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프라우의 시린 순수

칠순에 마주한 만년설과 가족의 온기

by 시니어더크

어제는 숙소 주변인 그린델발트를 천천히 거닐며 스위스의 정취에 흠뻑 젖어들었다. 융프라우 산자락 아래 보석처럼 박힌 이 초원 마을은 나지막한 샬레풍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동화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마을 중심가에 들어서자 현대식 건물들이 하나둘 보였지만, 그조차 스위스 특유의 목조 양식을 고수하고 있어 풍경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 있었다. 온종일 마을의 기운을 들이켜며 맛있는 현지 음식을 맛보고, 노천카페에 앉아 따뜻한 음료 한 잔과 함께 풍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행복한 하루였다.


산책하는 내내 유독 내 시선을 붙든 것은 건물 창가마다 정성스럽게 장식된 꽃들이었다. 층마다, 창마다 저마다의 색깔로 피어난 꽃들은 하나같이 생기가 넘쳤다. 누군가의 지극한 보살핌과 애정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문득 나중에 내 손으로 집을 짓게 된다면, 나 또한 이들처럼 창가에 꽃을 심고 가꾸리라 마음먹었다. 꽃을 돌보는 일이 때론 고단하고 손이 많이 가겠지만, 그 수고로움 뒤에 찾아올 매일 아침의 화사한 인사가 그보다 훨씬 가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전, 나도 누군가의 창가에 저런 꽃 같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요기를 마치고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새벽부터 드리웠던 자욱한 안개는 오전 7시를 넘기고서야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안개 너머로 비로소 웅장한 산세가 드러날 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배낭을 고쳐 매고 융프라우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융프라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아이거 익스프레스'를 택했다. 조금이라도 햇살이 반겨줄 때, 저 높은 곳의 눈부신 풍경을 1분이라도 더 오래 마음속에 저장하고 싶은 간절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토록 사진이나 방송, 가끔은 유튜브 화면으로만 접하며 동경해 왔던 융프라우였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감동은 차원이 달랐다. 아이들이 세심하게 짜온 계획을 따라 우리는 안개의 흔적을 뒤로하고 천천히, 그러나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출발지인 그린델발트 터미널로 향하는 길, 가을의 상쾌하고 알싸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정신을 맑게 깨워주었다. 각자 배낭을 멘 채 초원 사이 길목을 걷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완벽한 풍경화 속의 모델이었다. 칠순을 맞아 떠난 이 여행에서, 앞서가는 아이들의 등은 어느새 나보다 더 듬직한 길잡이가 되어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아들과 딸이 능숙하게 티켓을 구입했다. 이 티켓 한 장이면 융프라우를 오르는 곤돌라와 산악열차는 물론, 내일 예정된 피르스트의 하이킹과 액티비티 열차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아이들의 준비성에 다시금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가 탑승한 '아이거 익스프레스' 곤돌라는 세련된 26인승 캐빈을 갖추고 우리를 순식간에 아이거글렛쳐 역으로 이끌었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1800m의 아이거 북벽이 눈앞에 압도적인 위용으로 다가올 때,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목이 메어 눈시울이 시큰해질 지경이었다. 곤돌라 아래로는 마을을 집어삼킨 하얀 구름바다가 마치 솜사탕처럼 깔려 있어 우리가 얼마나 높은 곳으로 올라왔는지를 실감케 했다. 쏟아지는 가을 햇살 아래 금빛으로 부서지는 만년설산의 풍광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아이거글렛쳐 역에 도착하자 파노라마 홀에서부터 환상적인 산악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잠시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뒤, 다시 산악열차에 몸을 싣고 터널을 지나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해발 3454m의 융프라우요흐에 다다랐다. 단 45분 만에 우리를 이 비현실적인 빙하의 세계로 데려다준 현대 기술에 경탄하며, 우리는 얼음궁전과 알파인 센세이션을 돌며 대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 작품들을 여유롭게 만끽했다.

정상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 포토존에서 인생의 한 장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는 포토존 앞에 서서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생전 두고두고 꺼내 볼 소중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많은 목소리들이 우리 한국말이었던 것이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웃으며 안부를 묻는 이들이 모두 동포들이었다. 2019년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가던 우리네 아주머니 부대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스쳤다. 이곳 융프라우 역시 고국의 이웃들이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에 묘한 동질감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도 어느 한국분께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하여,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선명하게 휘날리는 붉은 스위스 국기 밑에서 가족사진과 동영상을 남겼다. 발아래로는 하얀 구름바다가 시야를 살짝 가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오로지 우리 눈앞의 설산과 빙하만이 온 세상을 차지한 듯 더욱 장엄하게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레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조그만 얼음 덩어리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유럽 최고봉의 눈도 손바닥에 전해지는 시린 촉각은 우리 집 앞마당에서 만지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투명함과 순결함만큼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고결했다. 칠순의 나이에 만난 이 시린 감촉은, 지나온 세월의 부유물을 말끔히 씻어내주는 듯했다. 내 손 안에서 서서히 녹아가는 그 차가운 순수함을 느끼며, 나는 이 찬란한 여정의 기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영원히 각인시켰다.


