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 Oct 01. 2024

디자이너의 말하기(1) - 웨비나에서 말하기

극 내향인 디자이너의 웨비나 도전기

“HYO님 수고하셨습니다.”

“000 디렉터님도 정말 고생하셨어요.”


9월 26일 5시 15분이 조금 지나고 웨비나 주최사 디렉터님과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으며 웨비나가 끝났다. 나는 속으로 엄청나게 쾌재를 불렀다. 이제는 휴일에 발표 준비하느라 쩔쩔매는 일은 없겠구나! 버벅대면서 말하는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는 극 내향인. 파워 I 인간이다. 처음 미팅을 주관할 때, 부문 위클리마다 진행하는 발표 세션의 발표자로 지목되었을 때 정말 몇 주 동안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나는 누군가의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정말 무서워한다. 그런 내가 100명 넘게 모이는 곳에서 발표를 하다니. 온라인 진행이라 참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달 동안 벌벌 떨면서 지낸 것은 사실이다.


이번 글은 이렇게 극 내향인 + 처음으로 외부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디자이너가 웨비나를 준비하는 과정을 회고하는 글이다. 나처럼 처음 발표하는 사람, 발표가 무서운 사람, 그리고 미래의 나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끄적여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

주최 측에서 원하는 주제


첫 스타트는 [이번 웨비나에서 무엇을 얘기할까]부터 시작한다. 웨비나 1달 전쯤, 주제 지정과 일정 논의를 위해 위픽레터(웨비나 주최사) 디렉터님, 그리고 담당자 님과 만났다. 가볍게 인사하고 어떤 것에 대해 얘기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이 미팅 전에 연사 정보, 간단한 웨비나 구성과 주제를 서로 구글닥스를 통해 적어놓았었는데 여기서 주제를 정하는 것이 제일 문제였다.


디렉터님이 내가 쓴 글(당시 위픽레터에서는 내 브런치 글을 어느 정도의 편집을 거쳐서 위픽레터 아티클로 옮겨서 기고해주고 있었다)을 보고 이런 주제였으면 좋겠어요~라고 적어주셨던 후보군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 주제를 보고 “어?” 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내용과는 좀 다른 듯한 주제들이 있어서, 이 부분을 사전 미팅에서 얘기하고 어떤 주제로 진행할지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웨비나 대상 : 마케터, 디자이너 (위픽레터는 마케터를 대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플랫폼이다)
주제 : 마케팅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 -> 근데 좀 디테일하고 명확하게 더 잡아보기


나는 개인적으로 “~하는 방법” “~하는 비결”이라고 끝맺는, 마치 일반 강의 플랫폼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주제는 피하고 싶었다. 나는 이 웨비나에서 [마케팅 디자인 잘, 이쁘게 만드는 포토샵 또는 기타 프로그램 스킬]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런 스킬을 얘기한다면 콜로소나 이런 플랫폼을 찾았겠지? 하지만 웨비나나 컨퍼런스는 청중을 모집하는, [모객]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을 끌어올 수 있는 매력적인 타이틀이 필요했다. 디렉터님은 이벤터스나 다른 컨퍼런스의 주제를 참고하면 좋다고 조언하셨고 실제로 내가 주제를 뾰족하게 정할 때 타 컨퍼런스 세션들 제목을 많이 참고했다.


나는 위픽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발표를 진행해도 “~하게 생각하는, 고민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싶었다. 디자인은 스킬만 갈고닦는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스킬은 누구나 배우고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으로 일하려면 이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 그리고 업무를 진행할 때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한마디로 개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 개념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물론 처음 디자이너가 된다면 다들 스킬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전에 내가 들었던 콜로소 크리에이티브 컨퍼런스처럼, 전문가를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이런 자세나 의도가 더 중요하다-라고 해야 "아 저게 진짜 중요하구나!" 라고 알지 않을까.


나의 이런 뜻을 전하자, 디렉터님 역시 더 좋은 주제가 없을지 함께 고민해 주었다. 결국 [마케팅 디자인]에 대해서 이게 무엇인지 + 마케팅 디자인에서 뭘 중요하게 보고 성장할 수 있는지 + 그 외 등등을 얘기해 보기로 했다. 사전미팅 때 디렉터님, 담당자님과 함께 얘기를 나눈 덕분에 웨비나에서 이걸 얘기하면 되겠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고, 아래 3가지 후보로 좁혀지고 정해졌다.


