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이해 그리고 오해

by 유사작가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잘 꿰뚫어 보얐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음 사전, 김소연


출처: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70707/85240893/1


요즘 인터넷을 보면 ‘공감능력’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대개 상대방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공감능력이 높다고 한다. 공감이 정말 하나의 능력이 될 수 있을까? 그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공감능력이 능력이 아니고, 모두에게 공감하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공감을 하지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소연의 글처럼, 이해와 공감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을 대강 읽고 원하는 대로 듣기 좋은 대답을 내놓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생각해주는 게 아닌 보편적인 경우에 맞게 일반화하는 것이 확률적으로는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사실 공감은 공감이 아니며, 이해는 이해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해는 오해의 반의어라기보다는 동의어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로 간에 쌓여온 이해와 공감대는 어쩌면 서로를 잇는 다리라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착각은 자유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포용력과 조심성이다. 어떨 땐 대담한 오해가 이해가 될 수도 있지만 굳이 일부러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해와 공감은 어쩌면 더 오지 말고 거기서 멈추라고 그어둔 정지선일지도 모른다. 그 정지선에 서서 서로를 바라볼때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그 선은 점점 희미해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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