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디자이너가 비즈니스와 사용자 경험 사이 균형잡는 법 (1)
당신은 지금 쿠팡 와우 멤버십을 쓰고 있는가?
그렇다면 '해지'를 해본 적도 있는가?
나는 쿠팡을 잘 쓰고 있고 와우 멤버십 구독도 이용한다.
하지만 매번 쇼핑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라, 필요할 때만 구독하고 아닐 때는 해지한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와우 멤버십 해지는 정말 하기 어렵게 설계되었다.
쿠팡앱을 켠 후
총 7번의 버튼 클릭을 하고
(그중 무려 5번이나 명시적인 ‘해지하기’ 버튼을 누르고 또 눌러야 한다.)
11번의 스크롤을 내려야만
(이런 혜택이 있는데 그냥 포기하고 진짜 정말로 해지할 거야?라고 울부짖는…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려도 계속되는 콘텐츠들을 모두 굳은 마음을 먹고 지나쳐야 한다.)
해지 신청을 ‘성취’해낼 수 있다.
가히 성취라고 말할만한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반면, 쿠팡에서 물건을 구매할 땐 아주 쉽다.
2~3번의 버튼 클릭으로 구매가 된다.
또한, 해지신청을 취소하는 액션도 원터치이다.
최대한 길고 어렵게 설계되었던 해지하기 기능과는 달리, 해지 신청을 취소하는 기능은 매우 간편하다.
언제 바짓가랑이 붙잡고 눈물 흘렸냐는 듯, 깜찍하게 윙크하며(...) 한 번에 통과시켜 준다.
다시 내게 될 구독료를 말해준다거나 하는 절차는 전혀 없다.
원래의 쿠팡스러운 그야말로 아주 빠른 로켓 UX이다.
그런데 왜 해지하는 기능만 이렇게 어렵게, '다크패턴'까지 녹여 디자인하게 되었을까?
*다크패턴이란, 사용자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교묘히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UI UX 관점으로 나누어 어떤 다크패턴이 사용되었는지 분석해 봤다.
해지하기 버튼은 아래로 한참 스크롤하기 전엔 보이지 않는다.
각종 멤버십 혜택의 나열을 지나서 맨 아래에 겨우겨우 자리를 얻어 위치해 있다.
해지하기 버튼 위치은 물리적으로도 누르기 힘든 좌측에 작은 크기로 두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라고 했을 때, 오른손 엄지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누르기 힘든 좌측 하단 구석에 두었다.
또한 파란색으로 눈에 띄게 디자인하지 않고 무채색을 사용해 눈에 안 띄게 하였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버튼은 현재의 멤버십을 유지하는 액션의 버튼이다.
쨍한 파란색으로 꽉 칠해져 있어서 가장 시선이 간다.
하지만, 이 화면은 사용자가 '해지하기'라는 버튼을 이미 누른 후 이어지는 플로우이다.
이 페이지까지 도달한 대다수의 사용자의 목적은 해지를 하는 것임에도, 해지하기 버튼은 강조되어 있지 않다. 물론 언제나 최하단에 위치해 있다.
해지하기 화면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이모지가 들어가 있다.
별 것 아니라고 느낄 수 있지만,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는 사용자들이 내심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디자인 요소이다.
해지하는 화면의 라이팅을 살펴보자.
멤버십을 구독해야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아주 길게 이야기한 후에, "그래도 해지하시겠어요?"라고 다시 한번 묻는다. 그런 후에 나오는 버튼의 라이팅은 이렇다.
[내가 받고 있는 혜택 유지하기] vs [내가 받고 있는 혜택 포기하기]
혜택을 포기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손실 회피 편향을 자극하는 문구이다.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이란 손실을 볼 경우 이익으로 얻는 기쁨보다 손실로 갖는 괴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요즘 화두이기도 한 다크패턴의 사례로도 언급될만하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디자인한 것이 사실 너무나 이해되기도 한다.
이 디자인은 사실, 디자이너가 진정 원해서 설계된 화면이 아닐 수도 있다.
사용자가 짜증 날 걸 알면서도, 다크패턴인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디자인했을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 시킨 대로, 기획안이 내려온 대로 디자인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사정은 내부 사람들만 알 것이고 모두 나의 가정이다. 또한, 해지하기를 설계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당연히도,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렇다.
쿠팡에 월 구독료를 지불하는 ‘멤버십 구독 제품’은 당연히 회사의 이익 관점에서 해지율이 높아선 안된다.
그러니까 해지를 너무 하기 쉽게 원클릭으로(…) 만들어선 당연히 안된다.
매우 중요한 비즈니스 지표의 하락과 직결된 기능이니까 어렵게 만든 것이다.
혹자는 이런 디자인을 보면 아주 쉽게 "나쁘다!"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아니 이건 너무하잖아... 디자이너라면 사용성을 지켜야지!" 하고.
하지만 사용성만 지켜낸다고 정말로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고 칭송받게 되는 걸까?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사용성만 지키는 것은 오히려 사용자 경험을 더 크게 저해할 수 있다. 진짜로.
왜일까?
만약 사용자 경험에 온전히 집중해서, 해지하기를 아주 쉽게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내 멤버십에서 구독 해지하기 버튼 누르면 끝. 이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운가?
고객이 해지를 원하니, 해지를 바로 해주었다. 너무나 당연한 UX 설계라고 볼 수 있겠다. ‘사용성’이 매우 뛰어난 디자인이다.
하지만 그래서 멤버십 해지율이 2배, 3배 뛰었다면?
만약 멤버십 해지가 너무 많이 이루어져서, 쿠팡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진다면?
그래서 만약 로켓배송을 계속 운영할 재원이 사라진다면?
(물론 해지하기 기능만으로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이렇게 사용성만을 고려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들이 쌓였다고 가정한다면 가능하다.)
회사의 이익과 존속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사랑한 그 제품의 ‘와우한 경험’을 영영 못 누리게 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더 큰 서비스의 핵심 가치가 저해될 수 있다.
쿠팡의 미션은 고객들이 '어떻게 쿠팡 없이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선 회사가 이익을 내야 하고 비즈니스 목표 달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사용자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제품을, 서비스를 제공하고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
비즈니스에 집중하면 사용자 경험이 저해되고,
사용성을 지키면 비즈니스 목표를 이룰 수 없으면...
이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할 때의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느낀다.
비즈니스 목표 달성 VS 사용자 경험.
이 둘이 상충한다고 느끼는 순간은 실무를 하다 보면 꽤나 잦다.
그것도 아주 첨예한 갈등으로 나타난다.
디자이너의 내적 갈등, 팀원들과 또는 상사와의 의견 충돌.
비즈니스 성공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도 디자이너이지만,
사용자 경험을 지켜내어 더 오래 사랑받고 신뢰받는 제품을 만들 사람도 디자이너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 그 솔루션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https://brunch.co.kr/@designer-chogo/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