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랭루즈의 작은 거인
I brought my freedom with my drawings.
나는 내 드로잉으로 나의 자유를 샀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랙-
귀족으로 태어나 모든 걸 누릴 수 있었던 환경
그러나 장애를 가진 아무것도 누릴 수 없는 신체적 한계
이러한 딜레마로 더더욱 자유를 갈망했던 로트렉은 수많은 드로잉과 창작활동을 통해 자유를 얻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37세 짧은 인생 동안 캔버스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9점, 드로잉 4,784점가량의 작품량만 봐도 엄청난 작품 활동에 몰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불꽃같던 인생의 흔적들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단독전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하여 전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19세기 당시 그가 활동했던 몽마르트의 물랭루즈 카페 거리를 재현해 두었습니다. 당시 파리에서 에펠탑이 세워졌으며, 물랭루즈라는 유명한 댄스홀이 오픈한 시기기도 하고, 파리가 사교계에 열광하던 그런 시절에 로트랙은 단골 지정석까지 두고 매일 물랭루즈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하네요.
여기에서 많은 유명한 작품들이 탄생합니다.
#물랭루즈 #몽마르트 #댄서 #캉캉춤 #작은 키 #귀족 #화려함 #사교계 등등 다양한 키워드로 떠오르는 로트렉, 시대의 생동감이 그대로 담긴 그의 이미지들은 파리의 당대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좋은 시대)의 상징들이기도 하면서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열망들이 만나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모네 / 로뎅 / 고갱/ 쇠라/마티스/ 피카소 그리고 특히 친했던 반 고흐 등등등 엄청난 작가들이 활동하던 그 동시대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자고 일어나면 스타가 되어있었다고 하네요~!
로트렉은 다리를 다친 이후로 한동안 침상생활을 하며 그림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를 처음으로 가르쳤던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과는 또 다른 형태로 장애를 가지게 된 로트렉에게 연민을 가졌고, 자신이 주로 그렸던 동물들을 그리는 법을 로트렉에게 전수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영향을 받아, 로트렉은 초기에 곰이나 말과 같은 동물 그림을 주로 그렸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늘 연필을 가지고 다니며 드로잉을 일삼았다고 하네요~
로트렉은 파리의 밤 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워낸 몽마르트의 여인들을 즐겨 그렸는데, 이는 여인들을 비하하기 위함 보다는, 많은 위선과 가식으로 똘똘 뭉친 자신이 속해있었던 상류사회를 조롱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즐겨 그리던 여인 중에서도 특히 "제인 아브릴"은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합니다. 물랭루즈 캉캉춤의 대가였다고 하는데요~ 그녀를 주인공으로 제작했던 아래 포스터는 그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작품이었습니다. 이 포스터로 제인 아브릴도 유명해졌고 서로의 존재를 유명하게 해 준 고마운 작품이네요.
왼쪽 끝에 다리를 혼자 좀 더 높이 올리고 있는 인물이 제인 아브릴인데요~ 그녀를 강조하기 위한 그만의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포스터입니다.
이 또한 제인 아브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심플하면서도 역동적이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한 컷 올려둡니다.
로트렉이 카페나 극장의 장면을 그린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는 일본의 목판화나 풍자 화가인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대 유럽화가들이 일본의 목판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이 또한 로트렉만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빛과 그림자의 역동적인 대조 및 효과적인 움직임, 과감한 생략이나 단순화를 통해 드라마나 코미디의 강렬함을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892년에서 1895년까지 3년 동안,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유곽에서 일주일 내내 보내며. 여기서 그는 몇 시간이고 여자들이 쉬고 있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손님을 기다리거나,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추한 존재도 그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 모습을 알아볼 때 난 짜릿함을 느낀다.
- 앙리 툴루즈 로트렉 -
로트렉의 짜릿함까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화가가 담지 않았던 그 시대의 인물들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로트렉은 담백하게 당시의 화류계의 여인들의 화려함 뿐 아니라 생에 지친 모습에의 연민과, 무지를 과장하지 않는 삶에 대해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각종 잡지가 쏟아져 나오는 잡지의 황금기라고 하던 당시! 파리 미술계에 갑자기 등장한 로트렉은 여러 잡지로부터 원고 청탁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로트렉이 잡지를 위해 제작한 일러스트나 판화, 그래픽 디자인 등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컬러 인쇄가 발전했다고 해도 당시 로트랙의 포스터나 많은 작품들이 모두 석판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석판화의 석판은 처음 구경해본 것 같아요.. ^^
귀족들 틈에서 자란 로트렉은 말에 대한 열정이 컸나 봅니다. 로트렉의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승마를 좋아했으며, 야외 활동을 좋아해 말을 타고 독수리를 데리고 오랜 시간 사냥을 다니곤 했는데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동경했던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신병동에 갇혀 있을 당시 어릴 때 관찰했던 말을 기억만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 묘사력이 대단할걸 알 수 있습니다. 이래서 천재라고 하는구나 싶어요~!
후기 인상주의가 등장한 그 시기엔 귀족 중심의 진부한 작업 방식을 버리고 개인의 스튜디오에서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창작해서 프리마켓에 팔기도 하는 등 변화가 많았던 시기입니다. 또한, 1890년대 들어 컬러 인쇄의 기술적인 진보와 포스터의 거리 부착을 제한하는 법률의 완화로 인해 파리 시내 곳곳에는 광고 포스터가 넘쳐났다고 합니다. 그런 시대상이라 가능했겠지만 그가 그린 석판화 포스터가 시내에 붙으면 그 포스터는 다음날 인기 스타가 되고 이를 경쟁적으로 떼어가 모으는 수집가들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포스터!
검은색의 단조로움 속에서 노란색이 주는 선명한 대비, 그리고 캉캉 춤을 추고 있는 제인 아브릴과 그녀를 보는 악사의 시점이 동시에 그려진 독특한 구성의 포스터입니다.
또 발길을 멈추게 했던 작품 중 하나는 샹송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의 포스터였는데요. <앰배서더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이라는 이 포스터에서 풍성한 망토를 걸치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붉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동일한 색채로 구성한 그의 현대적 감각은 예상치 못하게 배우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시 내내 역시 브뤼앙을 주제로 한 앙코르(?) 작품들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왼쪽 피카소 그림 속에서 로트렉의 그림을 찾으셨나요?
이렇게 피카소 본인 그림에까지 옮겨놓을 정도로~ 당대 화가들도 로트랙의 그림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너무 짧게 살다가 간 그의 인생이 아쉽긴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림을 발표하고 나면 다음날 유명세를 탈정도로 작가로서 인기 있었던 그는, 죽고 나서야 유명세를 탄 고흐보다 예술가로서는 행복한 시절을 보내다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시를 다 보고나니 로트랙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도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전시 뒤로 갈수록 작품들이 반복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단독전이라 의미있었고, 파리 19세기 말의 화려한 물랭루즈를 사랑했던 불운한 키 작은 남자의 불꽃 같았던 인생을 살포시 엿볼 수 있는 그런 전시였습니다.
참고:
코로나로 조심스럽지만 마스크 필수 착용자만 입장이 가능하고, 손 소독 알코올도 구비되어있어 편한 마음으로 관람을 마쳤습니다. 5월 16일까지 하네요~!
전시장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