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콤부차를 만들고 싶어” 친구가 결심한 듯 진지하게 말했다. 옆집 부부의 저녁 식사 초대 자리에서 홈메이드 콤부차 몇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 뒤였다. 그럼 재료랑 레시피 한 번 물어볼게. 옆집 아줌마가 친절하게도 커다란 병에 크리스털과 유기농 설탕, 브라운 이스트와 물을 넣고 면포를 씌어 며칠 발효시키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우선 유리병이 필요했다. 물어보니 OP샵에서 구매했다고 팁을 주셨다. 집에 빈 유리병이 하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기다랗고 큰 유리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친구와 나는 타우랑가에 있는 OP샵 도장 깨기를 하며 커다란 유리병을 찾으러 다녔다. OP샵이란 Opportunity Shop의 준말로 우리나라로 치면 아름다운 가게나 굿윌 스토어 같이 기증받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중고샵이다. 뉴질랜드에는 구세군 가게(Salvation Army)나 OP샵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내건 곳이 마을에 한 두 개 꼭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마도 이들은 새 물건 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이렇게 저렴하게 중고제품을 구매하는 생활 습관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로 옷이나 가구, 주방용품 등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주방용품 중에는 접시, 볼, 컵이나 유리잔, 포크와 나이프, 빈티즈 식기 세트 등 다양하다. 운이 좋으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득템이 가능한 곳이다. 나는 차 안에서 들을 아바(ABBA) CD를 1달러(원화로 800 원대) 구매한 적이 있다. 타우랑가에는 네 군데 OP샵이 있어서 모두 가보았지만 아쉽게도 유리병은 작은 것만 있고 마음에 드는 큰 사이즈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K 마트로 향했다. 여기는 옷과 장난감 등 생활용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형마트인데 주방용품도 저렴하게 취급을 했다. 여기서 손님용 하얀 접시와 볼 세트 4 pcs를 10달러 (원화로 8천 원 대)에 구매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맘에 드는 유리병이 없었다. 다음엔 브리스코스(Briscoes)에 갔다. 홈에 관련된 아이템을 파는 대형 마트였는데 주방용품도 판매하는 곳이다. K마트보다는 전반적으로 가격대가 있었다. 진열대 사이사이를 돌며 꼼꼼하게 둘러보았으나 우리가 원하는 유리병 사이즈는 없었다. 또 어디로 가면 되지? 포기해야 하나? 친구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고메 트레이더(Gourmet Trader)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여기는 수입 주방용품과 고급 식재료를 판매하는 전문 마트였다. 가격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하이엔드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가 원하는 사이즈의 유리병은 없었다.
끝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이케아 뉴질랜드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한국에서 아기자기한 주방용품을 저렴하게 구매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살 때도 간단한 살림살이 도구를 구매했던 경험도 떠올랐다. 하지만 검색해 보니 뉴질랜드에 이케아 매장은 오클랜드에 2025년에나 들어올 것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온라인샵을 간소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아이템은 팔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기존의 유리병을 사용하기로 했다. 빈 손으로 돌아온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번을 계기로 타우랑가에 있는 주방용품 샵은 모조리 방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만약 관련 제품을 사야 한다면 우선 OP샵 => K마트 => 브리스코스 => 고메 트레이더 순으로 쇼핑을 하기로 다짐했다. 여기는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는 게 시간 절약, 기름 절약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유리병은 사이즈가 커서 살균은 못하고 대신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여러 번 부어가며 깨끗이 닦아야 했다. 정량대로 필요한 재료를 모두 넣고 망사를 덮어 고무밴드로 고정했다. 서늘한 곳에 3일 정도 두면 상큼한 천연발효 콤부차가 탄생할 것이다. 차분히 기다리며 내 인생 첫 홈메이드 콤부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