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변화를 마주한 지금 냉정하게 본 주관적인 현실과 미래
"채용이 이전보다 훨씬 줄었어요. 요즘은 콘텐츠 디자이너 뽑는다 하면 대부분 기간제예요."
"작년 이맘때쯤에는 그래도 A사에 마케팅 디자이너 채용 공고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완전 내려갔다니까요."
주변에서 디자이너들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좋은 얘기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이직이 활발했던 [대이직시대], 이전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이제 [버티기]에 들어갔다. 경기침체와 사회불안이 더해져서 채용공고는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특히 디자이너의 채용은 이전의 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다. 항상 몇 개 정도는 올라와 있던 공고들도 내려갔다. 거기에 주변 기업의 희망퇴직 소식은 나마저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이 직군으로 오래 일했지만 지금처럼 불안한 적은 없었다. 고용 불안에 AI 쇼크까지. 개발자와 디자이너들 같은 기술직은 AI에게 일자리를 뺏길까 하루하루 두려워하고 있다. 이렇게 나도 불안해하는데, 멘토링을 할 때마다 멘티들의 걱정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그들의 불안과 내 불안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희망찬 미래 말고, 정말 냉정하게 현실을 다시 마주해보려 한다. 난 지금 왜 마케팅 디자이너로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걸까?? 뭐가 두려운 걸까? (*주의! 주관적인 의견이며 반박 시 여러분 말이 다 맞습니다)
가장 큰 불안요소 중 하나. 위에서도 얘기했다면 최근 마케팅 디자이너 채용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신입부터 중니어까지의 채용도 크게 줄었다. 경력이 꽤 많은 나에게는 주로 헤드헌터를 통한 영입 제안이 심심치 않게 왔는데, 그도 역시 전멸 수준이다.
요즘 회사들은 어느 직군의 디자이너를 뽑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챗GPT에게 물어보니 업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전체 산업 기준에서는 마케팅/콘텐츠 디자이너 구인이 낮지 않지만 IT기업에서는 확실히 프로덕트 디자이너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안타까운 점은, 흔히 네카라쿠배당토라고 불리는 큰 기업들은 마케팅 디자이너의 채용 공고가....(말잇못)
제미나이에게도 물어보니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참고로 제미나이는 IT업계,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직군에서의 통계를 내줬는데, 이 경우 마케팅 디자이너의 비중이 가장 낮았다. 나에 대한 정보가 얼마 없는 제미나이는 나에게 채용공고가 가장 많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방향을 잡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세상에....
요즘 마케팅 디자이너 채용공고가 줄어드는 이유가 뭘까? 나는 아래 3가지 이유를 크게 보고 있다.
1) 규모가 큰 플랫폼 기업은 배너나 페이지 작업을 외주 맡긴다.
몇몇 에이전시의 홈페이지나 홍보를 보면 큰 기업의 배너나 페이지 작업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 큰 캠페인도 유명한 에이전시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 회사에서는 모바일 제품(프로덕트)에 집중하고, 그 외에 브랜딩/마케팅 관련 캠페인은 좀 더 전문성 있는 에이전시에게 맡겨서 협업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상황은 주로 큰 기업에서 주로 보이는데, 마케팅 디자인이 이 기업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는 걸까?
2) 안 그래도 더 이상 인력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 그나마 작업이 쉬운(?) 마케팅 디자인을 다른 디자이너들(프로덕트 디자이너 또는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맡긴다.
이는 회사 상황과 불경기랑 맞닿아있는 것 같은데, 요즘 회사들은 채용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금 몇몇 기업은 크게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만약 회사에서 인력 1명당을 비용으로 측정한다고 하면, 아마 쉬운 일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디자인에 비해 허들이 낮은 마케팅 디자인이 그 일에 해당될 확률이 높다. 사람을 새로 뽑을 바에는 내부 인력에게 그 일을 맡기거나 똑똑한 사람에게 효율화를 지시해서 자동화하는 게 낫다 생각할지도.
