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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Oct 22. 2024

인간은 모두 입체적이다 종이인간, 너도 그렇다

전시, <장줄리앙의 종이세상>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주인공 유미와 바비의 첫 만남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유미가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바비의 첫 등장 모습을 3차원 캐릭터가 아닌 평면의 2차원 캐릭터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다 유미가 바비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웹툰 속에서 바비는 입체적인 3차원 캐릭터가 된다.



전시 <장줄리앙의 종이세상>도 그렇다. 장줄리앙이 구현한 종이세상 속 종이 인간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유미의 세상 속 바비가 3차원 인물이 되듯 종이 속에서 방금 막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과 마주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바로 종이공장(Paper Factory)이다. 관객들은 이곳에서 태어난 그들의 세상을 하나하나 뜯어 살펴본다. 전시장 속 종이 인간들은 저마다의 행동을 취하고 있다.


페이퍼 시티(Paper City)에서 누군가는 휴대폰에 뜬 번호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누구는 자신의 몸에 스스로 수염이나 옷의 무늬를 새기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종이공장에서 획일화된 모습으로 태어나 비슷한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그들의 삶이 녹아 있다.




주말 점심에 들린 탓인지는 이번 전시에는 유독 아이들과 함께 들린 가족단위의 관객이 많았다. 아이들은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전시장 이곳저곳을 누빈다.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본 이번 전시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던 차에 옆에 있던 아이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가 엄마에게 눈앞의 페이퍼 정글(Paper Jungle) 속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쫑알쫑알, 아이의 감상을 엿들으며 생각한다. 이게 바로 전시가 가지는 매력이라고. 전시장을 찾은 관객의 수만큼이나 새로운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것. 각자의 해석과 스토리텔링을 덧입혀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시간이 맞지 않아 이번 전시의 도슨트를 듣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도슨트를 듣지 않고 타인의 해석을 더해보는 관람 방법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아이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봤다. 전시 나들이를 나온 가족 단위부터 친구와 연인까지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누군가는 집중하느라 한쪽 눈썹이 들린 채 잔뜩 찡그린 표정이고, 누군가는 일행과 대화하며 크게 웃는다. 모두 다른 얼굴에 다른 표정이다. 별 관심 없이 내 주위를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부러 인식하자 그들은 그제야 3차원의 모습으로 내 시야 속에 담긴다.


3차원의 종이로 구현된 이곳의 세상이 왜인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장줄리안이 이곳에 구현한 종이 세상은 말 그대로 작은 사회다. 내가 길거리에서 무심코 스친 타인들이 납작한 종이에서 벗어난 종이인간으로, 그들의 순간을 포착한 장면이 되어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다.  


어쩌면 이 전시는 이들을 관람하는 사람들까지 더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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