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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Design Feb 15. 2019

디자인 Cre-day:키스 해링

팝아트의 슈퍼스타 <키스해링전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관람

팝아트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바스키아, 작년 말 저희 디자인 크루들이 전시에 다녀왔던 케니 샤프 등의 작가를 떠올리실 수 있을 텐데요. 2월 멜론디자인팀 크리데이에서는 팝아트계의 슈퍼스타 <키스해링전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에 다녀왔습니다. 키스해링은 예술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했고, 짧은 생이었지만 많은 작품을 남겨 보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잘 알려진 아이콘 시리즈를 비롯해 드로잉, 판화, 조각, 사진, 포스터, 앨범 커버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그가 자신의 예술로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Cre-Day : Creative Day
크리데이는 사무실을 벗어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방문, 전시 관람 등 문화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고, 디자이너로서 트렌디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 시간입니다.




팝아트의 슈퍼스타, 키스해링 

[Keith Haring, 1958-1990]


키스해링은 1958년 5월 4일 펜실베니아 리딩에서 출생했고, 아버지로부터 만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이비 전문 예술학교에 입학했지만 상업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이 생기지 않아 2학기 만에 중퇴하고, 이후 뉴욕 시각예술 학교에 입학하여 드로잉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와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고, 이때 케니샤프, 존 섹스, 장 미셸 바스키아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를 종종 방문해 워홀을 비롯한 다른 유명인들과 친분을 맺게 되었으며, 비엔날레 참가, 아이들과의 프로젝트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1990년 2월 16일 에이즈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표출의 시작


키스 해링은 뉴욕의 지하철에서 세련되고, 노련하며, 즉흥적인 그라피티들을 보았고, 이 그라피티는 해링에게 작업의 계시가 되었습니다. 이후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를 깨닫게 되었고, 탄생, 죽음, 사랑, 전쟁과 같이 이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제를 표출하기 위해 광고판에 아기, 동물, 텔레비전과 사람들을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키스해링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렸는데, 공공장소에 그린 그라피티로 인해 역무원이나 경찰에게 잡혀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위험성은 그에게 작업의 쾌감을 더해줬고, 하루에 많게는 40여 점의 작품을 그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지하철 드로잉을 통해 키스 해링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키스는 뉴욕 지하철 시스템의 전체 중
일부나 다름없다. 해바라기를 보며 반 고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뉴욕의 지하철을 이용하며 키스 해링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다.
- 윌리엄 S. 버로스, 미국 작가


지하철 드로잉


뉴욕의 지하철 광고판들 중, 광고지가 붙어있지 않고 검은색 종이만 발라진 판 위에 흰색 분필로 그린 '지하철 드로잉'. 이 작업들은 이후 <무제> 시리즈 작업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해링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지하철 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작업 초기부터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고, 모든 이를 위함이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어디에서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공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이를 위한 스토리텔링


키스해링은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보냈습니다. 그는 아동 도서를 여럿 출간하는가 하면, 팝 숍에서 판매할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상품들을 디자인하기도 했으며, 많은 도시에서 아이들과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해링의 이미지는 보편적이면서 특이했고, 그는 언어를 사용하여 예술을 해석하는 창조적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어린아이들은 알고 있다.


루나, 루나, 시적인 화려한 오락물!


루나 루나 프로젝트는 이동식 놀이동산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작가 안드 레헬러가 처음 시작했고, 살바도르 달리, 로이 리히텐슈타인, 케니 샤프 같은 여러 작가들이 참여해 놀이동산을 디자인하고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해링 자신이 참여한 루나 루나 프로젝트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디자인한 회전목마 입체 구조물입니다.



빨강은 가장 강렬한 색 중에 하나이다. 빨강은 피의 색이고 시각적으로 가장 강한 힘을 갖는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신호등의 불빛도 빨강인 것 같다. 
정지 신호도 그렇고... 실제로 나는 모든 그림에 빨간색을 쓴다.


