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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Feb 20. 2024

호시우보

범의 예리한 눈과 소의 우직한 발걸음

정리

작년 12월 31일로, 수년간 해왔던 서울시지원사업을 마무리하고 사무실도 정리를 했다. 정리 과정은 지루했을 뿐 감정은 남지 않았다. 지원 기가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상황들로 상상하고 원했던 그림 모두를 펼쳐본 것은 아니나, 참 열심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향했던 열정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제약이 늘어날수록 점차 사그라들었지만, 주어진 환경 안에서는 최선을 다 했고 우리에겐 다시 경험이 쌓였다.

지원으로 운영되던 공간을 철거하고, 렌털을 반납하고, 폐기물을 두, 세 트럭쯤 버렸다. 켜켜이 쌓인 배움과 성장을 남기고 안 좋은 기억과 감정의 찌꺼기도 함께 버렸다.  남은 짐들은 대부분 내 개인의 짐이었거나 처분할 수 없는 쓰다 남은 것들이었고
, 그런 짐들을 다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골목 안 공간들로 이사도 했다. 지원사업을 하는 동안 개인 사업은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시피 한 공간들에 짐을 풀고 다시 세팅하니, 살짝 온기가 돌았다. 오래 지원사업에 익숙해져 있다가 황량하기 그지없는 현실로 돌아오니 느낌이 색달랐다. 



어쩌다공간


와중에 공간을 인수하게 되었다.
지원 종료 두 달 전쯤부터  나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다른 공간을 구하고 있었고, 굳이 대로변에 있는 1층의 공간이 아니어도 좋기에 사무실과 워크숍을 위한 공간이 동시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임대 매물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브랜딩과 마케팅, 조직개발이 주요 BM이어서 회의를 하거나 고객사의 코어 조직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삼 년을 넘게 사용하던 공간들에서 마음이 쉬이 정리되진 않았지만, 운영은 현실이다. 더구나 나는 고객사의 사업 모델을 설계할 때 경영에서의 운영비 구조까지를 세팅하곤 하니, 공간이나 인테리어에 들어갈 비용의 마지노선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나가야 하는 공간은 새로운 임차인을 찾기 위해 내놓은 지 오래였으나 보러 오는 사람이 적었다. 대중교통이 가까이 있는 왕복 4차선 도로의 대로변이긴 하나 애매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그에 비하면 임대료가 다소 높은 편이었다. 적은 유동인구와 주변의 상가에 공실이 많다는 것,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F&B업종이 들어오기엔 애매한 공간 사이즈도 물론 영향을 끼쳤다. 계약 종료 날짜는 점점 다가오지만 건물주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임대료를 파격적으로 낮출 생각도 없었지만, 들어오길 원하는 업종은 편의점 또는 카페였으니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이 공간에 그런 업종이 들어온다는 건 그야말로 무덤에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나도 새롭게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니 새로운 임차인과 협상의 여지가 없어졌고, 점점 계약 종료일이 다가오자 철거에 대한 여러 가지 조건이 생겼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공실로 비워야 하는 기간이 길어질 경우를 대비한 것이긴 하지만, 나에게도 고민은 가중되었다.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공간을 임대하고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 비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철거 및 원상복구 비용이 예상보다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주 묘한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인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예상보다 더 보증금을 마련하고 월 임대료를 낮추는 것과 몇몇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할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가격 조율이 어려워 계약 날짜는 늦춰질 대로 늦춰졌고, 계약서를 쓰는 당일에도 고민을 거듭하던 건물주님은 어렵게 도장을 찍었다. 몇 달 공간을 비워두고 더 높은 가격에 들어올 임차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몇 달을 비웠다가 수년째 비워진 주변에 수두룩한 공실이라는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지만, 결국 이만한 세입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에 결단을 내리신 것이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공간이지만, 난 지난 10년을 로컬에서 꿈을 꾸며 성장해 왔으니 어쩜 딱 맞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결정을 하는 순간까지 나도 엄청난 고민을 했다는 사실은 기록해 두고 싶다. 아무리 새 사업, 새 출발을 하고픈 욕심이 있더라도, 모두가 오프라인은 어렵다고 하는 시대에 1층이 아닌 다른 층으로 가거나 더 줄이자면 
기존 공간들에 낑겨 넣어도 될법한 상황에 이 무슨 미친 짓인가 싶은 생각을 했다. 그 공간을 운영하며 지원금으로 내보냈던 고정비용들이 고스란히 새로운 회사의 고정비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상을 거듭하며 신이 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 공간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양쪽으로 줄줄이 이어진 공실들 중 하나가 되어 더 어둑어둑한 거리가 되었을 테고, 그렇게 골목을 떠나버리면 세상을 향해 품고 있는 상상 중 많은 부분을 묻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뭔지 모를 책임감이랄까, 미련이 남은 건가 아니면 그저 단순하게 미련한 건가...





