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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May 29. 2024

디자인 가이드의 딜레마

가이드가 있어도 자꾸 가이드 외의 새로운 케이스를 들고 오면 어떡하나요

“00님, (이러이러한) 이슈가 있었는데요, 해당 정책을 (이렇게) 변경하고 가이드에서 수정 후 배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의 말이 뭐냐 하면, 최근에 내가 담당하는 업무에서 제일 많이 한 말이다. 이전 글이 디자인 구성요소 정책 정하고 가이드 만드는 글이었는데 이렇게 가이드를 깨부수는 일을 얘기한다고?? 그러나 이렇게 가이드를 깨는 일은 정말 부지기수다. 그리고 나는 위의 문장을 슬프지만 이번주에 업데이트한 가이드를 배포한 지 며칠 만에 팀장님에게 말했다.



어제 배포한 가이드가 오늘 또 바뀔 수 있다


가이드를 운영하는 일은 배포 후부터가 시작이다. 배포하면 다신 보지 않았을 가이드를 더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든 가이드를 토대로 수많은 업무가 진행되고, 이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무수히 많은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답을 해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이드는 수정과 업데이트를 무한 반복한다. 이 수정과 업데이트에서는 가이드 보완도 있겠지만 내가 스스로 만드는 가이드를 깨부숴야 하는 일도 있다. 보통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가이드를 재정비한다.


1. 갑자기 사업 방향이 바뀌어서 디자인에 새로운 내용 또는 요소가 추가되어야 하는 경우

마케팅 디자인 같은 경우가 이런 사유로 가이드를 변경해야 하는 일이 잦은데, 워낙 트렌드와 사업의 방향이 자주 바뀌는 분야다 보니 그에 맞춰서 디자인도 발맞춰서 자주 바뀐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업 방향이 하루에 한 번 걸러 바뀌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사유로 가이드까지 여러 번 바꿀 필요는 없다. 대부분은 기존 가이드에서 응용하거나, [예외 조항]를 만들어서 가이드 변동 없이 디자인을 전개한다. 물론 이 예외 조항이 자주 발생한다면 그것이 가이드가 되겠지만….
2. 기존 디자인 가이드에 새로운 디자인 컴포넌트를 급하게 추가해야 하는 경우

이는 위의 1번 사유와 연결되기도 하는데, 솔직히 제일 눈물 나는 케이스다. 위에서 [트렌드와 사업 방향이 자주 바뀌는 분야]라고 언급한 데에서 [급하게]라는 단어가 추가된 경우라 볼 수 있겠다. 이 [급하게]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데, 급하게 추가한다는 것은 일정이 그만큼 촉박하다는 뜻이다.
보통 가이드에 새로운 디자인 영역을 추가하려면 디자인 고민과 더불어 유관부서와의 협의 등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는 그만큼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당장 다음 주 라이브시켜야 하는데 어쩌겠어… 결국 또 눈물을 머금고 야근하면서 디자인을 뽑고 바로 그다음 날 가이드 1차 리뷰할 준비를 한다.
3. 배포한 가이드에 필수 사항이 반영되지 않아서 이를 추가해야 하는 경우

이 경우는 솔직히 작업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가이드를 만들 때에 해당 가이드를 사용할 유관부서와의 합의가 정말 중요한데, 이때 중요한 사항을 놓치고 가이드에 빼먹은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모두가 완벽한 합의를 하면 좋겠지만, 이상하게 꼭 빼먹은 사항들이 한두 가지 이상 발생한다. (역시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에는 당황하지 않고 가이드 수정 후 재배포하면 된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런 내용 빼먹지 말아야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면 된다.



