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들이 앞다투어 탐내는 인재가 되려면?
3월 중순 갑작스럽게 다니던 스타트업이 문을 닫으면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4월 달에 이미 한국에 가기로 계획을 짜고 티켓팅을 다 해 둔 상태였다.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라 더 난감했다. 친한 친구 두 명과 남자친구, 나 이렇게 총 네 명이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냥 취소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여행 전까지 약 4주간의 시간이 있었다. UX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 이후 거의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갖는 강제적 휴무. 이 시간을 즐기자는 의도도 있었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력서를 다듬고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업데이트하면서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두려운 마음도 컸다. 연일 대형 테크놀로지 회사들이 전체 인력의 10%-20% 정도 되는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다는 소식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전 메타, 전 아마존 직원들을 상대로 내가 과연 경쟁이 될까 싶었다. 즐거운 여행 직전에 리젝션 레터만 계속해서 받으면서 우울해지고 싶지 않았다. 일단 갔다 와서 고민하자 라는 생각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4주 동안 정말 탱자탱자 놀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국에 돌아오고 나면 이 미친 job market 이 다시 정상화되기 전까지 식당 알바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취미로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서 너무 맛있다며 네가 팔면 사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막걸리 사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남자친구도 너무 맛있으니 막걸리로 사업을 해보라며 부추겼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UX 일을 쉴 작정으로 동네 식당에 이력서를 뿌리고 인터뷰를 몇 군데 하고 시작 날짜까지 받아왔다.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니 4월 마지막주였다. 시도조차 안 해보고 포기하기는 찜찜해서 일주일간 이력서를 다듬고, 케이스 스터디를 정리해서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올렸다. 기존에 있던 케이스 스터디들도 한번 다듬었고, 자기소개 글도 수정해서 올렸다. 링크드인에는 연일 일을 구한다는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고, 왜 내가 좋은 candidate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올리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한테 노출되려고 노력했다. 아, 그리고 chat GPT를 이용해 링크드인 프로필 안의 내용들은 서치 키워드 위주로 다듬었다. 혹시라도 링크드인에서 candidate들을 검색하는 리크루터들에게 노출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일주일 후, 새로 고친 이력서를 가지고 공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리크루터들과 코워커들, 링크드인 내에 만났던 네트워크부터 시작해서, 혹시 오픈 포지션이 있는지, 주변에 소개해줄 수 있는 hiring manager가 있는지 물어봤고, 이력서를 제출한 회사에는 CEO와 co-founder들을 비롯해 hiring manager까지 연락처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몇 달간 힘들겠구나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액티비티가 생겼다. 지원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대형 펌에 디자인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리크루터와 연락이 되어 바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5개가 넘는 회사들에서 줄줄이 인터뷰 요청이 왔고, 지원을 시작한 지 딱 2주 되던 때에 수, 목, 금 연달아 3개 회사와 인터뷰를 하고 파이널 인터뷰까지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하던 회사 중 한 곳은 재택근무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절대로 이래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ㅋㅋ) 나는 100프로 재택이거나 하이브리드 인 곳만 찾고 있다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내가 저런 미친 발언을 왜 했을까 조금이라도 후회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며칠 후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고, 내 상황에 맞춰서 점차 재택 100프로로 바꿀 의향이 있다며 오피스에 직접 와서 한 번 더 인터뷰를 하고 자기네 co-founder들을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나한테 맞춰서 재택근무로 바꿔주는 회사라니?
그 외에 인터뷰를 했던 다른 회사들은 시리즈 A의 early stage 스타트업, 애리조나 기반 대형 물류 회사, 또 다른 대형 핀테크 회사, 등등이었는데 인터뷰했던 모든 회사들에서 파이널 인터뷰까지 스케줄을 잡게 되었고, 그중에 한 회사는 첫 인터뷰 후에 다음 인터뷰들을 건너 띄고 바로 다음 주에 오퍼 레터를 보내왔다.
식당 알바를 하면서 얌전히 이 시기를 버티기를 기대하고 있던 사람에게 여러 회사들에서 러브콜이 왔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나를 눈에 띄는 후보로 만들어주었는지에 대해 되돌아봤다.
Candidacy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소셜미디어, 네트워킹, 태도, 관련 경력 등이다.
일단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상황이 어떻든 아무 경력도 없는 entry-level 주니어가 더 이상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가 처음 부트캠프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을 때에 비해서 너무나도 수월한 경험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2023년 부트캠프를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랄 뿐이다.
