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치 행복을 유예하지 마세요
'아끼다 똥 된다.'라는 말을 꽤 어릴 적부터 체감하며 살아왔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이 말을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은, 아마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제일 맛있는 반찬을 아껴 두었다가 맨 마지막에 먹는 편이었다. 장난기가 심한 우리 아빠는 어린 나를 놀리고 싶은 마음(으로 믿고 싶다)이셨는지 매번 이런 말을 하셨다.
"너 이거 안 먹을 거면 아빠가 먹는다~"
식사 시간 내내 아껴 먹던 소시지 한쪽이 아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이런 걸까?'
그밖에도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나왔다면 숱하게 들었을, '대학 가면 네 마음대로 해라.'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나도록 들어왔다.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은 채로 내가 대학생이 될 날만을 기다려왔다. 나의 모든 계획을, 대학교 이후의 삶으로 미루어 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야간 자율학습 시간마다 옆자리 친구가 PMP에 담아온 아이돌 리얼리티를 같이 보자며 나를 유혹할 때마다 정중히 거절하였으며, (물론 매 순간 참지는 못했다) 이 시기에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는 또 어찌나 많던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위시리스트에 애써 꾹꾹 눌러 담으며 참기로 했다.
하지만 '대학 가면 네 마음대로 해라.'라던 엄마의 말은 '독립하면 네 마음대로 해라.'로 슬그머니 수정되었고, 수능만 끝나면 꼭 정주행 하겠다 다짐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오빠들 중 한 명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마음 편히 프로그램을 소비하기에 껄끄러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난날 내가 적어놓은 위시리스트 속의 영화나 드라마 중에 내가 제대로 본 것은, 한 편도 없다.
지금 내게 무언가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이럴 때가 아닌데…'라며 나 스스로를 자주 다그치곤 했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해도 모자를 시간에 내가 과연 딴짓을 해도 될까,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딴짓'을 참음으로써 내가 그만큼 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했나? 그건 또 아니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딴짓 생각에 집중력을 잃을 때가 오히려 많았다. 딴짓의 마음을 억누르며 무언가를 했던 시간보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소소하게 수집했던 딴짓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더 선명히 새겨져 있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자주 곱씹게 된다.
물론 당장의 행복을 유예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나의 무분별한 K-POP 소비를 여러 사람들이 말려준 덕분에 겨우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듯, 지금 당장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하는 시기에 그것을 함으로써 놓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유예 습관이 평상시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이럴 때가 아니'라며 미루는 습관. 매번 '이럴 때'가 아니라면, 그럼 대체 우리에게 '이럴 때'란 언제 오는 걸까?
여느 때처럼 유튜브 영상 속을 헤매던 중,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꿈을 어떤 지점에 두지 않고 그냥 지금으로 계속 갖고 오는 거예요, 현재로.
내 꿈은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니까.*
'이럴 때'만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늘 미래에 머물러 있었다.
식사 마지막에 소시지를 먹으며 행복할 나, 대학생이 될 나... 하지만 내가 기다려온 미래는 늘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미래의 나에게 유예해온 행복은, 나에게 온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았다.
이제 나는 현재의 행복을 더 이상 미래의 나에게 미루지 않으려 한다. 매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친구와 약속을 잡아야지. 그리고 우리는 동네 피자집에서 맥주를 함께 마실 것이다. 오늘 어치의 행복을 미루지 않고, 오늘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연LEEYEON,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2022.05.11.일자 유튜브 영상 참조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Opinion] 오늘의 행복을 유예하는 습관 [문화 전반]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