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배재경 : 선택받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전략
과열된 국내 디자인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무대를 넓힌 배재경 디자이너는, Upwork뿐만 아니라 fiverr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해외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있다.
지난 1편에서는 해외 진출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국내외 클라이언트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2편에서는 해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국내에서도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팁을 공유한다. 동시에 비즈니스라는 영역 안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선택받고 신뢰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지 그가 '프리랜서 필드'라는 야생에서 살아남으며 터득한 진짜 생존방식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지난 1편>
https://brunch.co.kr/@designerjane/106
솔직히 포트폴리오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형식이나 구성보다 그 안에 디자이너의 시선과 취향이 얼마나 명확하게 담겨있느냐이죠. 전 사실 학교를 중퇴한 터라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정형화된 사례 자체를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상태였죠. 그래서 단순히 ‘멋져 보이자’는 생각으로 과하게 연출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클라이언트가 있더라고요.
돌이켜보니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 사람만의 톤 앤 매너가 있는가”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작업을 담으면 더 많은 일을 수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이해돼요.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것 같습니다. 포트폴리오의 톤이 명확하고 스스로가 집중하는 니치가 또렷할수록 클라이언트는 '신뢰'를 가져요. 배관공에게 보일러 고치는 일을 맡기지 않듯이 디자이너도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런 스타일을 잘하는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결국 선택을 받는 첫 번째 전략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업워크 같은 플랫폼에서는 이런 일관된 톤이 중요하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프로필 사진이 정말 중요해요. 사실 어떤 플랫폼이든요. 처음에는 웃고 있는 셀카를 그냥 올렸더니 수주율이 낮더라고요. 잘되는 프리랜서들을 분석해 보니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전문적인 프로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날로 강남역에 있는 스튜디오에 가서 바로 프로필 사진을 찍었어요(웃음) 이후 정말로 수주율이 눈에 띄게 상승했죠.
리뷰도 업워크에서는 매우 중요한데요, 직접적으로 수정하거나 조작할 수는 없지만 협업이 좋았던 경우에는 클라이언트에게 정중하게 리뷰를 요청합니다. 반대로 맞지 않았던 클라이언트라면 별다른 요청 없이 종료하고요.
트러블은 대부분 낮은 단가에서 발생해요.
예산에 민감한 클라이언트일수록 마찰도 쉽게 일어나죠.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내가 벌을 받는다'라고 생각하고 다 해주는 편입니다. 결국 이 사람을 선택한 것은 나이기 때문에 해달라는 걸 다 해주고 그 경험을 통해 꼭 다음번에 배우려고 하죠.
프리랜서는 결국 고용이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잖아요. 그렇기에 클라이언트와의 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소통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내게 뭘 요구했는지, 그리고 왜 내가 그걸 미리 파악하지 못했는지 돌아보는 겁니다. 그 실패를 통해 다음에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고요. 이렇게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를 하이엔드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실무를 쌓았고 지금도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하는 디자이너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영업은 더더욱 중요한 요소이고요.
영업이 꼭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밥을 사주는 게 아니에요. 제가 잘하는 영업의 스타일은 의사소통인데요, 로고 디자인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먼저 클라이언트에게 원하는 스타일과 로고가 어디에 사용되는지만 물어요.
하지만 전 그 사람에게 디자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이야기를 하죠. 이 사업은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타깃은 누구인지, 제품의 MOQ, 초도 물량 등 사업전반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런 대화를 시작하면 클라이언트는 신나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해줘요. 자연스럽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요, 저는 이 대화를 통해 클라이언트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단순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죠. 이런 신뢰가 쌓이면 예산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 디자인도 하나의 비즈니스입니다. 잘 팔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해요.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받는다고 느낄 때 지갑을 열어요. 전 이것이 영업의 핵심이라 생각됩니다.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고정급(fixed)과 시간제(hourly)가 있습니다.