현실은 현실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며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난 이제 모든 것에 숫자를 대입해야 하는 대표가 되었다. 통장에 찍히는 들어오는 돈이 모두 회사의 것이고 심지어 그중의 일부분은 세금으로 다시 나가야 한다는 자각은 개인 사업자를 하는 내내 인식조차 못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 현실을 깨우쳐 준 것은 다름 아닌 은행이었다. 신규 법인의 경우 처음에 계좌가 한도계좌인 것은 당연했으나 개인사업자와 달리 그 제한을 푸는 것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아직 1년이 안된 신생 업체긴 하지만, 그래도 적은 금액이나마 거래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부가세 신고를 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계좌는 풀리지 않았다. 온라인 송금 일 30만 원, 창구 송금 일 100만 원이라는 한도 안에서 운영을 하다 보니 매일 은행에 출근부를 찍고 있다. (큰 금액을 일시에 사용해야 할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개인사업자를 사용하고 있다) 내 딴에는 부가세도 많이 냈다고 생각해서 다시 한번 두들겨본 창구의 반응은 냉랭했다. 계좌의 내용이나 내 얼굴을 봐서는 대포 통장으로 사용 안 하실 것을 믿지만 승인 후 사고가 나면 담당자에게 그 책임이 가기에 올해 나올 재무제표를 보고 그 건전성을 판단해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었다. 그래, 담당자가 무슨 죄겠나. 그들이 보기에 허약해 보이는 재무 상태와 능력 부족일 것 같아 보이는 내 탓이겠거니라는 생각을 하며 별 대꾸 없이 돌아왔다. 올해 안에 한도를 풀고 3년 이내 저 창구에 갔을 때 반기는 회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품으며..


애초 계획과 달리 임차비와 관리비가 늘어나는 바람에 인테리어를 최소로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하나씩 진행을 해나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크루들은 이런 작업에 아주 익숙했고 일정을 짜고 하나씩 진행 중이다. 하지만 처음의 계획과는 다르게 돌발상황이 종종 발생을 해, 일을 진행하며 공간을 정리하고 새로 세팅한다는 건 욕심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비용이나 시간적인 부분을 고려해 기존 세팅을 크게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고객사와의 워크숍이나 컨설팅, 거기에 잦은 내부 회의의 빡빡한 일정 중에 공간 세팅을 한다는 건 펼침과 정리의 무한루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긍정의 마인드로 돌아갔다. 고객사를 위한 마케팅 대행으로 시작했는데, 제대로 된 마케팅을 위해 브랜드의 맥락을 정리하다 보니 결국 브랜딩을 하게 되고, 브랜딩을 위해 미션과 비전, 핵심 가치, 행동원칙을 세우기 위한 조직개발을 하게 되고, 팀빌딩을 위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에 필요한 디자인을 하며 일도 연결에 연결이 거듭되고 있다. 이것도 무한루프를 만들자며 의기투합을 하고 사옥 마련을 목표로 한 N년을 함께 견디기로, 그 시작을 위한 몰입의 과정을 기꺼이 즐기기로 한 것이다. 



그래, 난 리더다 


이제, 세상으로 나왔으니 앞장서서 팔을 걷어 부칠 수밖에 없다. 지원사업을 하는 동안은 어느 정도 따뜻한 환경이 세팅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여러 제약도 많고 월급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임차비, 시설비, 공간을 운영하는 잡다한 비용들이 지원금에서 충당이 된다. 그래서 난 사업을 하는 내내 지원금을 최대한 활용해 경험을 샀고, 그 따뜻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 와 말하지만, 맘먹은 휴가가 아니라면 따뜻한 침대 잠을 자 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일과 책에 몰입하는 자체의 즐거움 상태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언제든 차디찬 현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딱딱한 바닥의 잠깐 수면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그렇게 내 평생을 경험을 사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 경험이 많은 부분에서 밑천이 되어주고는 있지만, 역시나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노력과 다짐이 사업의 결과에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 현실, 창업의 원년이나 마찬가지인 2024년에 나는 어떤 리더의 모습이어야 할지 생각했다.  2002년 첫 회사 입사 이래로 쭈욱 해온 일이 기획일이고, 마케팅, 브랜딩, 퍼실리테이션, 조직개발로 확장해 파고 또 파며 자신감 충만하게 시작한 일이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전공자보다 더 공부했고, 거기에 자유롭게 살았던 학창 시절과 창의적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회사 시절의 경험을 조합해 늘 새롭고자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부딪힐수록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며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욱더 겸손하게, 배움을 부지런히 하는 매일이 이어지고 있다. 이 현실에서 먼저 부딪히고, 
앞에 서서 바람을 가르고 나아가야 하는 리더다. 




호시우보

범처럼 예리하게 노려보며, 소처럼 우직하게 가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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