빨강과 파랑의 이야기(21개의 시리즈)


<빨강과 파랑의 이야기>는 특별히 해링이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21개의 석판화 시리즈입니다. 해링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길 원했다고 합니다. 각 그림은 해링이 배열한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고, 마지막 장에는 빨강과 파랑이 보라색의 계란 모양 형태가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해링은 시리즈가 합쳐져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의도했다고 하는데요. 키스 해링의 말처럼 어른들이 잊고 있는 아이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프린트들은 이야기 경연대회에도 사용됐으며, 미국의 많은 학교, 어린이 미술관에서는 교재로 채택해서 교육프로그램에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술적 환각을 통한 초월


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오랫동안,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이 그릴 것이다.



해링은 종종 블랙 라이트 아래에서 빛나는 형광색 컬러 페인트를 사용했습니다. 블랙 라이트는 1980년대 클럽 인테리어 장식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1984년 토니 샤프라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질 당시, 지하에 형광 물감으로 작업한 작품을 전시하고 DJ와 함께 밤새도록 댄스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섹션에 들어왔을 때 환하게 웃으며 서로에게 형광빛 치아를 보여주는 분들도 계셨는데요. 보는 이들도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감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메시지, 음악을 통한 발언


에이즈 예방, 동성애자 인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인종 차별, 마약, 전쟁, 폭력 및 환경보호와 같은 문제들은 키스해링의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는 포스터를 제작하여 사회 이슈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촉구하고자 했고, 선명한 색상으로 칠해진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많은 콘서트, 음악 이벤트 및 자신의 전시회 홍보를 위해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선명하고 행복한 이미지 뒤에는 그의 고집스러운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키스 해링의 포스터 아트


해링은 자신의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포스터였는데요. 대중들과 직접적인 소통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982년 이후 해링은 자신의 전시 포스터부터 어린이 교육 포스터, 콘서트 광고나 상품광고 포스터까지 다양한 포스터를 제작했고, 그렇게 만든 것이 1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해링의 포스터는 포스터가 가지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역할뿐만 아니라 포스터 자체를 예술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섹션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의 화려한 색감에 오감이 자극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보위 <WITHOUT YOU> 앨범 커버
키스 해링의 레코드 앨범 커버


1982년 <랩 잇!>의 레코드 재킷 작업을 시작으로 수많은 뮤지션들의 앨범 커버를 제작했습니다. 1983년 발표한 말콤 맥라렌의 <굴을 위한 오리> 앨범은 해링의 그림으로 전부 채워져 있고, 같은 해 데이비드 보위의 <위드아웃 유> 커버 또한 해링의 앨범 커버 대표작 중의 하나입니다. 그레이스 존스와 마돈나 같은 뮤지션은 뮤직 비디오, 의상, 라이브 공연에서도 키스 해링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해링의 삶과 예술에 있어, 음악은 매우 중요했고, 그는 예술을 통해 소리와 메시지를 시각화한 예술가였습니다.



나의 주요 동기는 처음부터 사람들과의 접촉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굉장히 보람찬 일이었다.
단 하루만 걸려 있어도 내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해링코드, 심벌과 아이콘


그가 만든 상징들은 오늘날 사용되는 이모티콘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는 얼굴, 하트, 빛나는 아기, 천사, 짖는 개, 돌고래를 비롯, 그 외의 여러 그래픽 기호들이 있고, 그의 상징들은 젊은이들의 사랑, 삶, 죽음, 대중문화 및 정치에 관한 주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미국을 가장 잘 상징하는 요소가 아닌가.