3) AI가 빠르게 자동화해줄 거라고 믿는다
이건 솔직히 모든 디자이너가 하는 고민 같은데... 그중 가장 빠르게 자동화할 수 있는 게 배너 또는 이벤트페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근데 말이죠. 그게 또 생각보다 쉽지 않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자료를 모아서 별도의 글로 써볼 예정)
결국 우리가 항상 해왔던 일은 다른 직군에 비해 쉽고 반복적인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또는 어느 것)에게 대체되기 쉬워서 채용을 줄이는 것 같다....! 가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정말 슬픈 얘기지만 이 때문에 마케팅 디자인에서는 주니어~중니어 경력이 많고, 그 이상의 경력이라면 다른 디자인으로 커리어를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이 사례는 예전부터 꾸준히 있었다는 더 슬픈 사실.
보통 마케팅 디자이너들의 메인 업무는 배너와 이벤트 페이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케터가 이벤트나 캠페인 기획을 하고 기획서를 전달하면, 그 기획에 맞게 디자인하는 일. 퍼포먼스가 중요한 이벤트에서 비주얼을 잘 만들어서 이벤트에 맞는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점점 기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요즘에는 의미가 없다. 디자이너가 없다면, 마케터가 Canva 같은 AI로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 템플릿만 마련되어 있다면 Figma buzz를 통해 배너 베리에이션도 가능하다. 오죽하면 나 역시 디자이너에게 [우리가 시스템 다 만들어놓으면 오히려 우리 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까(눈물) 아마 대다수의 기업과 디자이너 개개인이 마케팅 디자이너를 [비주얼 퍼포먼스를 잘 만드는 기술자]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변화 속에서 역할이 점점 좁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큰 변화를 관통하고 있는 과도기는 어떠한 분야에 대한 정의를 바꿀 수 있는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디자인 분야가 점점 세분화가 되는 것 같은데 지금은 아예 다 섞어놓고 재편되는 느낌이다. 이런 미래에는 마케팅 디자인 일을 다시 정의해야 할 수도 있다. 오래전에 얘기했지만, 마케팅 디자인은 그레이 영역이다. 프로덕트 디자인과 브랜드 디자인의 중간에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마케팅 디자인에서 어느 방향으로 내 일을 정의하느냐를 고민해 볼 수 있다.
- UI/UX 관점의 마케팅 디자인 : 단순히 배너나 페이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배너 -> 이벤트 페이지 -> 혜택 받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서비스에 맞게 연구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마케팅 경험을 좀 더 사용자 경험 관점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 브랜드 디자인 관점의 마케팅 디자인 :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마케팅 디자인 특성상 자칫하면 브랜드 일관성이 무너질 수 있다. 어느 구좌에서나 브랜드의 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만들고 관련 디자인(특히 비주얼)을 디렉팅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글을 쓰면서 여러 자료를 읽다 보니 그로스 디자이너(Growth designer)라고 정의하는 곳도 있다. 단, 그로스 디자이너는 좀 더 데이터(성과 지표) 드리븐 디자인에 더 집중하고 있다. (참고글 : https://brunch.co.kr/@bat/176) 이 지점에서는 UX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좀 더 비즈니스 관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다.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다양해진다고 느낀 지점이다.
조금만 더 첨언하자면, 회사에서는 더 이상 [이것만 특출 나게 잘할 줄 아는 사람]처럼 세분화된 사람보다는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제너럴리스트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AI가 다 할 줄 알다 보니 AI 같은 사람을 뽑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나 이 스킬 할 줄 알아요]도 좋지만 [나 이 스킬을 이용해서 이러이러한 것을 할 줄 알아요]를 어필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를 그냥 디자이너가 아니라 설계하는 사람, 디렉터 등으로 정의하고 어필해야 할지도 모른다. 스킬은 AI가 나보다 더 잘하는 세상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