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KY
<연재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Kassel) 및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세계 주요 예술 행사를 개최하면서 자타공인 국제 사회에서 주요 예술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 및 예술계 종사자들의 이목이 쏠려 집중되어 온 베를린. 독일 안에서도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렴한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집합이라는 이유에서일까? 베를린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이다. 미술계의 핫 플레이스인 이곳에서 필자는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함께 나눌 기회를 연재 인터뷰를 통해서 마련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열두 번째로 베를린에서 듀오로 활동 중인 OHKY(김주연, 오지은 디자이너)를 만나보았다. 이들은 다양한 프로젝트와 작업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이 난해하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바꾸고, 나아가 하나의 유행으로 이끌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이번 인터뷰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마주했던 경험들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여러 가지 활동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OHKY라는 팀을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팀을 소개해주시자면?
OHKY((김주연, 오지은) 이하 ,,김/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희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디자이너 듀오 ‘’OHKY”입니다. 베를린의 다양한 문화 환경 속에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작업과 프로젝트를 통해서 제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 디자이너 듀오로 함께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두 분은 어떤 계기로 함께 팀을 이루게 됐나요?
김/오: 저희는 한국에서 처음 만났어요. 유학원에서 유학 준비를 하는 과정 중에 함께 작업실을 쓰면서 친해졌어요. 아무래도 ‘독일’이라는 공통의 목표도 있고, 둘 다 디자인을 전공하다 보니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독일에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혼자서 지내는 것보다 덜 외롭고, 서로 의지도 많이 될 것 같아서 함께 독일로 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는가 싶었는데,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한동안은 여러 가지 고민도 많았고, 생각에 잠기는 날들도 많았어요. 그러던 중에 독일을 기반으로 한 예술 커뮤니티를 접하게 됐어요. 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낯선 환경에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꽤 오랫동안 고민만 하면서 지냈었는데,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도 무언가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접할 수 없는 베를린만의 문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활모습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어서 ‘’지니 앤 츄’’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도 운영했어요.
이처럼 소소하게 활동을 해오다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었어요. 그리고 ‘’OHKY’’라는 이름과 브랜드를 가지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지금까지도 진행해오고 있어요.
이: 두 분의 만남은 운명적인 것이 아니었을까요? (웃음)
함께 활동하시는 팀 이름이 ‘’OHKY’’입니다. “OHKY’’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지?
김/오: 저희 팀 이름인 ‘’OHKY”에는 사실 큰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아요. 저희의 성인 김(Kim) 씨와 오(Oh) 씨에서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오케이’의 긍정적인 의미도 겸하기도 해요. 사실 저희가 자주 ‘오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저희에게도 낯설지 않고 국적을 떠나 누구에게나 친숙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웃음)
이: “OHKY”의 홈페이지를 보면,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라는 모토(motto)를 지니고 있다.’라고 소개되어있는데요. 이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자면?
오: 한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관련 업계에서 지내면서, 외국에서 유행하는 작업만을 쫓아가는 경향에 크게 실망했어요. 그래서 외국의 경향을 따라가는 작업이 아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너무 익숙해서 평소에 잘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관해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익숙해서 특별하다고 생각 못 했던 것들이 알고 보면 오히려 새롭게 인식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김: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한 가방회사와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함께 했었던 적이 있어요. ‘한국의 전통미’를 주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어요. 당시에는 주제를 받아 들고서는 어린 마음에 촌스럽고 그저 난해한 주제라고 불평을 했었어요. 하지만 오늘날 베를린에서 지내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에 비춰보자면, ‘한국의 전통미’라는 주제는 동시대의 디자인을 통해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선 제 경험처럼 또래의 젊은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전통적인 미는 촌스럽고, 어렵고, 부담스럽다’라는 선입견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라는 모토 아래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 이번에는 그간의 프로젝트와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첫 번 째 프로젝트였던 <백년해로 - 성탄절의 혼인식>가 매우 궁금한데요. 이 작업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자면?
김/오: 처음으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까 ‘재밌게 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어요. 이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정리한 끝에 ‘우리가 처음으로 OHKY로서 함께하는 작업이니까 앞으로도 처음 마음가짐처럼 재밌게 오래오래 작업하자’라는 메시지가 나왔어요.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배우자와의 평생을 함께한다’는 의미를 지닌 ’ 혼인식’이라는 콘셉트를 설정하였고, 사진으로 그 기록을 남겼어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베를린의 축제 분위기를 한국전통의 이미지로 재해석했다.
‘성탄절의 혼인식’ 이라는 컨셉으로 한국전통의 혼인식과 유럽의 가장 대표적인 축제인 크리스마스를 결합하여, 동시대적이면서도 한국의 전통적인 색이 강렬한 OHKY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프로젝트이다.
- OHKY <백년해로> 작업 설명
그리고 작업을 했을 때가 크리스마스 기간이었어요.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매우 크고 중요한 축제인데,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크리스마스 기간에 진행한 작업인 만큼 당시 축제의 분위기를 작업 콘셉트인 ‘혼인식’의 이미지 속에 함께 담아내려고 노력했었던 작업이에요.
이: 이어서 <애국지성>이라는 프로젝트를 두 번째로 진행하셨습니다. <애국지성>이라는 제목부터 꽤 흥미로운데요. 이 프로젝트에 관해서 설명해주시자면?