앤디 마우스


앤디 마우스는 해링이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던 캐릭터였던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와 친구이자 멘토였고 팝아트를 선도했던 작가, 앤디 워홀을 합쳐 탄생시킨 캐릭터입니다. 모든 작업에는 키스 해링과 워홀 두 사람의 서명이 다 들어가 있고, 이 둘의 서명은 다른 세대를 살았던 두 사람 사이의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그려진 앤디 마우스와 그 이미지 위에 새겨진 달러 표시는 자본주의 사회의 아이러니를 묘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기가 내 상징과 서명이 된 이유는
아기가 가장 순수하고 긍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5개의 석판화 시리즈 < 빛나는 아기, 개, 천사, 날개 달린 사람, 3개의 눈을 가진 얼굴 >


5개의 석판화 시리즈는 키스 해링이 사망한 해인 199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이 소재들은 해링의 대표 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중 기어 다니는 아기는 그가 그린 인물 소재들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보이는 이미지입니다. 그의 일기장에서 언급했듯이 <빛나는 아기>는 어린 시절의 천진함, 순수함, 선함과 모든 가능성을 상징하며, 아기 캐릭터 그 자체가 바로 해링 자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는 아기와 더불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상인데요. 짖고 있는 개는 명확한 상징성을 가지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의 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개는 권위적인 정부나 권력의 남용, 억압적인 체제 등을 나타냅니다. 

해링은 자주 비종교인의 시각에서 천국과 지옥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작품 속에 드러내곤 했는데요. <천사>는 영적인 존재, 수호자를 뜻할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복잡함과 혼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날개 달린 사람>은 가슴에 X자가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 표시를 부정적인 상징으로 생각하지만, 성스러운 십자가, 신비스러운 어떤 것 등 다양한 의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3개의 눈을 가진 얼굴>은 1982년에 개최된 첫 개인전 도록 표지에 그려졌습니다. 우스꽝스럽게 얼굴에 눈이 세 개 달린 형상은 탐욕이나 욕심을 가진 캐릭터로 보이기도 하지만, 해링은 이 그림에 대해 "어떤 특별한 의미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옛사람들이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
기호로 선택한 도형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
모든 형상에는 기본적인 구조가 있다.
최소한의 선을 사용해서 완전한 대상을 가리키고, 그 선의 조합이 상직적 기호가 된다. 모든 언어, 모든 종족, 모든 시대에서 확인되는 공통점이다.


회상


<회상>은 해링의 팝 숍(Pop Shop) 시리즈 중에서 24개의 이미지로 구성된 작업으로 1989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해링의 대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빛나는 아기, 짖고 있는 개, 천사, 춤추는 사람들 등의 형상들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패널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해링 자신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가득 찬 개인적인 삶의 순간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제


키스 해링의 모든 <무제> 작품들 중에서 이 작품이야 말로 가장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현란한 색채로 추상적인 형상을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이 즐겨 그리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여백 없이 꽉 차게 그려졌지만 사이사이로 보이는 흰 여백의 공간이 치밀하게 계산된 균형감을 보여줍니다. 해링은 캔버스 뒷면에 심벌마크인 아기 그림을 그렸고, 마커펜으로 "K.Haring 1985년 6월 1일 N.Y.C"라고 써넣었습니다.




나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아기를, 어린아이를 사랑한다.
몇몇 사람, 대부분의 사람, 아니,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다시 읽어봐도 코끝이 찡해지는 문구인데요. 키스 해링은 많은 조각 작품들을 공공장소와 어린이병원 및 자선단체에 기증했고,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이즈를 진단받고 숨지기 1년 전, 키스해링재단(Keith Haring Foundation)을 설립하여 전 세계 어린이 구호를 위해 힘쓰고자 했습니다. 그의 바람에 따라 1989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자선 및 교육 활동에 종사하는 비영리 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종말이라는 디스토피아



해링은 비트 세대의 대표 작가인 윌리엄 버로스와의 협업을 통해, 초현실주의 풍경화 속에 불길한 주제를 그려냈습니다. 그의 도발적인 그림은 정치적 견해를 초월하여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하지만, 이를 통해 해링의 유머와 풍자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종말'은 해링이 에이즈 진단을 받은 후에 만들어졌고, 그가 경험하고 상상하는 지옥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시 에너지와의 조화



무수한 인물, 동물, 태양 및 가면으로 가득 찬 피라미드, 바디 페인팅과 토템. 해링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의 모든 작품은 토속 미술과 전문적인 예술 사이에, 그리고 창작과 차용 사이에 존대한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아즈텍, 에스키모, 아프리카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예술이나 신화 속 고대 기호와 같은 비서구적인 예술 뒤에 숨겨진 신비한 힘을 보여줍니다.





