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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r 13. 2024

이 나라에서는 빨래마저 즐겁다니

뉴질랜드에서 빨래한 이야기


  "Are you serious? 진심인가요? 제정신이에요?"

제목을 본 분들의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처음엔 놀랐다. 빨래를 하는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뉴질랜드에서 여러 달을 지내면서 빨래는 피할 수 없는 to do list 중에 하나였다. 장기 여행자들은 아마도 공감할 것이다. 여기서도 당연히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세탁물을 잘 모았다가 세탁기에 차곡차곡 집어넣고 세탁용 세제를 넣어주고 플레이를 눌러주면 끝. 서울에서 빨래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뉴질랜드에서는 아파트 베란다가 아닌 마당이나 뜰에서 빨래를 널어 말린다는 점이다.


곱게 접은 빨래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날씨가 화창한 날을 골라 모아두었던 빨래를 드럼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한 시간이 지나 빨래 건조대를 뒤뜰에 펼쳐놓고 빨래를 걸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위치에 빨래 건조대를 잘 놓아두면 나머진 햇빛과 바람의 몫이다. 자연건조. 이게 바로 내가 빨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다. 당신은 뽀송한 빨래의 감촉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마치 하루 일과를 모두 성공적으로 마친 것만 같은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포근하고 보드라운 감촉 말이다. 건조기에서 꺼내 정전기가 날 것만 같은 인공적인 건조한 촉감과는 차원이 다른 그런 기분 좋은 감촉.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 좋아서 나는 뉴질랜드에 머무는 동안 예보에 맞춰 빨래를 자주 하고 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빨래를 할 수 있는 것은 뉴질랜드의 지리적 환경 덕분이다. 뉴질랜드는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서 사계절 내내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분다. 그래서 뉴질랜드를 여행하다 보면 커다란 풍력 발전용 터빈을  쉽게 볼 수 있다. 뉴질랜드 풍력발전협회에서는 전국적으로 17개의 풍력발전소에서 총 490개의 터빈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한다고 밝혔다. 이는 뉴질랜드 연간 생산 전력의 6%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일조량도 많다. 뉴질랜드 관광청에 따르면 대부분 지역이 2천 시간(약 83일)이 넘는 연간 일조량을 자랑한다. 그리고 공기도 맑은 편이다. 그래서 해가 나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빨래하기 딱 좋은 날이다. 그렇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뉴질랜드 날씨는 하루에도 4계절 날씨를 모두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하늘의 구름색이 수상하다 싶으면 얼른 빨래 건조대를 실내로 들여와야 한다.  


풍력발전용 터빈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최근 삼성과 LG가 앞다투어 "일체형 세탁건조기"를 출시했고 소비자의 반응이 뜨겁다는 기사를 읽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나 역시 효율과 편리를 위해 새로운 전자제품을 구매하고 전기를 써대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 지금 뉴질랜드는 가을에 접어들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북섬 베이 오브 플렌티 지역의 타우랑가에는 이 시기에 일조량과 바람, 비 모두 적당해서 쾌적한 날씨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굳이 세탁기를 돌리지 않더라도 샤워하고 젖은 배스 타월을 바깥뜰에 널어두기만 해도 금방 새 타월 같은 느낌이 난다. 여기 머무는 동안이라도 주어진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 작은 행복을 최대한 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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