김/오: ‘애국 지성’이라는 말의 뜻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첫 번째 프로젝트가 사진 기반의 에디토리얼(editorial) 작업이었다면, 두 번째 작업은 그래픽(graphic) 작업이에요. 호랑이와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합친 그래픽 작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이 작업을 시작할 때 던졌던 질문은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였어요. 그리고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래픽 작업을 거쳐서 새롭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한국을 생각했을 때 떠올랐던 이미지로는 호랑이, 무궁화, 태극기 등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호랑이로 작업하면 이곳 현지에서도 잘 접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 같았어요. 동시에 저희가 가지고 있는 한국의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담기에 수월하고요.
처음에는 단순히 그래픽 작업만을 생각하고 진행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가 문득 베를린에서 동양인으로 지내면서 ‘중국인이야? 일본인이야?’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게 생각이 났어요.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래픽 작업에서 그치지 않고 그래픽 디자인을 포함한 옷을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겉으로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게 옷이다 보니, 정체성을 알리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였던 것 같아요. 또한, 옷을 입는 행위 자체도 저희 작업의 일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서 베를린에서 자주 입고 다녔어요. 덕분에 주변에서 ‘이게 뭐야?’ 혹은 ‘이 디자인 이쁘다.’와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작업에 관해서 설명해주기도 하고 혹은 한국과 연관된 이미지들을 보여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이: <애국지성> 작업에 이은 세 번째 프로젝트 <자유한국>은 어떤 작업인가요?
김/오: 앞선 작업을 위해서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여러 가지 일로 중국 상해에 잠시 갔었는데요. 상해에 잠시 있으면서 그곳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물에 들릴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인상 깊게 봤던 것 중의 하나가 임시정부의 월간지 책자였어요. 당시 임시정부가 프랑스 파리에서 독립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월간지 형식의 책자를 발행했었는데, 그 책자의 이름이 『자유 한국(La Corée Libre)』이었어요.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봤던 책자로부터 영향을 받아 세 번째 작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메종 키츠네(Maison Kitsuné)에서 욱일기를 콘셉트로 한 시즌 디자인이 크게 논란이 됐었죠. 게다가 한국인 남자 모델분이 함께 작업한 걸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 논란을 계기로 베를린에서 지내면서 심심찮게 욱일기가 가방, 옷, 양말 등 디자인 제품에 많이 차용되고 있고, 사람들이 그 의미를 모른 체 메고, 입고, 신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다양한 제품에 디자인된 욱일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발 빠르게 작업을 하게 됐어요. 마침 작업을 하던 날이 3.1절이었고,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앞선, 사진 에디토리얼 작업과 그래픽 작업과는 다르게 패션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베를린에서 작업하기에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직접 한복을 만들고 그 위에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써 내려가면서 작업했어요. 이번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기미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잘 몰랐어요. 작업을 하면서 한 명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읽고, 다른 한 명이 받아 적었는데 그때 정말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선조들이 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으며, 독립을 왜 그토록 간절히 바라 왔는지를 살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자유한국>에 이어서 <산중호걸>이라는 작업을 진행하셨는데요. 이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자면?
김/오: 앞서 저희 모토에 관한 이야기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작업 역시 한국 전통의 미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지난 <애국지성>에서 만들었던 그래픽 작업을 바탕으로 스티커와 핸드폰 케이스 등의 굿즈(goods)를 제작했어요. 비교적 가벼운 느낌의 굿즈들을 통해서 우리의 작업 의도와 생각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요. 핸드폰 케이스 특성상, 뒷면이 타인에게 보이곤 하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의 메시지가 담긴 작업물이 사람들에게 더욱 많이 노출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그리고 제작한 굿즈들은 현재 베를린에 있는 K-STUDIO 편집샵에서도 살펴보실 수 있어요.
이: 앞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타이틀이 네 글자로 구성되어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프로젝트의 타이틀을 네 글자 구성으로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김/오: 첫 프로젝트에서 한국 전통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떤 제목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에 첫 결과물을 보고 나서 둘 다 본능적으로 ‘사자성어로 제목을 지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계속 작업을 이어오다 보니 다음 제목도, 그다음 제목도 네 글자로 짓게 됐어요. 하나씩 지어나갈수록 사자성어가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확신했고, 마음에도 들었어요. 여담이지만 네 글자 제목이 하나하나 쌓이는 걸 보는 것도 흐뭇했어요. (웃음)
이: 작업을 진행하시는 데에 있어서 어떤 요소로부터 영감을 많이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오: 작업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온라인·오프라인으로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해요. 그리고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파트너와 함께 작업 구상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나눈 이야기 속에서 저희 작업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또한, 한국의 민화와 한국의 복식에서도 작업의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에요.
이: 듀오로 함께 작업하시고 계시는데, 듀오로 활동해서 좋은 점 혹은 어려운 점이 있다면?
김/오: 내가 부족한 부분을 파트너가 채워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하면서 서로 배우는 것도 많고, 의지도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는 작업할 때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함께 생활하면서도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나눠요. 서로 아쉬운 점이 없을 때까지 대화를 나누는 편이에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작업을 하면서 갈등을 겪는 경우는 드물어요. 듀오로 활동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시고 계시는데,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김/오: 물론 한국도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베를린에서 지내면서 사람들이 예술과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관심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게 사회적으로 관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는데 이 덕분에 크게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OHKY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김/오: 지금까지의 작업처럼 ‘한국 전통의 미’를 작업을 통해서 쉽게 풀어나갈 생각이에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저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또한, 학교에 진학하여 보다 나은 작업환경과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저희들만의 템포로 꾸준히 작업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OHKY 작업들도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오: 인터뷰 요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히 열심히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OHKY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