
사람이 없어 온기가 없었지만 집에 돌아올 때 기쁜 마음으로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집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많은 일이라기보단 언젠가 터져야 할 일이 이제 휘몰아쳤을 뿐이다.
진즉에 휘몰아쳤어야 했던 일인데 너무 늦게 휘몰아친 감도 있었다.
마음이 심란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다고 느껴진 건 7년 전부터였지만 확실히 내가 느낀 건 5년 전부터였다.
평소엔 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던 엄마가 매일 친구들을 만나며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쯤 엄마가 면허도 따 운전해 다녔기 때문에 엄마는 더 신나게 여기저기를 다녔다.
그땐 그럴려니 했다.
큰애도 대학생이고, 막내도 고등학생이니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할 정도로 컸고, 엄마가 놀러 다니는 건 나쁜 게 아녔으니까.
하지만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무언가 엄마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이상한 낌새가 들어 엄마 휴대폰을 봤다.
그때만 해도 휴대폰 잠금을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보는 건 쉬웠다.
통화내역을 봤다.
한 번호로부터 여러 번 문자가 왔었다. 하지만 문자함에는 그 번호로 온 문자가 없었다.
발신내역을 봤다. 발신내역은 없었다.
그 전화번호를 보았다.
뭔가 낯이 익었다.
얼마 전 엄마가 뜬금없이 전화번호를 바꿨었는데 뒷자리도 바꿨었다.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는 번호랑 뒷자리가 같았다.
거기다가 저장된 이름은 애칭 같은 느낌이었다.
단축번호를 보니 이 번호가 7번.
일단 몰라 번호를 메모해두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아빠 휴대폰에서 그 번호를 검색해보았다.
있었다.
카센터를 하는 엄마의 동창이었다.
내가 몇 번 본 적이 있는 아저씨였다.
그 순간 화가 났다. 손이 떨렸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엄마폰으로 그 번호에 전화했다.
여러 번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냥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대로 엄마 폰을 초기화시켰다.
나중에 확인한 엄마가 나에게 화를 냈다.
다음날 내가
엄마한테 조용히 따져 물었지만
나에게 헛소리를 한다며 오히려 몰아세웠다.
남의 휴대폰이나 엿보냐며 몰아세웠다.
아빠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아빠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굳이 내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내 말을 믿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1년이 지났다. 얼마나 엄마가 티를 내고 다니는지
동생도 눈치를 챘다. 동생은 엄마가 통화를 하는데 바로 앞에서 받지 않고
나가서 받거나 말투가 수상해 눈치를 채고 있었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어느 날 집에 갔을 때
아빠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엄마가 바람을 피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대답을 하는 바람에
아빠도 내가 알고 있었단 사실을 알았다.
아빠는 문자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엄마가 일찍 자는데 휴대폰이 울리는데 진동이 계속 울려
전화인 줄 알고 열어보니 문자가 여러 개 온 거였다.
그 남자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처음엔 뭐해?로 시작했다가 답이 안 오니
아프니 자니로 시작해서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로 문자가 오고 있었다.
아빠는 혹시 몰라 그 문자들을 사진 찍어놓았다. (흔들리긴 했지만)
엄마한테 따졌지만 그 남자가 혼자 난리 친 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빠가 그럼 차단하라고 했지만 엄마가
친구인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해?
라고 했다고 한다.
아빠한테도 그렇게 대답하는데 내가 따져 물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겠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빠에겐 아빠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간은 흘러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