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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정 Aug 17. 2023

돈이 되는데 재미없는 일과 돈이 안되지만 신나는 일

꼭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해?

돈이 되는데 재미없는 일과 돈이 안되지만 신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특히나 약간의 집중력 장애를 갖고 있는 나 같은 경우는 하루가 다르게 관심사도 변하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아 거의 평생을 이 고민을 하면서 지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건 재밌긴 했지만, 직업으로 삼자니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했고, 또 돈이 되는 일을 찾아 헤매다 보니 내 삶의 활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 침울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기꺼이 내 시간을 써서 할 수 있는 일과 그래도 당장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하는 일 중에서 갈등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깊게 고민해 봤던 문제일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는 그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미대 대학원 준비를 하고, 테크놀로지 쪽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그냥 매 순간 자신이 지금 필요하다고 하는 일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렌트비를 내야 하고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면,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한 공부를 하고 인터뷰 준비를 하고 취업을 하는 것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어느 정도 일을 하면서 여유가 생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 일을 하면 된다. 돈을 좇아 시작한 일에 관심이 뚝 떨어져서 다른 일을 찾아보던 중 UX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일을 시작하다 보니 회사 밖에서 너무 즐거운 취미들을 다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유리 공예를 하는 분, 스쿠바 다이빙을 즐기시는 분, 클라이밍, 등 다들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는 모습을 보니 나의 작품들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을 한다고 무조건 구석에 처박아두기만 할 일이 아니었다. 당장 회사에서 퇴근한 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그 생각을 하다가 다시 대학원 준비를 하겠다는 결정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막걸리 만드는 취미에 제대로 빠지면서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종류의 막걸리를 집에서 만들었다. 한국에 놀러 갔을 때도 양조장 두 군데를 방문하고, 미국에 돌아올 때는 짐가방 한가득 술꾼처럼 막걸리 병을 싸들고 돌아왔다. 내 술을 한 번씩 맛본 친구들은 양조장을 차리라고 나를 부추겼고, 요리를 좋아하고 미식가인 남자친구도 막걸리 사업을 해보라고 은근히 부채질을 했다. 양조장을 진짜 시작해 볼까 진지하게 한동안 생각해 봤다. 하지만 술을 만들면 만들수록, 술을 만드는 행위와 철학이 좋아서 만드는 것이지, 돈 벌기 위해 만드는 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술 만드는 사람치고 술 마시길 안 좋아한 다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많이 마셔보고 즐겨봐야 더 좋은 술도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은 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셔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그닥 안 마시고 싶다가 내 대답이었다. 그래서 잠시 흥분했던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술은 재미있는 취미 정도로 남겨두기로 했다.

하지만 술을 만들면서, 막걸리와 어울리는 각종 음식과 반찬들, 먹을거리들도 많이 만들게 되었고, 몇 달에 한 번씩 친구들을 집에 잔뜩 불러놓고 막걸리 테이스팅 비슷한 행사를 한 번씩 하면 그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다. 한 번은 막걸리 테이스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집에서 디너파티를 열었다. 원래는 친한 친구 다섯 명이서 가볍게 하려던 이벤트였는데, 친구의 친구와 코워커들한테 까지 소문이 나서 열세명의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직접 빚은 일곱 가지 종류의 막걸리를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막걸리를 곁들일 안주로는 보쌈과 부추전, 홍합탕, 닭갈비찜,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와 동치미 등을 내어놓았다. 아주 클래식한 한국식 식단에 살짝 색다른 보쌈 고기를 선보였다. 손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그날 저녁 행사에 감동받은 손님들이 이제는 매달 돌아가며 디너파티를 하는 나름의 전통도 생겼다. 요즘에는 입 소문이 나서 나름 귀여운 스케일의 장사(?)도 하고 있다. 부엌을 고치러 왔던 컨트랙터 한분은 내 흑미 막걸리를 맛보시더니 자기네 집에서 병을 가져와서 20불을 내고 한 병 사가셨고, 농장을 운영하시는 내 예전 회사 보스는 닭장에서 갓 꺼내 온 달걀 몇 판과 막걸리 한 병을 교환하자며 물물교환도 성사되었다. 이 모든 게 너무 즐거울 뿐이다.


하고 싶은 데 돈이 안 되는 일과 돈은 되는 데 지루한 일,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느라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고 보라고 하고 싶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두고 내 앞에 있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천천히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 즐거운 일, 돈 되는 일을 다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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