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들 위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가는 일이야.*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책 속에서 발견한 문장에 책 귀퉁이를 접어두었던 까닭은, 이만큼 절묘하게 청소를 인생에 비유한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맨날 청소를 하면 뭐하니. 이 놈의 집구석은 또 더러워지는데."
거실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보면 한쪽에서 청소기 소리와 뒤섞여 들리던 엄마의 말. 단순히 엄마가 늘 하는 말 습관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 말은 사실 그 자체였다.
이 말을 내가 본격적으로 체감하게 된 건, 대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살게 되면서부터다.
다행히도(?) 나에겐 매 학기마다 깔끔한 룸 메이트들을 만나는 천운이 따랐기 때문에, 청소에 있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들에게 나 역시도 깨끗한 룸 메이트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서로가 함께 쓰는 공용공간이었던 화장실 청소는 내 차례가 어찌나 금방 오던지. 매번 흥건한 물기 속에서 배수구 틈새 사이사이마다 걸려있는 머리카락을 빼내는 작업은 정말이지... 기억을 더듬는 지금도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하지만 하루라도 청소 미루게 되면 성인 여성 두 명의 떨어진 머리카락을 견디지 못한 배수구가 막혀버리는 불상사가 생겨버리는 까닭에, 화장실 청소만큼은 순서를 정해가며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장기간 집을 비우실 때마다 간헐적으로 경험하였던 자취의 맛은 아주 매콤했다. 밖에서 나가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배달을 시켜먹으면 처리해야 할 일회용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뭘 만들어 먹기라도 하면 먹은 양보다 쓰레기가 배로 나왔고, 설거지는 하루만 하지 않아도 금방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만 되면, 배수구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음식물 냄새와 초파리의 습격이 무서워서라도 바로바로 치워야만 했다.
나의 오랜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청소는, 열심히 해도 생색을 내기 힘든 구석이 있다. 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원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청소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라도 청소를 소홀히 하다간 금세 더러워진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가는 일이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살다 보니 먼지같이 지워내고, 잊고 싶은 기억들이 쌓이다 쌓여 내 마음을 뿌예지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하루 종일 쓸고 닦아도, 다음 날이면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 수 없는 먼지 같은 잡념들은 내 마음속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주기적으로 이 먼지를 닦아내주지 않는다면, 어느새 내 마음은 퀴퀴한 먼지 냄새를 동반한, (우리 집 임 여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먼지 구덩이 소굴’이 되기 십상이다. 이 ‘먼지 구덩이’ 같은 마음속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모르게 되고, 그렇게 방치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들여다보기도 싫어진다.
스무 살, 처음 집을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나의 우선순위는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주변의 선후배들이 차지하곤 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나의 우선순위에서 가족은 자꾸 밀려났다.
자주 전화드리겠다던 과거의 나는 까맣게 잊은 채, 자주라는 빈도의 정의를 나 혼자 재정립해 갔다. 일주일에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는 주가 늘어나던 어느 날 저녁, 아빠한테 문자가 왔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남의 자식만도 못하다며 엄마가 많이 속상해하고 있다는 문자였다. 아빠의 문자를 받고서야 집으로 건 전화에도 나를 반가워하던 엄마의 목소리에서 느꼈던 마음을 분명 잊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그로부터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몇 년 전 엄마의 목소리를 가슴 저 깊은 곳에 방치해두었던 것 같다.
처음 사회초년생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을 때는 회사에서의 적응이 힘들다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는 우리 팀 업무가 많다고, 오늘은 상사한테 싫은 소리를 들었다며 마음의 창을 모조리 닫아둔 채 지내던 날들. 지금까지 난 귀찮다고 마음속 청소를 미뤄두었다.
오랫동안 일에 치이며 살아간다는 핑계로 소홀히 하던 마음속 청소에 돌입한다. 켜켜이 쌓인 일상의 먼지들을 들춰내자, 지난날 엄마의 목소리가 비로소 선명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만나게 된 책 속 문장에서 나는 떠올린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마음속 먼지들을 닦아줘야 한다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내 마음에 쉽게 쌓이지 못하게 하자고 말이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먼지가 쌓일 틈이 없도록 열심히 닦아내야지. 마음 한 구석에서, 소중한 것들이 빛을 바래지 않고 늘 빛날 수 있도록.
오늘 퇴근길에는 가족들과 함께 먹을 삼겹살 한 근을 사 가려한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먼지까지 시원하게 내려 보내기에는 역시 가족들과 함께 먹는 기름진 삼겹살 만한 것이 없다.
*고래, 천명관, 문학동네(2004)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Opinion]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먼지를 닦아가는 일 [문화 전반]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