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질랜드 가정집에 초대받는 것을 좋아한다. 남들은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궁금해서다. 아무래도 이 나라에는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이 많다 보니 집집마다 집 구성원의 라이프 스타일 취향이 반영된 인테리어를 보고 유니크한 가구나 본 적 없는 아이템도 발견하는 특별하고 재미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들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빈티지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DIY 가구를 좋아하는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제품을 사용하는지를 관찰하다 보면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 이들의 '취향'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져 나의 제한된 문화적 바운더리를 조금 더 확장시켜주기도 한다. 그동안 뉴질랜드에 머물면서 여러 다양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이 중에서 20년 넘게 뉴질랜드에서 산 미국인 건축가의 3층 컨테이너 하우스, 한국인+키위 커플의 도시형 주택, 키위+체코인 커플의 바닷가 주택, 히피스런 키위 커플의 친환경 주택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집들의 공통점은 바로 "현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현관문이 달리고 신발장이 있는 그 공간말이다.
요즘 서양집에서도 집안에서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추세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외부 먼지와 바이러스, 박테리아에 대한 경각심과 위생 개념이 높아졌다고 파악된다. 여전히 침대에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장면이 영화나 미드, 영드에 아직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서양집과 뉴질랜드 가정집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집과 달리 현관 공간과 집 내부가 분리되어있지 않다.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온돌과 같이 '바닥 난방 시스템'이 있어 바닥에 앉는 좌식 생활에 익숙한 동양 문화권이다. 이로 인해 대문을 지나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갈아 신거나 그대로 거실로 올라선다. 하지만 벽난로와 창문 밑에 히팅 시스템이 있고 찬 바닥에 카펫과 러그를 깔아놓아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의자와 소파에 앉는 서양 문화권에서는 집문밖이든 안이든 바닥이 동일한 높이라 현관이 필요 없고 그냥 신발을 벗으면 거기가 현관이었다.
한 때 미국 워싱턴 DC의 스튜디오에서 살았을 때도 현관이란 공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바닥 매트로 공간을 구분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고 매트 위에 있는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하루는 화장실 환풍기가 고장 나서 수리기사분들이 방문했는데 사전에 신문을 이분들의 동선에 맞춰 넓게 깔아 두어서 바닥 오염을 예방했다. 그들은 안전화를 신은채 그냥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닥에 흩어져있는 신문을 본 한 수리기사 분이 "집에 개가 있나요?"라고 내게 물어볼 정도였다. 당연히 개는 없었다.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오자. 미국인 건축가는 홍수나 산사태,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컨테이너를 사용해서 집을 지었다. 1층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다란 빗물 저장 탱크 4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뉴질랜드는 아직 물부족 국가는 아니지만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물'이 큰 이슈가 될 거라며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회색빛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각종 식물로 구성된 화단과 계단 사이로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아이비 화분이 방문객을 반겨준다. 차가운 러스틱 느낌의 컨테이너 철강에 녹색 생명력을 부여한 느낌이었다. 2층과 3층이 개인 공간으로 특별히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고려했다고 한다. 2층 현관문은 나무로 만든 허술한 문이 아니라 철강과 방탄유리로 만들어 아주 튼튼해 보였다. 문을 열면 작은 매트가 깔려있고 거기에서 신발을 벗는다. 크림색 대리석 바닥이 차가워서 슬리퍼는 필수란다. 단열과 채광을 고려한 남향 창문, 아시아 출장길에 사 온 각종 오리엔탈 그릇과 쿠션, 전통 악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 집에는 환기와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에어컨이 필요 없다. 3층 공간은 아직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 중이라 "이 집은 완성형이 아닌 진화형 단계에 있어요, "라고 건축가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인 와이프와 키위 남편 커플의 도시형 주택은 쓰리룸, 쓰리 배쓰룸으로 구성된 2층집이다. 현관이 따로 없고 입구에서 신발을 벗도록 신발 거치대가 있지만 가끔 신발을 신고 부엌과 거실을 가로질러 정원의 후문으로 나가기도 한다. (주차장이 후문에 있다). 집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노란색 벽 앞에 널따란 빈티지 원목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카페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재택근무하기에 딱이라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공간이다. 6살짜리 초등학생 아이가 있어 1층 거실에 책과 장난감 박스가 있긴 하나 아이보다는 어른 중심의 집이라는 인상이 크게 든다. 아이와 관련된 물건들은 2층의 아이 방으로 한정해 두었다. 한국인 와이프의 영향으로 부엌에 쿠쿠밥솥이 놓여있고 팬트리에도 한국 음식 재료가 눈에 띈다. 양문형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가 있으며 벽에는 인사동에서 구매했다는 동양화와 와이프가 직접 그림들이 걸려있다. 거실과 부엌, 식탁, 게스트룸의 벽이 노란색, 녹색, 파란색 등으로 컬러로 분위기를 내었다. 커다란 원목 식탁과 식기 보관함, 장식장 같은 가구들은 중고 가구를 구매했고 전기 포트, 바비큐 그릴은 빨간색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이 반영됐다. 커피를 즐겨 마셔 네스프레소 캡슐형 커피 머신도 있다. 어쩌면 한국인에게 제일 익숙한 집의 모습이다.
체코인 와이프와 키위 남편의 바닷가 주택은 해변가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이 대부분 그러하듯 거실부터 11살 첫째 딸과 5살 둘째 딸이 중심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벽에는 체코 화가가 그린 유화 작품들이 걸려있고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우회전을 하면 지인이 연필로 그린 딸들의 초상화 스케치도 벽을 장식하고 있다. 집에서 신발을 신고 거실과 부엌을 돌아다니거나 맨발 또는 슬리퍼를 신고 있기도 해서 이 집에서는 현관의 개념이 크게 없어 보였다. 워낙에 키위들이 맨발로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일상에서 그런 경계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테라스에는 데크를 깔고 식탁을 두어 날이 좋을 때는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손님을 초대해 대화를 나눈다. 널따란 정원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인 트램펄린과 기니피그 두 마리의 공간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메인 하우스 옆에 붙어있는 게스트를 위한 공간인 스튜디오는 Airbnb로 운영해 부가 수입을 올리고 있다.
히피스러운 커플의 친환경 주택에서는 신발을 문밖에다 벗어두고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오래된 벽난로가 포인트인 거실에는 빈티지 책장과 책상, 편안한 소파를 두었다. 음악과 명상, 댄스를 사랑하는 부부는 이 공간에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단다. 그 옆에 따스한 색감의 커다란 부엌이 있고 환경에 진심인 부부는 정원에서 방금 따온 허브로 만든 티를 대접한다. 특히 퍼마컬처(환경에 무해하게 농사를 짓는 방법)에 관심이 많아 정원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데 음식쓰레기를 비료로 발효시켜 각종 허브와 채소를 기르는 작은 온실을 친절하게 보여주었다. 나도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온실은 규모는 작으나 초보자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조로 확실히 임팩트가 있어 보였다.
현관이 있든 없든,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든 말든, 사실 중요한 것은 '그 집에 머무는 사람이 편안하고 안전감, 행복감을 느끼느냐'일 것이다. 방문객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4년 전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는 이런 차이점에 대해서"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고 놀라워했다면 이제는 "그럴 수 있지. 다를 수 있어, "라고 생각한다. 외국생활에서는 무엇보다 개방적인 마음가짐으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요즘 기업에서도 DEI(Diversity 다양성, Equity 형평성, Inclusion 포용성)를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기업뿐 아니라 개개인이 DEI 렌즈가 장착되야 하지 않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DEI 렌즈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