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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view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보내는 당부

전시, <퓰리처상 사진전>

by 모래


늘어지는 주말 오전,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 핸드폰만 연신 뒤적거리다 엄마의 바뀐 프로필 사진을 누른다. 엄마는 꼭 행복한 순간에 카메라를 든다. 이를테면 아빠와 집 근처 호수공원을 산책하다 찍은 꽃 사진이라든가, 내가 동네 빵집에서 사 온 본인의 생일 케이크, 명절날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들은 엄마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된다.


평소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나도 잊고 싶지 않은 순간과 마주할 때면 허겁지겁 카메라를 든다. 여행지에서 바라본 밤하늘, 엄마 아빠의 뒷모습, 내 눈앞에 존재하는 세상의 귀여운 모든 것들.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장면은 정지되어 있지만, 신기하게도 사진이 주는 울림은 어떠한 글보다 생생하다. 어떤 사진은 단번에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날 데려간다.



정지된 순간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시간이 정지된 그 순간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죠.

옛말에는 '백문이 불여일견'이 있고, 글쓰기 학원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은 설명하려 하지 말고 장면을 그리듯 글을 쓰라는 말이었다. 여러 줄의 글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 퓰리처상 사진전은 우리에게 보다 강렬한 방법으로 인류가 지나온 과거의 날들을 한치의 과장도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대로 구성된 사진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사진 오른쪽에 위치한 작은 설명란을 읽는다. 다시 사진을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줄의 문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전시장 가득히 펼쳐진다. 나는 '어떻게 이런 순간을 포착했을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사진들 앞에서 '잘 찍었다'는 말을 애써 삼킨다. 누군가의 일생이 찍힌 사진 앞에서 내가 감히 '잘'이라는 부사를 붙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발아래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되풀이되는 전 세계의 비극과 전쟁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기괴하리만큼 잔인하고 반복되는 참상을 보고 있자니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Alamy Stock Photo

아이의 두 번째 생일날, 사진 속 아이는 화재로 숨을 거뒀다. 론 올슈웽거가 찍은 이 사진은 세인트루이스 포스트지의 호외판 1면에 실리며 화재 예방 프로그램이 강조되었고 지금도 공공기관과 학교, 지역 소방서에 화재경보기와 함께 걸려있다고 한다.


모든 안전수칙은 피로 적혀 있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사진은 단순한 사진의 의미를 넘어선다.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는 에디 애덤스의 말처럼, 사진은 사라져 가는 순간을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렌즈가 기록한 찰나는 장면이 되고 장면은 영원이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가닿는다. 그들이 찍은 사진은 앞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편지가 되는 셈이다.


Alamy Stock Photo

관람에 있어 연신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인상 깊은 사진이 있다. 바로 시카고에서 살 집을 구한 해맑은 아이의 미소를 담은 사진. 이 사진을 찍은 존 에이치 화이트는 인생 곳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시 같은 기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 장의 기억은 영원히 기록되어 미래의 우리를 계속하여 살게 만드는 힘을 준다.



전시장을 나오니, 나보다 먼저 나온 엄마가 커다란 천 포스터가 걸려있는 미술관 외관을 핸드폰 렌즈 안에 담고 있다. 엄마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엄마를 부르며 전시장을 나오면서 챙겼던 팸플릿 한 장을 건넨다. 집에 와서 보니 엄마의 프로필 사진이 오늘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 있다. 오늘의 사진이 엄마에게 생생한 추억의 한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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