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브랜드물 2
이번편은 전편과 이어지는 내용이므로 앞편의 삽질 과정을 읽고 봐주세요~!
나의 천직은 삽질
또 다시 시작된 나의 자료조사
이번엔 뭐가 문제였을까 곰곰히 고민하다가.. 혹시 제작을 말씀하시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번에 나를 도와주신 인쇄소 사장님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띠리리리링~~~"
"네, 사장님 잘 계셨죠.. 뭣 좀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네 얘기해주세요. 과장님"
"저 다이어리를 디자인해서 보내드리면 제작도 다 맡아서 해주시나요?
아님 제가 싸바리업체랑 제본 업체를 따로 알아봐드려야 하나요?"
"에이 과장님~~ 대한민국 인쇄소요..
안되는거 없어요~ 주문만 하면 다 됩니다!"
“대한일보 극장 아시죠? 그 뒷골목이 아줌마들이 다이어리 미싱하는 곳인데..
그쪽도 다 제가 꿰뚫고 있죠! 말만하세요!”
사장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캄캄한 어둠속에서 한줄이 빛이 쏟아지는듯했다.
'아! 찾았다'
다이어리 디자인은 예전에 학생용으로 한번 제작해본적이 있긴한데..
여기는 실무 아닌가. 거래가 오가는 현장!
하도 오래전에 했던 일이라 조마조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작을 해주신다니
해결책을 찾은듯했다.
하! 지! 만!
"근데요 과장님 제작비가 많이 나갈텐데.. 수량은 어떻게 되세요?"
'아... 망할.. 수량...ㅠㅠ'
"저희가 최소수량이라 100....개....만...."
"그럼 엄청 비싸져요! 대량으로 해야 싸질텐데.. 못해도 몇백만원은 들껄요?"
저 멀리... 베토벤의 음악이 들렸더랬다...
콰콰콰쾅~~~!!!
"아... 사장님.. 제가 다시 전화드릴께요."
2차 도전.. 실패!
주변을 잘 살필 것
정말 단가와 수량은 내가 케이앤컴퍼니에 몸담는 동안은 꼬리표처럼 따라 붙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단가...수량...단가...수량...단가...수량
이건 뭐 공식도 없고 대책이 없다. 대책이.
하지만 역시나 그렇듯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건 방법을 찾았다는 뜻이겠지?
이제부터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나같은 스타트업 브랜드 디자이너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길..
소제목처럼 정답은 주변을 잘 살펴볼것이었다.
그렇다! 다이어리 나도쓰고 다른사람들도 쓰고..
회의시간에 누구나 들고 다니는 수첩.
계속 되는 삽질에 답답함을 느껴 나는 이사님께 제안을 했다.
"이사님 가까운 서점 핫트랙스에서 다이어리 샘플 좀 보고 몇개 사와도 되나요?"
"그래요. 점심먹을 겸 같이 가보죠"
그렇게 이사님과 둘이 회사서 가까운 교보문고로 향했다
(우리회사는 시청역에 위치해있어서 이런 시장조사할때는 참 좋은 이점이 있다ㅎㅎ- 깨알자랑)
핫트랙스에 도착하자마자 다이어리의 풍년을 맛보았다.
연말이라 그런지 굉장히 많은 종류의 다이어리들이 눈에 띄었다.
다양한 디자인, 다양한 소재, 다양한 크기...
이사님과 각개전투로 각각 흩어져 샘플을 보러 돌아다녔다.
다이어리 시즌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많은업체에서 수많은 디자인과 많은 재질의 다이어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나는 다이어리 재질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책방식과 제작업체까지 꼼꼼히 리서치 하였다.
문구 브랜드라고는 모나미, 레드클라우드, 몰스킨 정도밖에 몰랐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소규모 업체에서 다이어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직접 재질을 손으로 만져보고..무선제본, 양장제본 등등의 장단점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사님과 같이 가서 그런지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시는지도 취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참고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사내아이로 불린다...그만큼 무취... )
상사와 함께 시장조사는 상사의 취향도 알아낼 수 있을 뿐더러 함께 밥을 먹으며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리이기도 하다. 시간되면 추천한다.
다이어리 뒷면을 보니 제작업체가 써있었다. 이중에 하나는 제작해주겠지..라는 생각에.그렇게 사진을 몰래 찍어 업체명을 담아냈다.
개중에 하나는..
그렇게 뽑아낸 문구업체 5곳
인터넷으로 회사 연락처를 알아내고자 하였으나 영세업체들도 있는지
사이트조차 없어서 연락처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추려진 3곳
우선 첫번째 업체를 전화해보았다.
"네~oo디자인입니다."
"네.. 실례합니다. 다이어리를 주문하고자 하는데요..
수량은 100개정도고요 혹시 할인률은 어떻게 되나요?"
"네.. 소비자가에서 30%할인들어가세요"
"저 그럼요.. 저희가 회사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은데.. 표지 인쇄해서 가공되나요?"
"저희는 완제품이라 그런거 취급안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하.. 실패다..
"네~oo디자인입니다."
"네.. 실례합니다. 다이어리를 주문하고자 하는데요..
"저희는 완제품이라 따로 안해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하.. 또 실패다..
삽질의 여왕답게 마지막 업체에 전화를 하여 같은 내용으로 문의를 했다.