고정급은 프로젝트 단위로 금액이 정해지고, 그 범위 안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며, 시간제는 실제 작업 시간에 따라 수당이 지급됩니다. 업워크 자체 트래커를 통해 마우스 움직임이나 키보드 입력 등 모든 작업 활동이 기록돼요.
창의적인 작업일수록 고정급이 적합합니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조율하는 시간이 포함되기 때문이에요. 반면 단순 반복 작업은 시간제로 진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요. ‘5시간 걸릴 것 같다’고 제안하는 건 실제 시간보다는 그 작업에 투입되는 사고의 무게와 리소스를 기준으로 한 판단입니다.
디자인은 단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 포함한 지적 활동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아까도 말했듯 하이엔드 디자이너는 아니에요. 그 수준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천부적인 재능이나 예민함, 집중력, 디테일을 견디는 힘이 저에겐 아직 부족합니다.
디자인 실력 하나로 고단가 프로젝트만 맡는 분들 있잖아요. 그분들은 상대적으로 프로젝트 수는 적지만 높은 퀄리티로 높은 단가를 확보해요. 하지만 전 그 방식보다는 짧은 주기의 소형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모델을 선택했어요. 결과적으로 단가를 높이지 않더라도 작업의 리듬과 수주 속도를 유지하면서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요.
이 방식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중이고, 앞으로는 저처럼 일하고 싶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정된 팀이 아니라 각자가 주체적으로 일하다가 필요할 때 모이는 느슨한 크루 형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리드하는 구조가 아니라 프로젝트마다 자율적으로 협업하는 방식이죠.
진행하고자 했던 '소셜클럽'도 그런 실험 중 하나였어요. 업워크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는 많지만 실제로 시작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런 분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협업 가능성도 함께 테스트해보고 싶었습니다.
한 번 실험해 본 결과, 의욕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속도나 기대치, 일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이 과정을 통해 디자이너들과 유의미한 연결이 생긴 건 분명했어요. 꼭 소셜클럽이 아니더라도 이 방식은 어떤 형태로든 실험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업워크는 구조가 잘 짜여 있고, 진입 장벽도 낮은 플랫폼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플랫폼 규칙 안에서 통제되죠. 리뷰, 계약 조건, 수익 정산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이건 어느 플랫폼이나 마찬가지일 거고요. 한 채널에 의존하는 구조는 리스크가 매우 커요. 그래서 플랫폼 밖에서 직접 클라이언트를 만드는 구조로 조금씩 옮겨가고 싶어요.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AR 콘텐츠이에요.
앞으로 브랜드 경험에서 AR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이걸 만들어줄 수 있는 제작자는 아직 찾기 어려워요. 그래서 먼저 구조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AR 업계에 있는 지인을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AR 기반의 콘텐츠 팀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저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가 불편하진 않지만, 업워크에서 주고받는 메시지의 80%는 GPT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국어 문장을 다듬을 때 GPT의 도움을 받기도 하잖아요. 마찬가지예요.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그걸 매끄럽고 정중한 문장으로 다듬는 데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시간을 절약해 주고, 커뮤니케이션 품질도 향상해 줘요.
물론 간혹 Zoom 미팅처럼 직접 말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점차 실시간 통역 도구도 많아지고 있고요, 또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돼요.
클라이언트가 찾는 건 영어 전문가가 아니라 디자인 전문가이니까요.
디자인은 ‘상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단순히 ‘디자인 잘한다’라고 해서 누가 나를 사주는 시대는 끝났어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일이 만들어지고 수익이 생깁니다.
배재경 디자이너의 사례는 단순히 “해외 플랫폼에서 잘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보여준 방식은 결국 해외든 국내든 어디에서든지 적용 가능한 전략이며, 핵심은 자신만의 영역을 명확히 하고, 디자인을 하나의 비즈니스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모두 국내 디자인 시장이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와 구조, 그리고 '제안하고 솔루션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받는 사람이기 이전에 자신의 일을 주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재경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배재경 디자이너
https://www.behance.net/goworud175c
배재경 디자이너의 스레드
https://www.threads.com/@baehaus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