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고 싶은 상사의 모습
우리 팀은 1달에 1번씩 회고를 진행한다. 그때마다 한 달 동안 잘한 것, 아쉬운 것 등을 적는데 지난 회고 때에 나는 이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 적었냐면 바로 [칭찬 많이 해주기]다. 그러면 내가 그때의 다짐처럼 이후에 칭찬을 많이 해줬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이전과 달라지지 않....아니 못했다.
좋은 말 많이 해주고 더더욱 자신감을 넣어주고 싶은데, 미팅 끝나고 내가 한 말을 되돌아보면 고쳐야 할 점이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말만 했던 것 같다. 성격상 낯간지러운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고생하셨어요” “수고했어요” 정도의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전에는 오히려 칭찬을 어색하게 했더니 나를 너무 잘 아는 마케터가 굉장히 어색해했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칭찬을 어색하게 해도 나는 칭찬 잘하는 사수가 되고 싶다! 왜냐하면 나도 칭찬을 들어야 힘을 얻는 사람이니까…!!!
사람마다 동기부여의 원인은 다르다. 내가 한 일에 대한 칭찬, 실패에 대한 좌절,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등등. 아마 타인에 의한 동기부여는 칭찬이나 꾸중이 아닐까 싶다.
내가 칭찬을 해야 더 잘하는 성향이라는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학원 선생님들이 성적의 기준대로 아이들을 칭찬하기보다는 꾸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 살던 곳을 떠나서 지금의 본가 지역으로 이사 온 나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는데, 그 와중에 학원이나 학교에서도 꾸중과 질책, 더 심하게는 인신공격까지 받으면 더더욱 위축되었다. 안 그래도 내성적인 아이가 혼나면서 더욱 납작해진 것이다.
그때 다녔던 학원 선생님(아닌가… 과외 선생님인가?)이 “너는 칭찬을 받아야 더 잘할 타입이야”라고 얘기하셨다. 생각해 보니 맞는 얘기였다. 나는 혼나면 더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서 더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좋은 말을 들으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나쁜 말 듣기 싫어서 열심히 했다. 학교 입시 시스템 특성상 솔직히 중고등학교 시절에 칭찬받은 기억은 많지 않다. 그러기에 더욱 칭찬에 목말랐을 것이다.
이전에 재밌게 봤다고 했던 채널 십오야의 박현용 PD 토크영상에서, 박현용 PD는 당시 메인 PD였던 진주 PD를 “칭찬 무새”라고 했다. 칭찬을 많이 해줘서 동기부여가 되는 선배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는 나영석 PD와 대주 작가도 엄청나게 공감했는데, 나도 이 영상에 나온 이야기 중 가장 공감을 많이 한 부분이다. (대주 작가가 “나도 칭찬을 좋아하는데 남한테 많이 안 했네….”라고 하는 부분에서 내 얘기인 줄 알고 눈물 흘릴 뻔…)
남에게 "참 잘했어" 라고 듣는 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오죽하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이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듣는 사람의 자존감도 올라가고, 다음에도 더 잘해야지! 하는 충분한 동기가 된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칭찬 잘하는 사수다. 진주 PD처럼 칭찬무새가 되고 싶다.
물론 칭찬과 좋은 말만 할 수는 없다. 뭐든지 균형이 한쪽에 치우쳐지면 좋지 않듯이, 무조건 칭찬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더라. 흔히들 당근과 채찍이라 얘기하는데 채찍(질책)만 있다고 말이 잘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당근(칭찬)만 있다고 말이 잘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이전에 알다(현 KB핀테크) 디자인팀과 진행하는 커피챗에서, "좌절의 순간이 필요하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내 커리어에서 최고의 좌절을 맛본 경험이었다. 대놓고 안 좋은 소리로 공격받은 것은 절대 아니었고, 인사평가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혼나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받으면 자책의 늪으로 들어가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 이 버릇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의 포인트는, 이전에 썼던 글처럼 “한번 긁히는 상황이 와야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이다. 칭찬받으면 당연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지. 좋지만! 칭찬만 받으면 그 안정감에 취해서 성장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이는 점점 경력이 쌓이는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상처받는 순간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상황에 사수도 악역을 자처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상사(사수, 리더)의 입장에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하는데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동료가 상처받는 것도 두렵고, 자신이 [나쁜 상사] 역할을 하는 것도 마음이 좋지 않다. 주니어 시절에는 전혀 몰랐는데, 이제 내가 상사의 역할을 몇 번 하고 보니 이런 입장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에서는 굉장히 냉정한 편이다. 일 얘기를 할 때에는 말투도 더 차가워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내가 주니어들을 대하는 태도 중 안 좋은 점을 하나 뽑아보라고 한다면, 피드백을 줄 때에 좋은 점보다 고쳐야 할 점을 먼저 찾는다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이 친구들은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부족한 점도 많을 시절이니까 고칠 점을 얘기해야겠다”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래서 칭찬을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먼저 칭찬해 주고, 다음에 고칠 점을 말해줘야지 생각했다. 물론 순서는 바뀔 수 있지만... 나 나름대로의 당근과 채찍의 균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아직은 채찍의 비중이 높아 보이는 아쉬움이 있기에 이 글을 쓰고 있겠지?)
가끔은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상사였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소심한 성격 탓에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답변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까지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회고나 연말 마무리 시간에 감사의 인사를 받을 때면 적어도 잘못하고 있진 않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좀 더 응원하는 비중을 더 늘렸으면 한다. 고쳐야 하는 점 먼저 찾지 말고, 응원하고 칭찬할 점 먼저 찾아봐야지. 내년 이맘때의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