포트폴리오는 부트캠프를 처음 졸업해서 만든 사이트를 그대로 사용했다. 기본적인 뼈대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케이스 스터디들을 위주로 손을 댔는데, 기존에 있던 케이스 스터디들을 더 깔끔한 이미지로 바꿔 올리고 케이스 스터디의 수를 채우기 위해 올려놨던 것들은 과감히 지워버렸다. 새로 올라간 케이스 스터디들은 디자인 외에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어떤 챌린지가 있었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썼고, 케이스 스터디에 올린 부분 외에도 아직 론칭이 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어떤 식으로 참여했는지 추가적으로 써서 올렸다. 당연히 NDA(Non-Disclosure Agreement)에 걸리는 내용들은 빼고 전 매니저에게 상의한 후 허가받은 내용들로만 구성했다. 케이스 스터디의 내용들은 아무리 팀과 같이 한 작업이라도 최대한 내가 했던 업무 위주로 구성하는 게 좋고 가능하면 나의 디자인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정확한 데이터와 metric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About 섹션에 있던 내용들도 내가 앞으로 커리어를 개발하고 싶은 방향에 초점을 두어 다시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Mid-level 혹은 senior 레벨 타이틀을 원하고 있던 상황이라 리더십과 멘토링에 많은 포커스를 두었던 것 같다. 내 포트폴리오는 https://www.junejung.design/ 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더 사소한 내용으로는 UX 디자이너로서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내 사이트의 UX가 좋지 않으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Squarespace 플랫폼의 템플렛을 사용한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 불가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비주얼 적으로는 조금 지루해 보이더라도 글이 더 잘 보이고, mobile responsiveness가 어떤지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내 포트폴리오는 일주일 동안 성급하게 만들면서 핸드폰에서 웹사이트를 열면 텍스트가 살짝 엇갈리는 현상이 있는데, 가능하면 이런 문제점도 잡아주는 게 좋다. 깔끔하고 읽기 쉬운 포트폴리오이기만 하면 화려한 디자인이 없어도 충분하다. 대부분의 hiring manager와 recruiter들은 휴대폰 화면으로 포트폴리오를 본다는 데이터가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가능하면 데스크톱보다는 모바일 유저들을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 디자인을 점검하면 도움이 된다.
처음 시작하는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가끔 항상 보이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Double diamond처럼 잘 알려진 디자인 프로세스라던가, UX와 UI를 설명하는 글 등이다. Double diamond라면 디자인 일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다 들어본 내용인데 굳이 포트폴리오에 언급할 필요가 없다. 비슷한 느낌으로 UX와 UI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은, 독자들이 이미 아는 내용을 다시 설명하는 것인데 의미 없는 일이다. 내가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hiring manager라고 생각하고 포트폴리오를 리뷰하면 편하다. 내 포트폴리오를 하나의 프로덕트로 보고 나의 유저, 즉 hiring manager를 대상으로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이력서는 당연히 관련 경력이 많으면 더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metric을 이용해서 내가 회사 내에서 어떤 impact를 끼쳤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이때는 정확한 수치화된 데이터를 사용하는 게 좋다.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디자인하고 론칭했다 “라고만 적는 것보다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을 처음 구상부터 론칭까지 도맡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유저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회사에는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숫자를 적는 게 좋다. 새로운 디자인이 implement 된 이후로 conversion rate이 200% 증가했다거나, 3,000명이 넘는 유저들이 세금 공제 혜택을 받게 도왔다는 것처럼 실질적인 숫자와 데이터를 이용하면 내가 얼마나 좋은 디자이너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이 알아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구글의 xyz resume format이라고 잘 알려져 있는데 내가 성취한 것(x) + 숫자화 된 결과(y) + 나의 어떤 스킬을 이용해서 이 성취를 이루었는지(z)의 형태에 맞춰서 불렛 포인트를 쓰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도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링크드인에 자주 관련 분야에 대해 글을 올리거나 공유하고, 주변에 일을 구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보자. UX 경력만 따지면 고작 2년의 경력이지만, 그간 많은 사람들의 취업 준비를 도와주고, 좝 포스팅이 보이면 내가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를 반복했다. 인터뷰 준비도 도와주고, 30분 정도의 짧은 coffee chat을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거나 UX로 커리어를 전향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주었다. 내가 도움을 준 만큼 또 도움을 받은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그렇게 도와주고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취업 준비를 할 때에 정말 큰 힘이 되었다. 타고난 인맥이 없던 나 같은 사람이 네트워킹을 빠르게 키워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먼저 나서 도와”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취업 준비를 다시 한다는 글을 올리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회사 구인 공고를 살펴보라며 연락을 주셨다.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도 계속 내가 도울 수 있는 최대한 모든 사람들을 계속 돕겠다는 새로운 다짐의 기회가 되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회사에서 인재를 뽑을 때는 하드 스킬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있는 팀과 얼마나 잘 어울릴까도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Culture fit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사람들과의 팀워크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힘든 일이 있거나 conflict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 나의 성격과 성향이 회사의 컬처와 얼마나 어우러지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아무리 내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팀원과 계속해서 갈등을 조장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내 갈길만 가는 사람은 일을 구하기 힘들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하드 스킬보다도 오히려 이런 소프트 스킬이 판단하기도 더 힘들고, 크게 봤을 때는 더 중요한 스킬이다. 나의 culture fit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수단 중에 하나가 앞서 말한 앞장서서 도와주는 것이다. 멘토를 찾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멘토링을 제공하고, 인터뷰를 하기 전 나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당연히 회사는 나에 대해 팀플레이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팬데믹이 끝나면서 그간 모든 회사들이 앞다투어 디자이너들을 뽑던 시간도 같이 끝이 났다. 지금도 링크드인에 들어가면 직장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구직을 희망하고 있다. 모두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다. 심지어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취업난과 올라간 물가에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나 역시 이런 상황에 지레 겁을 먹고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반은 포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일을 구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사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거나 이력서를 고치는 게 아니다. 스스로와의 정신 싸움이다.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imposter syndrome에 사로잡혀 매일같이 “Am I good enough?”라고 되묻는다. 일을 구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되는 구직자로서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힘겹기만 하다. 직장에서의 나의 위치와 상관없이 나는 충분히 자격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생산하고 공급하지 않으면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 모든 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construct일 뿐이다. 나의 연봉, 나의 직업, 타이틀, 이력서의 경력한 줄에 나의 가치를 평가하고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동은 정서적 자살행위이다. 취업 준비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상처와 두려움을 보듬어 주면서 하루빨리 많은 구직자들이 취업에 성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