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디자이너로) 꾸준히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꾸준히 하세요. 단, 할 수 있는 선에서.
저는 18년 차 현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한 지는 이제 막 2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모든 직군이 그러하듯, 많이 보고 많이 해봐야 실력이 느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디자인과 같은 창작의 직군은 타고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타고나는 건 많지 않은 일일 거라 생각해요. 타고난 사람들이 많다면, 어쩌면 세상이 재미없을지도 모릅니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힘 중에 가장 필요한 힘은 엉덩이 힘이라고도 하죠. 진득하니 앉아서 공부하듯, 디자인도 역시 진득하게 앉아서 끊임없이 내가 쥐고 있는 디자인을 붙들고 파고드는 꾸준함이 있어야 합니다.
꼭 매일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입니다.
매일 몇 달을 하다 지쳐 멈추는 것과,
비록 간헐적일지라도 오래 이어가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요.
이런 꾸준함은 어떻게 만들어나가면 좋을까요?
새해가 되면 모두가 계획을 세웁니다. 아무리 계획 없이 사는 사람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꼭 세우게 되는 날이 바로 새해죠. 디자이너인 저 역시 매년 새해마다 계획을 세웁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는 계획이 조금 달라졌지만요.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디자인 서비스’를 오랜 시간 지속해 온 제게 명확한 수치화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영업 없이 10년을 이어왔기에 더 그렇습니다.
명확한 수치화의 표본은 아마도 매출일 겁니다. '올해 매출 목표는 얼마로 잡겠다!'와 같은. 그런데 저는 영업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보니, 아직 주도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단계에 다다르기엔 이른 구조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수치화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거래처 5곳 확보하기, 브랜드 디자인 관련 작업 1건 이상 수주하기, 디자인 칼럼 정기 기고하기와 같은. ‘매출’이라고 하면 부담감에 엄두가 안 나는데, 이렇게 하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하는 것.
진입장벽을 낮춰 자주 도전할 수 있는 프레임을 짜는 것.
꾸준히 하기 위해선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시즌별 이미지 작업은 간헐적이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을만한 디자인 작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새해 인사말, 명절 인사말 등 온라인으로 가볍게 인사나누기 좋은 이미지 작업 같은 거요.
저는 블로그를 활발히 했던 10년 전부터 거의 매년 이미지를 만들어 블로그에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공유를 해왔습니다. 그동안 작업했던 이미지들을 모아보니, 주로 손글씨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네요. 유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손글씨의 고유함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선 특색 있는 고유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매달하고 있는 달력 이미지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인이라고 할 게 있나?’ 싶어 보여도, 디자이너로서 성장하고 얻을 수 있는 요소는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매달 ‘비주얼 끝판왕 포스터 달력’을 만들겠다고 하면 중간에 포기할 확률이 높지만, 간단하게라도 ‘나만의 색조합을 통한 심플한 달력’을 만드는 건 아무래도 계속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선에서 꾸준히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2026년도를 시작하며 만들었던 이미지도 뒤늦게 살짝 공유해 봅니다. 연말에 이래저래 정신없이 바빴는데.. 순간적으로 나온 스케치와 손글씨로 1시간 만에 뚝딱 만들었던 이미지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이 들어오기도 전에, 가볍게 해 보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끝냈다는 점이에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지금,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거나 해왔던 것들이 뭐가 있나 생각해 봅니다. 재작년 여름부터 이어온 모닝페이지, 거의 매년 반복해 온 인사말 이미지 작업, 그리고 지금도 매달 이어가고 있는 달력 이미지 작업…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지금에서야,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작업들이 지금의 스튜디오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남과 비교하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작아 보인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디자인 업계에서는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 역시 그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교의 기준 위에서는 사실 좀처럼 '성장'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초라하다고 느낄 때, 눈 딱 감고 조금만 더 지속해 보세요. 그리고 6개월 뒤, 1년 뒤 해온 작업들을 모아보면 분명 디자이너로서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대단한 성과나 목표 수치가 아니어도 디자이너는 알 수 있어요.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는 그 미묘한 감각의 성장을요.
작은 스튜디오를 이제야 운영하게 된 저 역시 천천히, 그렇지만 계속해서 가고 있는 것처럼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