(후보 1)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마케팅 디자인 : 배너와 이벤트페이지를 만들며 일잘러 마케터와 디자이너로 거듭나기
(후보 2) 마케팅 디자인이 뭐죠? : 서비스의 작은 영역 중 하나인 배너와 이벤트페이지 제작 업무로 커리어 이어나가기
(후보 3-확정) 마케팅 디자인으로 일잘러 되기 : 작은 영역이지만, 업무량이 가장 많은 배너와 이벤트페이지 제작 업무에서 일잘러 마케터와 디자이너로 거듭나기



1시간 가까이 되는

긴 시간 동안 말할 거리 정리하기

 

주제와 목차, 연사 소개글을 디렉터님에게 전달하고 난 후 이제는 진짜로 발표를 준비해야 했다. 소개글에 이미 어떤 이야기를 할 건지 대략적인 목차가 정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 목차별로 디테일한 얘깃거리를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발표 시간이었다. 웨비나는 대략 1시간 정도 진행하며, 앞의 인트로와 뒤의 질의응답 시간을 제외하고는 40-5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나 혼자서 떠들어야 했다. 세상에 나는 길어봤자 20분밖에 발표 안 해 봤는데…이 시간을 어떻게 채우지?? 시간 채우는 것이 제일 고민이었다.


사실 이것도 슬라이드 장 수 많이 줄인 거.....

그래서 일단 최대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슬라이드에 모두 때려 넣기 시작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이지만, 너무 많은 내용을 줄이는 것이 없는 내용에서 추가하는 것보다 조금 더 쉬운 편이다.(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많이 오버되면 줄이지 뭐!”라는 마음으로 대충 슬라이드 장표를 추가하고 또 추가했다. 물론, 벌써부터 디테일을 잡진 않고 “대충 이 슬라이드에 이런 얘기 넣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와이어프레임 그리듯이 추가했다.


원래 목차 2번째가 <마케팅 디자이너의 업무들을 함께 보면서 어느 부분이 중요한지> 같이 보는 차례였다. 나는 이때 마케팅 디자이너의 1주일을 돌아보면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쭈욱 읊어보려고 했다. 근데 막상 슬라이드로 쭉쭉 추가하다 보니 이 부분을 얘기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지더라?? 길어지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을 대폭 줄이기로 하고, 내가 마케팅 디자인에 대해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업무 진행과정에 대해 얘기하는 걸로 수정했다.


2번째에 이어서 3번째(마케팅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봐야 하는 3가지), 4번째(함께 일 잘하는 마케터와 디자이너의 특징)의 목차도 점점 채우다 보니 점점 시간이 늘어났다. 내가 이렇게 할 말이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예상은 했지만 후반부에는 정말 내용 줄이느라 애를 먹었다. 이번에 준비하면서 내가 [마케팅 디자인]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구나를 깨달았다.




극 내향인의 웨비나 연습


이다음의 문제는 바로 나의 [말하기] 스킬이었다. 나는 이때 100명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긴 시간 얘기해야 하는 웨비나가 처음이었다. 물론 이전에 발표를 진행한 적은 있어도, 그건 길어봤자 20분이었고 그때 말을 잘했냐 물어본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도 내가 평소에 얘기하는 말투를 안 좋아하는데. 내가 내용을 잘 준비했다 하더라도 이걸 말로 잘 전달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에는 내가 평소에 말을 잘한다고 해도 그것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시니어 경력으로 돌입하면서 나름 말하기 스킬이 어느 정도 늘어났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런 발표 스킬은….(할많하않) 이때 팀장님이 발표를 앞둔 친구들에게 전한 꿀팁이, 직접 구글 밋이나 줌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이걸 녹화해서 나중에 보면서 고쳐나가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발표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귓등으로 들었지만(팀장님 죄송합니다) 이번에 한번 직접 내 발표를 녹화해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첫 녹화본을 본 결과… 텐션이 다운되어서 듣는 사람도 텐션이 떨어지고, 발음이 자꾸 씹혀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첫 녹화를 진행했을 때 회사 업무 끝나고 지친 상태에서 녹화한 거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분명히 고쳐야 할 지점들이었다.


직접 웨비나로 실전 연습을 해야 내가 청중에게 어떻게 보이고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알 수 있다 (얼굴은 너무 생얼이라 블러처리ㅠㅠ)

발표할 때의 텐션은 다행히도 점점 좋아졌다. 업무 시간 말고, 쉬는 날이나 주말에 아예 각 잡고 얘기하다 보니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여기에 억지로 내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달달한 음료 하나 옆에 두면 더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발음이 씹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나운서나 배우가 아니다 보니 딕션이 그들에 비해서는 한창 떨어지겠지. 참고로 추석 때 본가에 가서도 웨비나 준비는 계속되었는데, 엄마가 내가 옆에서 발표 준비하는 것을 듣더니 이 한마디를 던지고 갔다.


“입을 좀 크게 벌려서 얘기해 봐. 입을 오므리니까 뭔 말하는지 정확히 안 들리잖아.”