나는 오늘 아름다운 이집트 드로잉을 보았다. 이집트의 드로잉 개념에서,
또 이집트인들이 상징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배울 것이 많다.


무제


이 작품은 해링의 판화 중 가장 사이즈가 큰 작품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괴물, 메두사가 그려져 있는데요. 신화와는 달리 해링이 그려낸 메두사는 7개의 목을 가지고 있고, 목이 굉장히 구불구불하며 각 목의 끝에는 사람의 몸이 달려있습니다.





시작의 끝, 그리고 끝의 시작



피라미드, 비행접시, 개, 뱀, 그리고 기어 다니는 아기가 사람, 동물, 외계 생명체 사이에 섞여서 돌아다니고 있는 작품들. 오늘날까지 해링을 떠오르게 만드는, 작업 초기에 만든 자신만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이 그림 속을 채우고 있습니다. 1990년,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해링은 자신의 작업 초기에 제작한 가장 순수한 형태들을 복제해 17개의 실크스크린 작품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최종판을 제작했고,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상징적인 형상과 장면으로 묘사해 만화 형태로 드러냈습니다.




"이 17개의 드로잉들은 1980년 12월부터 1981년 1월 사이, 불과 몇 주 만에 탄생한 작품들이다. 그림을 그릴 때, 드로잉 원본들은 모조 양피지에 수묵화용 잉크로 그렸는데, 이건 내가 각각의 드로잉들을 블루프린트로 제작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프린트 작업을 위해서 난 주기적으로 내 드로잉을 가지고 동네 블루프린트 전문업자를 찾아갔다. 내가 뉴욕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 드로잉들은 1981년 2월 웨스트 베스 페인터스 스페이스란 이름의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이 전시는 내가 뉴욕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이었다. 전시는 1주일간 계속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나는 여러 점의 블루프린트 드로잉을 판매했었다. 판화는 판매가 되었지만 원화는 한 점도 팔지 못했다. 
그 전시 이후로 나는 드로잉을 꾸준히 팔았다. 그렇지만 그 작품들이 어디로 팔렸는지는 모른다. 다행히도 나는 작품들을 팔기 전에 모든 작품들을 복사해놓았다. 지금 이 프린트들은 그 복사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내가 처음으로 뉴욕 생활을 하던 그 아름다웠던 시기로 돌아가는 듯하다." - 키스 해링, 뉴욕시티 1990년 1월 4일

*블루프린트 : 청사진





팝 숍(POP SHOP)



키스 해링과 그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은 가치가 높아진 '지하철 드로잉'을 훔치기 시작했고, 이에 해링은 <지하철 프로젝트>를 그만두고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앤디워홀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해링은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에게 작품을 파는 것이 아닌, 팝 숍 <Pop Shop>을 통해서 여러 작품들을 많은 사람이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꽉 채운 팝 숍에서 해링은 직접 디자인한 핀 버튼, 티셔츠, 잡화들을 판매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곧 '팝 숍'이 하나의 작품이자 직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브랜드가 해링의 작품을 콜라보레이션해 제품에 사용하고 있고, 키스 해링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의 작품에 친숙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팝 숍은 결국 그가 생전에 이야기한 "예술은 모든 이를 위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작품 설명 출처 : <키스해링전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전시장 내 가이드 설명글]




크리데이를 마치며


이번 <키스해링전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는 유니크한 그의 작품 이면에 담긴 의도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그의 노력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전시 작품들은 일본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의 소장품이라 3월 17일에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일본에 돌아간다고 하는데요. 주요 작품 170여 점 이외에도 키스해링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 작업하는 모습, 지하철 역에 그라피티를 그리다 연행되는 모습까지 담긴 영상들도 함께 상영되고 있으니, 친숙하고도 새로운 키스 해링의 작품을 만나러 다녀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크리데이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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