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못다 한 이야기
“우리에겐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숲이 없었습니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1950년대 산림 녹화율은 겨우 8% 남짓이었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골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헐벗은 민둥산이었죠.
광복 이후 정부는 식목일을 지정하고 전국적인 산림 녹화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월드뱅크의 도움으로 10만, 100만, 1000만 그루, 그 이상의 묘목을 심었지만 산은 좀처럼 푸르러지지 않았습니다. 묘목이 자라기도 전에 사람들이 다시 베어 갔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푸른 산을 보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국인의 인내심 부족을 비웃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의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나무가 아니라 석탄과 시멘트다.”
이후 태백과 정선에서 석탄을 캐고, 단양에서 시멘트를 생산했습니다. 난방의 땔깜이던 나무는 석탄이, 건축재였던 목재는 시멘트가 대신했습니다.
그제야 나무가 베어지지 않기 시작했고, 사라졌던 숲은 서서히 돌아왔습니다.
세계가 불가능하다 말했던 산림을, 우리는 결국 되찾았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불태울 석탄, 그리고 그 불을 끝까지 견디게 할 단단한 시멘트 같은 마음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만들어낼 울창한 숲이 몹시 기대됩니다.
1주차 강의를 준비하며 15주차 오늘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저는 여러분보다 먼저 이 시간에 도착해 여러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시절인연이 다 되어감을 느낍니다. 작별인사를 드릴게요.
수업이 있는 날이면 저는 여러분에게서 푸르름을 한 모금 머금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짙음을 건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푸르름과 짙음을 주고받던 인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짧게는 한두 학기, 길게는 여러 해 동안 부족한 선생 밑에서 수업 받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립니다.
여러분이 걷는 길 끝에, 바라던 꿈이 함께하길 늘 응원합니다.
오늘 수업은, 우리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