"네.. 해드릴께요"
해드릴께요해드릴께요해드릴께요해드릴께요해드릴께요해드릴께요
뭐지? 이 아름다운 소리는... !!!!
기쁨에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정신줄을 다시 꽉! 붙들고 재차 확인하였다.
"수량 100개인데...."
"네 됩니다."
"할인은..."
"30%해드리고요 대신에 인쇄비는 들어갈거예요"
"색상 반반도?"
"네 됩니다"
"그럼 견적 좀..."
"네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드릴께요"
우와와와~~ 해냈다. 드디어!
이 승리의 기쁨은... 언제나 고생끝에 온다.
해결책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지니!!
모든게 일사천리로
업체를 찾은순간 모든건 순십간에 진행이 되었다.
나는 당장 업체에 다이어리 판형과 세네카를 알려달라고 연락을 했고
업체에서 표지 도면을 보내주었다.
도면위에 회사 로고와 슬로건, 주소, 연락처 등을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지야 다이어리 업체에서 디자인 한 것을 쓰면되고 표지의 가공만 자리잡아 보내주면 되는일이었다.
그렇게 인쇄용 pdf를 제작하여 업체에 보냈다.
"잘부탁드립니다"
그로부터 2주 뒤, 커다란 택배 상자가 배달되었다.
“와~~ 끝났다!! “
무사히 마무리 되는줄 알았으나...
그렇게 끝날줄 알았다.. 그렇게! 그렇게 끝날줄 알았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받아 한쪽에 정리하고 몇개 확인을 하였다.
인쇄도 잘 된것같고 몇 개 쓱 이상유무를 확인한 뒤 사무실 비품 보관함에 다이어리를 옮겨놓았다.
하! 지! 만!
"시은과장님... 이거...금박이 좀 벗겨졌는데?"
가서 보니 약간의 기포와 함께 금박이 떨어져 나간것이 확인되었다.
“가끔 그러기도 하는데 몇 개만 그러던데..”
"그래도 납품인데 이러면 안되죠.. 전수 조사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지.. 난 삽질의 여왕이었지...
쉽게 넘어갈리가 없지...
그렇게 조사된 다이어리 전수조사
100개 수량의 다이어리를 하나한 꺼내 금박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맙소사! 불량이 너무 많자나!!!!"
까졌다!! 까져도 너무 발랑까졌다!!(그 까짐 아님.)
마음이 아프게 까진(?) 아이들....
어떻게 발주한건데....ㅠㅠ
당장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네 oo문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최근에 발주 맡긴 케이앤컴퍼니인데요. 저희가 제작물 검수해봤는데 불량이 많네요. 이거 재인쇄 들어가야 될것같은데.....”
일부러 말끝을 조금 흐렸다. 자기들은 책임없다고 할까봐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다.
싼 가격에 소량인데 갑질로 느껴질까봐 최대한 말을 아껴가며 신중하게 건넸다.
“아, 그럼 불량본 사진찍어서 보내주시면 저희가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릴께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진을 업체에 보냈고 하루 뒤에 연락이 왔다.
“저희가 확인해봤는데요. 인쇄소 쪽 잘못이어서 그쪽에서 다시 찍어주겠다고 했어요.
불량 검수하셔서 반품해주시면 저희가 다시 보내드릴께요”
그렇게 하여 100개중 불량 26개를 가려냈고... 업체에 반송을 보냈다(착불로 보내는 센스!!).
업체에서의 친절한 대응 덕에 나는 1주뒤 튼튼하고 건강한 아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ㅜㅜ)
브랜딩의 중요성
이미 그 회사만의 분위기, 브랜딩이 잡혀있는 회사에만 있었던 나로써는 이직 후 첫출근을 하면 기존 데이터들을 열어 그 회사의 디자인 스타일을 판단하고, 규율을 따르려 했으며... 그 범주안에서 디자인이 크게 틀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왔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입사한 곳은 스타트업이며... 브랜드 디자이너라고는 내가 유일하며... 나로 인해 이 회사의 초기디자인 세팅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경력이 10년이 되어간 나로써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브랜딩디자이너가 아니었고, 시각디자이너였던 나는 더더욱 심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완성될수록 더 큰 보람으로 돌아오는 것도 사실이다.
브랜드란 무엇일까? 학창시절 교수님과 브랜드 패키지수업을 들었던 것이 다였었는데...당최 감이 오질 않았다. 어떻게 세팅해야할지... 그리고 그 세팅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에 대한 모든 판단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어렴풋이 알고있었던 브랜딩. 그것은 무엇일가?
일단 가장 가까운 ‘나’의 브랜딩은 잘 되어있을까??
내가 밟아왔던 회사들과 포트폴리오들은 과연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걸까?
이런 생각까지 다다르자 회사의 브랜딩의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감 잡을 수 있었다.
10년이 다되가는 이 시점에서 가장 기초였지만 바쁜 일상속에 묻혀 소홀히 대해왔던 사실을 다시끔 알게되다니... 부. 끄. 럽. 다.
반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 경험을 기억해 놨다가 나의 브랜딩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켜놔야겠다. 앞으로 또 어떤 일에 부딪힐지 약간의 두려움도 있지만 오늘의 경험을 지혜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것 같아 스타트업이 더 좋아졌다
자 이제 삽질의 여왕답게 또 삽질 하러 가볼까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