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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Jun 08.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

PEAK FESTIVAL 2024

나는 여름이 싫다. 여름이 싫은 이유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땀이 많은 나에게 여름은 회색 옷은 절대 금물인 계절이다. 조금만 온도가 올라가도 삐질삐질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땀자국은 나뿐만 아니라 마주한 상대에게도 당혹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나는 냄새에 정말이지 민감하다. 여름은 잠시 실온에 둔 음식도 팍 쉬어버리는 계절이다. 쉬어버린 음식은 필연적으로 쉰내를 동반한다. 음식뿐만일까, 사람들이 밀집한 공공장소에서 나는 여름의 냄새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는 달리 여름은 뜨거운 청춘으로 자주 치환되는 계절이다.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봄에 가깝겠으나 청춘에 연상되는 이미지는 여름 쪽이 좀 더 잘 어울린다. 새파란 하늘과 저마다의 푸름을 자랑하는 생명들, 어지럽게 쏟아지는 장마라는 시기까지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 모두 담겨 있으니 말이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유월의 첫날,  <피크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난지한강공원으로 가는 길. 전날까지도 날씨 예보에 눈치 없이 떠 있던 비 소식에 걱정했던 어제의 내가 무색하게도 창문에 비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입장 줄을 지나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과장을 더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방금 시작된 마치(MRCH)의 무대가 BGM이 되고, 기대와 행복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아마 저 사람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도 그랬을려나. 


친구와 나는 피크닉존으로 향했다. 어느 자리가 오늘의 축제를 즐기기 가장 적합할지 상의하며 잔디밭 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하늘을 향해 누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어제까지만 해도 만원 지하철 안으로 몸을 구겨 넣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가 가슴속 깊이 쏟아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나, 금강산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식(食)'이 빠지면 큰일 난다. 종종걸음으로 F&B존으로 향하던 길에 피크 페스티벌에서만 찍을 수 있는 포토 프레임과 여러 이벤트 부스들 들리며 야무지게 축제를 즐긴다.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피크닉존으로 돌아오자 어느덧 잔디밭은 각자의 개성이 담긴 네모난 돗자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미리 사온 먹거리와 함께 돗자리에서 무대를 즐기던 우리는 로맨틱펀치의 무대가 시작되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순간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나갈래?" 친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운동화를 구겨 신고 홀린 듯 스탠딩존으로 향한다. 그야말로 몸을 사리지 않는 무대였다. 극 사이드였지만 무대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본 무대와 스탠딩존에 이어 피크닉존까지 점령한 그는 장내를 휘어잡는다. 무대와 전광판을 번갈아 바라보던 우리가 그날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은 '대박'이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페스티벌에 가면 돗자리 위에만 누워있게 되던 나는 어느새 두 손을 높게 흔들고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의 박자를 타고, 가사를 따라 부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룹명으로만 알고 있던 그를 나는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신기했다.  



피크 페스티벌의 즐거움은 여러 깃발들 속 문구를 보며 배가 되었다. '히히 못 가', '락페가 장난이야? 놀러 왔어?' 등의 문구는 축제 현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길거리가 되었다. 


영원히 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뜨거운 태양도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어스름이 찾아올 즈음, 첫날의 헤드라이너 넬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피크 페스티벌에서 가장 기대했던 무대이기도 했다. 헤드라이너의 무대답게 어느새 스탠딩 존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고, 각자의 함성과 환호로 넬을 반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넬의 무대에서는 힘 있는 노랫말과 함께 다채롭게 펼쳐지던 LED 효과가 무척 멋졌는데, 멜로디와 가사에 맞춰 변하는 효과가 곡의 분위기를 더했다. 익숙한 도입부의 '기억을 걷는 시간'을 부를 적에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떼창을 이어가기도 했다. 넬의 김종완은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려 관객들과 함께 노래를 완성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가사를 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오늘의 축제의 'PEAK'인 순간으로 남았다. 




언젠가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이라고 정의 내린 적이 있다. 이 글의 도입부를 다시 수정해 보려고 한다. 나는 여름이 싫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청춘의 열기를 나눌 수 있는 여름이 좋다, 고. 


축제가 끝난 후, 상기된 얼굴을 감싸는 여름밤의 선선한 공기는 내게 여름이 왔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내가 그리도 싫어하던 땀 냄새가 온종일 나를 휘감고 있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피크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오늘의 여름이 내 마음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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