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대로 흘러가면 어디로 갈까
누구에게나 전성시대라는 게 있다.
그리고 또 누구에게나 있는 얘기인데, 내게도 거칠 것이 없던 이, 삼십 대가 있었다. 일에서도 나름 인정을 받았으니 그렇게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일 년에 한두 번쯤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 여행도 다닐 여유쯤이야 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때때마다 다니는 호사스러운 여행은커녕, 난 10년 전 2014년 여름 갑작스럽게 퇴사를 결정한 후, 작은 공간을 열어 북클럽으로 시작해 성장을 위한 커뮤니티를 운영했었다. 그전에 했던 일이 의상디자인이라는 전공과 관련한 디자인 기획일이었고,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방대한 업무량과 매번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독박육아라는 상황들에 지쳐있었던 터라, 같은 전공 친구들에 비해 높은 연봉과 이래 저래 주식 재테크를 한 것까지 더해 연수입이 꽤 높았으나 버티지 못했다.
퇴사를 하고 내가 가진 공간을 임대 대신에 직접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상당했던 퇴직금을 쏟아부었다. 소소하지만 알콩달콩 유유자적하게 아이 둘 잘 키우며 '경단녀'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천성이 뭔가를 기획하고 계획해서 일을 펼치는 스타일이라 그랬던 건지 결국은 점점 더 큰 일들이 연결되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스스로 강제성장을 해야 했던 몇몇 정부 지원사업들이 있었다. 대부분 다른 이들을 돕거나 지역을 변화시키는 일들이었는데, 못 다 이룬 커리어우먼의 꿈이라도 이룰 양, 욕심을 한껏 부렸다. 남들은 다 그런 건 눈먼 돈이라고, 적당히 하고, 나눠서 하자는데 항상 그 모든 걸 직접 해야 한다며 고집을 피웠다.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정부지원사업과 지역의 성장을 위한 활동들을 계속하면서 때로는 내 능력치를 벗어난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난 나의 '반드시, 잘 해내고 싶다'라는 욕망에 휩싸여 성장과 성과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각종 교육을 받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때론 회사에서 내내 했었던 익숙한 기획 일이기도 했고, 때론 큰 도전이 필요한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기도 했다. 활자 중독인 자가 독서에 빠졌을 때의 맹점은 다른 중독과 유사하다.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파민.
더 잘하고 싶어서 더 알고 싶어서 책을 파고 또 팠고, 누적 권수가 2000권쯤이 되었다.
그렇게 쌓아오던 무언가(받은 교육들과 책에서 발견한 아이디어, 솔루션 등)를 현장에서 적용할 때, 줄곧 가져온 의문이 있다. 일, 이백 만원의 소박한 지원사업에서 몇천만 원의 단위를 거쳐 수억 원쯤이 되었을 즈음이기도 했다.덩어리가 큰 정부지원 사업을 하다 보면 기획의 주체와 실행의 주체가 다른 일이 허다하다. 주변자적 관점 혹은 메타 관점으로 바라보면 분명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아서 보이는 맥락대로 기획하고 계획해서 실행을 권하면 열이면 열 다 튕겨져 나왔다. 대부분 우리를 의심했고, 거부했으며, 심지어는 귀찮거나 하찮게 여기기도 했다. 현장에서의 반응은 '뭘, 그렇게까지'와 '해봐야 소용없어요', '여기는 달라요. 사람이 없어' 정도로 나뉘곤 했는데 나는 그게 항상 의문이었다. 내가 읽고 배우며 체득해 온 성공이론은 "굳이 그렇게까지"해야 했고,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임계치를 넘어야 하는 일이 당연했다. 게다가 시장이 없다면 온라인에서 나의 시장을 만들 수 있는 시대적 변화도 있다(그러나 타고난 몽상가인 나도 영원히 떠다닐 나의 말이 남을 온라인이 좀 두렵긴 하다). 다만, 우리가 직접, 우리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 우리가 실행하는 기획은. 직접, 신이 나서 하는 일이다 보니 늘, 꽤 괜찮은 성과를 냈다. 갑자기 우리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했던 웃자고 한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우리가 개고생 하는 걸 알아보더라구"
아, 적고 보니 울컥하네. 우리, 꽤나 진심이었나 보다.
그렇게 그동안 진행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수십 개, 만난 사람들이 수천 명, 컨설팅이나 기획을 한 브랜드가 수백 개에 이르렀다. 다만, 아쉬운 건 난 기억되지 않았고, 내 이름으로 불리우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이 모든 경험을 담아 이제 진짜 내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고, 나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브랜드를 위한 전략 기획실 Next Jumper's Move - NJMove라 쓰고, 엔제이무브라 부르고 있다.
브랜드의 성장을 돕는 브랜드 기획사다. '리더의 변화와 조직의 성장을 도와 브랜드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기여한다'라는 미션을 가졌다. 거창해 보이지만 우린 진심이다. 사실 유명무실한 개인 사업자는 진즉에 있었지만 그건 사업이라고 불리기엔 조금 민망했다. 무보수 대표자를 하던 마을기업의 대표 시절이나 급여가 없다시피 한 정부지원사업에서 충족되지 않는 생활비를 위해 소소하게 강의를 하거나 뭔가를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그래서 새 출발의 마음으로 새로운 법인을 작년에 설립해 두었다. 작년엔 여전히 지원사업 중이어서 살살 워밍업을 했고, 본격적인 시작은 지원사업을 모두 마무리 한 후인 2024년. 바로 지금이다. 이 타이밍에 얼떨결에 지역에서 공간 하나도 인수하게 되었다. 골목에서 왜 안되는가..? 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의지가 생겼다랄까. 적지 않은 임대료부터가 첫 번째 벽으로 다가왔지만, 몽상가 특유의 대책 없음을 무기로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정신승리 중이다. 여기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시작은 맘에 들었어! 를 외치기도 했다.
그래,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이지 않으면, 난 또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쫓아갈 테니까(도망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