이 말이 맞다. 나는 평소에 얘기할 때 입을 잘 벌리고 있다 생각하는데, 나중에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것을 보면 입이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벌리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입을 제대로 벌리고 연습해 보니 확실히 발음이 씹히는 것이 확연히 줄었다. (근데 정작 웨비나에서 내가 입을 제대로 잘 벌렸는지 모르겠음)




진짜 웨비나라고 생각하고 연습하기, 근데 대본을 곁들인.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이 발표를 진행한다고 할 때, 대본을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아나운서나 유재석, 김성주 같은 베테랑 명 MC들은 대본을 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발표 또는 컨퍼런스는 대본이 존재한다. 아마 오프라인 컨퍼런스도 앞에 화면을 하나 설치하고 그곳에 대본을 보여줄 것이다. 심지어 뉴스 앵커도 뉴스 진행하면서 대본 보고 진행한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무엇인가 하면, 대본이 있어도 대본을 보지 않는 척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뉴스 앵커나 MC들이 화면의 대본, 또는 손에 들린 대본을 간간히 보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대본이 있어도 안 보는 것처럼 부드럽게 얘기하는 것에 숙달된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말하기 방법이 컨퍼런스나 웨비나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예전에 참석한 어느 컨퍼런스에서 연사 중 한 명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지 대본을 교과서 읽듯이 읽으면서 발표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이 연사님 강연이 제일 지루했고 당연히 내용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피그마 슬라이드에 present+notes 재생 기능이 있어서, 내 발표 슬라이드 창 별도, 대본 창 별도 띄울 수 있다

이 때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발표할 때 대본을 보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읽고 말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웨비나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최대한 대본 그대로 읽는 것보다는 여기서 말투를 내가 평소에 얘기하는 말투로 바꿔서 진행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발표 장표를 띄우면서 대본을 보는 것이 티가 나는지도 확인했다. 시선처리나 말투 등등. 시선처리는 내 얼굴이 나름 예뻐 보이는…. 곳에 맞춰서 대본 창을 띄우고 그곳에 집중했다. 웨비나 때에도 당연히 대본 창을 띄우고 진행했는데, 과연 이게 정말 자연스러웠는지는 당시 웨비나를 시청한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렇게 1달 동안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심지어 하루 휴가 써서 공유오피스에서 집중해서 준비한 웨비나가 무사히 끝났다. 사실 이 웨비나로 사람들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그냥 내가 한 얘기만 잘 전달되고 무사히만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물론 웨비나 초반 인트로에서 아주 사소한 이슈가 있긴 했지만 여하튼 무사히 끝났고, 위픽 담당자분들과 홀가분하게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이번에 특히 힘들었던 점은 바로 [말하기]였다. 내가 팀장님과 이 발표를 진행한 건에 대해서 짧게 얘기할 때, “글은 수정이 되지만 말은 수정이 안된다”라고 그래서 무섭다고 얘기했다. 내가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내가 만약 웨비나 때에 얘기한 것이 부정적인 이슈를 부르면 어떡하지, 갑자기 대외비 내용을 얘기하면 어쩌지 걱정인형은 정말로 걱정을 많이 했더란다. 하지만 이번에 긴 시간 동안 혼자 말하는 경험을 했으니, 이후에 짧게 얘기하는 것은 그래도 쉽게 하지 않을까 나름 기대해 본다. 아 물론 오프라인 현장에서 발표하는 건 예외다.


그 외에 웨비나 라이브 시간 동안의 방송 이슈, 그리고 회의실 특성상 내 목소리가 울리는 등의 이슈도 보였지만 앞으로 다른 발표를 웨비나로 진행할 때 충분히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이때에 긴장이 많이 풀렸는지, 이후에 진행한 유튜브 촬영에서는 방심도 했고 자꾸 실수만 해서 후회막심한 모습에 이불킥을 날리는데….. 이거는 2탄에서 계속!



- (번외) 웨비나 녹화본은 이 유튜브 링크에서도 볼 수 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qkINqkf5qMo&t=1621s


- (번외) 내가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너무 디자이너의 시선으로만 발표 내용을 꾸리는 것 같아서, 최근에 함께 일한 마케터 1분 + 예전에 함께 일했던 마케터 1분 이렇게 질문 몇 가지를 전달해서 답변을 받았다. 시간상 모든 내용을 넣지 못했지만, 답변을 너무 잘 적어주시고 + 진짜 필요한 내용들이었으며 정말 디자이너들이 알면 좋은 내용들이었다. 내가 웨비나에서도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함께 일 잘하려면 공유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추후에 글로 또 풀 수 있다면 풀어보겠다. (글 중 1개는 비공개 처리 되어서 현재 보지 못하지만 ㅠ) 이 자리를 빌어 도와주신 마케터 2분에게 정말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