유럽의 지붕이라 일컫는 융프라우 정상을 눈과 마음에 가득 담고, 서늘한 공기를 뒤로한 채 몇 걸음 내려와 실내로 들어섰다. 그곳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매점과 휴게 공간이 마련된 곳이었다. 고소한 빵 냄새와 진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창밖의 혹독한 추위와 대비되는 실내의 온기가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곳에는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일종의 성지순례처럼 전해지는 특별한 풍경이 하나 있다. 바로 융프라우 산악열차 티켓을 소지한 한국인에게 제공되는 '신라면'이다. 타국 만리타향, 그것도 해발 3,454m의 설산 한복판에서 낯익은 붉은색 컵라면 용기를 마주하는 기분은 무척이나 묘했다. 현지 물가로 따지면 만 원이 훌쩍 넘는 귀한 몸이라지만, 우리에게는 가격보다 그 존재 자체가 주는 반가움이 더 컸다.

우리는 당당하게 티켓을 제시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 세 개를 받아 들었다. 미리 준비해 온 은박지에 싼 토스트,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곁들여 설산 위의 만찬을 시작했다. 집 거실에서 흔하게 먹던 라면이건만, 융프라우의 만년설을 바라보며 후루룩 들이키는 국물 맛은 사뭇 달랐다. 맵싸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고산지대의 한기를 단숨에 녹여주었다. 아마도 그 맛 속에는 고국에 대한 향수와, 이 높은 곳까지 무사히 올라왔다는 안도감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든든해진 배를 쓸어내리며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여정은 산의 속살을 구경하는 동굴 탐험이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동굴 내부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빛을 발하며 화려한 조각품들을 비추고 있었다. 빛의 향연을 지나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드디어 이번 여정의 백미인 '빙하 얼음 동굴'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천장과 바닥, 벽면 전체가 수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거대한 빙하를 깎아 만든 곳이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얼음의 매끄러운 감촉에 절로 긴장이 감돌았다.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질 법도 했지만, 다행히 벽을 따라 튼튼한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차가운 난간을 꼭 붙든 채 조심조심 얼음의 궁전을 거닐었다. 동굴 곳곳에는 얼음을 깎아 만든 정교한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아름다운 조각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관람객이 내뿜는 체온과 숨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조각품들이 조금씩 녹아내린다고 한다. 형태가 흐릿해질 때쯤이면 작가들이 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교체 전시한다는 설명을 들으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형상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끊임없이 매만지고 다듬는 정성이 마치 우리네 인생과도 닮아 보였다.


차가운 얼음 벽에 손을 대어보니, 수만 년 전의 시간이 내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칠순의 나이에 마주한 이 얼음 동굴은 차갑지만 눈부셨고, 덧없지만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 신비로운 푸른빛 사이를 유영하듯 걸으며, 융프라우가 허락한 비밀스러운 속살을 마음껏 탐닉했다.

융프라우의 은밀한 속살까지 남김없이 파헤쳐 본 뒤에야 우리는 올라왔던 역순을 밟아 다시 그린델발트 터미널로 향했다. 올라올 때 우리 발치를 하얗게 집어삼켰던 구름바다는 어느덧 썰물처럼 밀려나 있었고, 그 덕분에 감춰졌던 지상의 마을이 한 폭의 세밀화처럼 눈앞에 고스란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곤돌라가 고도를 낮출수록 비현실적인 빙하의 세계는 멀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따스한 생명의 온기가 차올랐다. 초록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푸른 초원 위로는 소들이 한가로이 거닐며 풀을 뜯고, 낮은 샬레풍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마다의 창가에 꽃을 피운 채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하늘의 끝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방금 전 손바닥 위에서 녹아 없어진 그 순결한 얼음 조각을 떠올렸다. 해발 3,454m에서 마주한 그 시린 감각은 칠순이라는 고갯마루를 넘어온 내 삶에 던져진 짧고도 강렬한 질문 같았다. 어쩌면 인생이란 융프라우의 만년설처럼 고결한 이상을 꿈꾸면서도, 결국은 저 아래 그린델발트의 초원처럼 소박하고 따스한 일상을 성실히 일궈가는 과정이 아닐까.


곤돌라가 마침내 지면에 닿는 순간, 나는 배낭을 고쳐 매며 앞서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구름 위의 찬란함도 좋았지만, 내 발을 붙들고 있는 이 포근한 대지와 곁에 있는 가족의 온기가 새삼 눈물겹게 고마웠다. 융프라우의 기운을 가득 담은 가을바람이 뺨을 스쳤다. 오늘 하루, 나는 유럽의 지붕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순수함을 만졌고, 다시 내려온 지상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동화 한 구절을 가슴에 품었다. 그렇게 나의 칠순 여행은 잊지 못할 또 한 페이지의 문장을 완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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