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Mock-up 제작을 위한 분투
학부시절까지 합친다면,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손을 댄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고, 당연하게도 기술발전은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디자이너는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떨어져 있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부분에서는 적극적인 분야인 편이다. 굉장히 예술쪽의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테크놀로지의 적극적 이용자라는 점이 재미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대학교를 들어가 제품디자인을 공부 하던 시절만 해도 아직 컬러 마카를 이용한 손스케치가 남아있었고,(지금은 아이패드 등을 이용한 디지털 스케치를 훨씬 많이 쓴다) 아이소핑크나 클레이등 덩어리 소재를 직접 도구를 이용해 깎고 다듬어서 만드는 방법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었다.
이당시에 주로 사용되었던 프로토타입 제작 기술은 판을 자르는 레이저컷팅, 날물을 이용해 재료를 깎아 만드는 CNC(복잡한 기계와 비싼 비용으로 학생들은 보통 이용하지 못했다.), 혹은 드릴과 조각칼 등을 이용해서 손수 재료를 깎는 방법을 대부분 사용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시절의 프로토타입의 특징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던 대부분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소재를 절삭하여 가공했다.
당연하게도 디자인 역시 보통은 이 기술적 한계에서 가능한 쪽으로 디자인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에 적절한 디자인들이 시도되었다. 물론 큰 자본과 시간, 인력이 있다면 그 시절에도 불가능한 것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기업에서도 돈과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당연히 그에 맞춰 가장 최적화 된 기술들을 쓰고, 그러한 제약은 디자인에 반영된다. 그래서 그때 학생작품 혹은 저자본 디자인의 프로토타입을 보면 보통 손으로 만들기 쉽거나, 네거티브 가공으로 한번에 끝낼 수 있는, 그런 조형의 디자인이 많았다.
네거티브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깎아 낸 다는것’ 그 자체에 있었다. 아무리 좋은 장비, 좋은 공구를 사용한다 하여도 사각형 덩어리의 재료를 깎아 모양을 만든다는 것은 변함 없었고, 재료를 깎아내는 것은 적어도 사무공간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행위이다. 이 당시 프로토타이핑에 사용된 대부분의 기법은 일반적인 오피스에서는 하기 어려운 방법 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컴퓨터 작업에 더 집중하게 되고, 소규모 디자인스튜디오에서는 자체적으로 프로토타이핑을 만들어보기가 어려운 편이였다.
이런 네거티브의 기술적 제약이 풀린 시점이 약 2013~2016년 쯤의 3D프린터 열풍이였다. 3d프린터의 특허들이 세계적으로 만료되면서 저렴한 프린터들이 우후죽순 생기며 그 제품들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뉴스와 언론에서 차세대 기술이라며 띄워준것도 열풍에 한목했다. (물론 환상과는 다르게 3D프린팅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전제조건들이 꽤나 까다롭다. 이런 조건들 덕분에 열풍은 금세 식고, 다시 쓰는사람들만 쓰는 기계로 돌아왔지만 대중화바람 덕분에 저렴하고 좋은 제품들이 꽤 많이 출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쾌속조형(Rapid Prototyping), RP 라고 부르던 기법이 3D프린팅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변경되고(3D프린터의 역사는 사실 꽤 긴편이며, 국내에서도 RP라는 이름으로 연구소 등에서 꾸준히 사용되어 왔었다. 당시 RP장비들은 수천~수억대의 고가 장비들 뿐이여서 대중적이지 않았을 뿐) 비용이 수십~ 수백대로 내려오면서 학부생의 레벨에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3D 프린터는 기존의 네거티브방식과는 다르게 바닥부터 한층, 한층 형태를 만들어가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을 이용한다. 이로써 기존의 방식에서 존재했던 대부분의 단점(재료의 낭비, 언더컷, 분진 등)을 해결하게 되었다. 공간 역시 환기 정도만 신경쓰면 사무공간에서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간편해졌다.
이 장비로 인해서 제품디자이너의 프로토타이핑은 혁신이라고 할 정도의 변화를 맞이했다. 저렴한 비용과 작은 공간만으로도 무한대에 가까운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조형적인 도전과 시도를 기존보다 훨씬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제품디자인의 수준이 높아진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3D프린터의 운용난이도(소재의 특성이나 프로그램적 기술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공부없이 쓰기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이러한 혜택을 쓰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많다. 물론 기술이 더 좋아지고, 3D프린터 시장의 경쟁이 강화될수록 훨씬 쉬운 운용이 가능한 기계들이 나오겠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만큼 디자이너로써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다.
3D프린터와 같은 효율적인 신기술이 무조건 좋은 디자인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디자인의 본질은 기술을 잘 쓰는 것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냅킨에 매직으로 낙서한 디자인이 최고의 디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디자인은 많이 해본 사람이 더 잘할 확률이 높다는 불변의 진리에 속해있다. 그리고 3D프린터와 같은 신기술은 디자인을 ‘많이’ 해보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고 그를 잘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더 효율적인 길 일 것이다.
디자이너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 이과도 아니며, 언뜻 보면 미학적 탐구를 하는 직업으로서 테크제품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테크놀로지와는 큰 관계가 있어보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캐릭터 문구 디자이너야! 라고 한다면 누가 테크놀로지와 연관지어 생각할까?) 그러나 ‘더 나은 디자이너’ 라는 이상향에 효율적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디자인적 분야와 상관없이 언제나 기술발전의 동향을 관찰해야 하며, 현 시대의 기술을 내가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꾸준하게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