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노먼의 디자인 심리학’을 읽고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을 일컫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 시대에서 주도권을 잃고 밀려난 인간 노동자 계층을 의미하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다. 심지어 곧 인구의 99%가 프레카리아트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어쩌다가 인간이 이렇게까지 통제권을 잃고
‘불안정한 노동자 계급’으로 밀려난 것일까?
현재의 기술은 기계가 필요한 요구를 하면 인간이 그 요구를 만족시켜주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계가 실수했을 때 인간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대신 고민해주고 나서서 해결까지 해준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기계 작동 프로세스상의 부품으로 전락해버렸다. 인간의 노동 프로세스 안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투입된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보면, 기계는 과거의 에러를 학습하여 더 나은 해결 방법을 만들도록 반성적 사고를 한다던가, 더 숙련된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한다던가, 동료들과 논의를 통해 의견을 모아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던가 등의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형편없고 바보 같은 인간’일 뿐이다. 좀 더 나은 인간만이 옆에서 에러를 처리해주고 작업 정확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모든 공은 기계에게 돌아간다.
실제로 AI가 인간을 도와주는 행위는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정확한지에 관련 없이 언론에서 앞다투어 보도한다. AI가 필요한 데이터를 입력해주고,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훈련하는 인간들의 노동은 자동화 기술보다 훨씬 더 자주 발생하지만,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AI를 사용하는 기업들은 ‘하이테크 기업’이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결국, 인간의 노동을 비가시화하는건 또 다른 인간이다.
기술의 힘이 강해질수록 이에 말없이 순응하는 인간에 대한 결과는 더 가혹해질 것이다. 새로운 자동화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대량 실업을 걱정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기계 중심적 관점에서 희생되는 인간 노동의 가치를 더 먼저 걱정해야 한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더라도 기계는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그리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인간 노동이 훨씬 저렴하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따라서 앞으로도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함께 협업함으로써 공동의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팀’으로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기계 중심적 사고를 우상 삼아, 발전하는 기술에 순응하기만 한다면 기계(를 조종하는 인간)에 지배당하는 인간 사회가 꼭 판타지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변화하는 사회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 말고 또 다른 선택권이 있다.
변화시키는 것.
인간 중심의 새로운 모토를 기억하자.
인간은 제안하고, 과학은 연구하며, 기술은 순응한다.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 심리학] 을 읽고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해있는 기계중심적 관점과 그 위험성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썼다. 아래는 '제1장 인간 중심의 기술'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사람에게 맞지 않는 기계중심적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디자인이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과 공학에서는 기계를 디자인할 때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인간중심적 관점이 아닌 기계중심적 관점으로 풀어내려한다.
기계중심적인 관점은 비단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색안경과도 같다. 인공지능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그 색안경으로 인한 부작용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책은 1993년에 출판되어서 올해를 기준으로 벌써 30년이 된 책이다. 그럼에도 현 시대를 예상한듯 날카로운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때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고도화된 기술에 둘러싸여있는 우리, 이제라도 색안경을 벗지 않으면 정말 인구의 99%가 프레카리아트가 되는 디스토피아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하대청, 『'루프 속의 인간(Human-in-the-Loop)' : 인공지능 시대 인간 노동과 기술정치』, 한국과학기술학회 2018년 전기학술대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