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이렇게 짠하냐, 김낙수. 위대하다, 김낙수.

디자인어랑 산책갈까

by 디자인어


“나한테 어떻게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는데.”



25년을 회사에 바친 김낙수 부장은 결국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제목부터 역설적입니다. 대기업도, 부장 타이틀도, 자가도 이제부터는 잃어야 하니까요.


모든 걸 다 이루었다고 믿는 순간,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만수가 말한 “다 이루었다”라는 문장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김부장은 그 역설을 따라갑니다. 가진 것을 내려놓으며 그는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무엇을 착각했는지 마주합니다. 가족을 지키려 했다 말하지만, 어쩌면 지키고 싶었던 건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태도와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김낙수는 동기 허태환에게 ACT 세차 모집공고를 함께 하자고 제안합니다. 허태환은 “성구, 송희 보는 앞에서 진짜 할 수 있겠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김낙수는 도진우가 찾아왔을 때 세차를 하지 못하고 돌려보낸 일을 떠올리며 고백합니다.


“그런 내가 한심하더라. 25년 다닌 회사가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좀 알고 싶다.



임원이 되지 못한 도진우가 괴로워하며 “제가 왜 안 됐을까요”라고 묻자, 김낙수는 되묻습니다.
“그런 넌 왜 임원이 되고 싶은데, 뭘 위해 그렇게 살았는지 알아? 너 자신한테 솔직해져 봐. 사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이 말 앞에서 도진우는 “졌네…”라고 인정합니다.

어쩌면 김부장이 싸운 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부조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 위로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주었습니다. 올려놓을 때마다 다시 굴러떨어지는 반복. 비극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반복을 ‘의식하며’ 견뎌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몇 번의 바위를 굴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바위는 정말 우리가 선택한 것일까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낙수는 아내 박하진과 산책을 합니다. 잊고 지냈던 것,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의 얼굴입니다.


“넌 왜 이렇게 사랑스럽냐, 박하진.”
“넌 왜 이렇게 짠하냐, 김낙수.”
“위대하다, 김낙수.”
“멋지다, 박하진.”



연말로 향하는 이 계절, 한여름 폭포처럼 쏟아지던 소나기는 그렇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자존심을 채워주던 타이틀이 아니라, 결국 ‘나’라는 존재 그 자체일지 모릅니다.



카뮈는 말했습니다.
“세계는 이해할 수 없으며, 삶에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의미를 갈망한다. 이 충돌이 바로 부조리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지금 굴리고 있는 바위는, 행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의미를 향해 바위를 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