창의성을 위해 가이드를 깨야 하는 함정


(꼭 가이드대로 디자인이 잘 나온다는 법은 없다)

위에서는 사업이나 마케팅 방향 이슈에 따른 가이드 변동을 얘기했지만, 이번에는 디자이너 이슈에 따른 변동이다. 가이드는 말 그대로 [가이드]라서 정해진 틀에 따라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대체로 반복적이고 중요도가 높지 않은 마케팅 디자인 업무에 가이드가 강력하게 적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업무요청이 제일 많이 오지만 동일한 포맷을 사용하는 이벤트 페이지나 배너에서는 보통 디자인 가이드를 디테일하게 지정해 주기를 바란다)


반면 좀 더 눈에 띄어야 하고, 정말 사용자의 눈에 잘 보여야 하는 마케팅 캠페인 디자인이라면 이 가이드를 탈피한 디자인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매주 진행하는 일반 할인 프로모션과 1년에 1번씩 크게 진행하는 브랜드캠페인 또는 시즌 할인행사(좋은 예로 블랙프라이데이가 있다)가 같은 디자인으로 전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배너라도 눈에 더 띄어야 사용자들이 그 배너를 통해 이벤트 페이지로 진입할 테니까. 이 경우에는 이 페이지를 작업하는 디자이너와 정책 관리자가 협의 후에 가이드를 벗어나는 경우를 허용한다.


배민 같은 경우 특유의 말랑말랑한, 배민다운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앱 서비스다. 때문에 아무리 마케팅 디자인에 정책과 가이드를 적용한다 해도 [배민다움]을 잃지 않는 것을 기조로 가져간다. 나 또한 가이드를 만들면서 “디자이너가 가이드를 너무 따르다가 배민다움을 놓치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한다. 그리고 내가 가이드에 대한 안내를 하다가도 너무 디자인을 바꾸지 못하게 옭아매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든다.  


그럴 때마다 [가이드는 기본적인 정책집이고, 정보성 디자인을 통일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되새긴다. 이벤트 내용이나 할인혜택 안내에 대한 디자인은 통일시키고, 그 외에 페이지를 꾸미거나 콘셉트를 보여주는 그래픽 퍼포먼스는 언제든지 허용한다. 만약에 그래픽 퍼포먼스가 더 중요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페이지나 배너에서는 일정 수준에서 가이드를 깨부수는 것을 허용한다. 다만 가이드를 벗어나는 정도를 잘 조율하는 것 역시 가이드를 만든 디자이너의 역할일 것이다.



완벽한 가이드를 만들려 하지 마라


위와 같은 사유로 가이드를 계속 고치고 고치다 보면 “이럴 거면 가이드 왜 만드나” 현타가 오는 시점이 있다. 나 역시 이렇게 가이드 깨부술 거라면 뭐 하러 가이드를 만드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현타를 겪었다. 이런 현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다면, “완벽한 가이드는 없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매품으로 “처음부터 완벽한 가이드를 만들지 마라”도 있다.

 

디자인 가이드를 만드는 일이 처음인 사람들은 보통 이 가이드가 [불변의 가이드]라고 생각하고 애초부터 고칠 일이 없는 가이드로 만드려고 한다.(내가 그랬다…) 하지만 가이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앱 서비스가 끊임없이 개편과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디자인 가이드도 그에 발맞춰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가이드는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제일 기본적인 가이드의 중심 즉 정책을 견고하게 잡고, 거기서 가지치기해서 뻗어 나올 디자인과 가이드를 꾸준히 업데이트한다고 생각하면 좋다. 중심이 되는 정책은 가능하면 크게 바꾸지 않고, 그 정책을 베이스로 삼아서 가이드 내용을 바꾸거나 응용하면 된다. 나는 가이드에 없는 디자인을 요구하는 문의가 왔을 때에는 내 머릿속에 정책을 항상 숙지해 놓고 이를 기반으로 기존 가이드에서 응용하거나, 가이드에 새롭게 추가하거나 방향성을 정했다. 정책마저 자주 바뀐다면 이는 가이드를 만들 필요성까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정책을 뿌리 삼아서 뻗어 나온 디자인 구성요소들과 그에 따른 디테일한 가이드를 업데이트한다.


물론 이 정책마저 바꿔야 하는 상황은 반드시 온다. 앱 서비스를 개편하면서 구좌의 디자인도 바뀌었다든지, 새로운 신규 서비스가 생긴다든지 등등. 그때는 속으로 광광 울면서 정책을 다시 고쳐나간다. 결국 가이드는 완벽할 수 없고, 배포하고 나서도 N차 업데이트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난주에 막 업데이트한 가이드를 또 수정하고 있다. 어제 가이드와 오늘 가이드는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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