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졸업여행 #00 프롤로그
치앙마이에서 망고에 맥주 마시면 얼마나 행복할까?
개강을 지나 과제와 시험의 압박으로 짓눌린 2022년 4월, 학교 앞 단골 칵테일 바에서 지나와 골골대며 술을 마시다가 뱉어진 읊조림. 헉, 우리는 2학기 종강 후 추울 때 따뜻한 곳으로 떠나자며, 고생했는데 졸업 여행 가야 하지 않겠냐며, 여행 경비를 대충 계산해 보고는, 월 8만 원씩 여행계를 넣기로 신속히 결정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모임통장을 개설해 쐐기를 박는다.
즉흥적인 결정 같지만 바로 여행계라니, 나름 계획형이다(라고 엠비티아이 P 두 명이 주장한다). 이렇게 신속하게 결정한 데엔, 그간 여행을 못 간 설움이 기여한듯하다. 2020년,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포부로 휴학했으나, 코로나가 터졌다. 1년을 휴학 상태로 버텨봤지만 결국 집에만 있던 사람이 되었다. 길다면 긴 시간 학교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집이라는 안온한 감옥에서 표류했다.
다행히 표류기 동안,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가리라는 인생의 방향성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 대학 입학은 2015년에 했는데, 의대도 아니고 대학원도 아닌데 여전히 학교라니. 나이주의에 연연하지 않는 나지만 이건… 너무 길다. ‘그래도 졸업장은 따자’ 굳게 다짐하고 열심히 다녔는데, 전공 두 과목을 깜빡하고 듣지 않아 또 졸업 실패다.
어이없지만 실화다. 진짜로.
아니, 너무… 헐렁한데?
여전히 실화다.
젠장, 이번에는 정말 졸업할 수 있을 줄 알고 4월부터 여행계도 들었는데. 또 미뤄지나?
그래. 가자, 그냥.
우리가 그토록 중얼거렸던 치앙마이로!
치앙마이, 치앙마이… 힘들 때마다 우린 주문처럼 치앙마이를 되뇌었다.
달달한 망고, 따끔이는 맥주 - 두 노랑이들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즐길 것을 떠올리며.
High Pain, High Happieness를 꿈꾸며 치열한 나날을 최선을 다해 마주했기에, 더 이상 졸업여행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튼, 졸업여행인 거야.
‘망고와 맥주’, 우리가 치앙마이를 단번에 여행지로 정한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로망. 여행을 떠나는 데에, 여행지를 정하는 데에 별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언젠가 우연히 스쳤던 운명같이 아름다운 사진, 힐링을 부르짖는 지친 육신, 그리고 단 한 번의 발화만으로도 우린 떨리기 시작한다. 이 순간부터 우리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설레인다. 현실의 속박을 던지고 로망으로 뛰어들 그날을 위해, 우린 또 하루하루 견뎌갈 힘을 얻는다. 때론 얼마나 행복할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현실에서의 행복과는 다르게 그 행복은 - 고통은 제외, 지루한 파트는 스킵, 환상은 듬뿍 첨가되어 더 황홀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겨울을 맞이했다. 따뜻한 황홀의 나라로 이끌어줄 겨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