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보다는 죽음이 가까워지는 시간

남은 자들의 이야기

by namoo

그러니까 결국 우리의 남은 날들은 우리의 반경 안에 있는 누군가의 떠남을 경험하고 나서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것이다.


만 구십 하고도 사 세. 무겁고 긴 인생이었다.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촘촘히, 우리가 역사과목에서 몇 줄 글로 읽었던 다른 이름을 내 건 ‘시대’를 살아내셨으니... 아흔의 생신을 지나고 나서는 언제라도 올 수 있는 부고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나치며 살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전화 통화를 했으나, 점점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떨기 시작한 성대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성큼 다가온 시간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 여름 그토록 꼿꼿하게 지탱해 오던 몸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그분의 존엄은 병실에 갇힌 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오랜 시간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고 믿었지만 중환자실에서 부침을 계속하던 아버님의 상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려내는 어지러운 그래프였다. 그리고, 숨이 멎고야 마는 그날이 왔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안간힘을 쓰던 병원에서 장면을 전환하는 데에는 장례식장으로의 몇 걸음만으로 충분했다.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상복을 갈아입으며 그렇게 순식간에 환자 가족에서 유족으로, 병실에서 장례식장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애도의 시간은 그저 분주했고, 긴 인생을 살다 간 어른에 대한 추억, 오랜만에 만난 살아있는 자들의 삶의 이야기들로 인해 부재의 공백은 쓸쓸하지 않게 제법 소란스레 채워졌다. 다행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아버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분이셨다. 그렇지만, 어리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될, 여든을 넘긴 분이셨다. 갑자기 무너지시는 사돈어른의 시간을 누구보다 이입하여 보셨던 터라 아버님의 부음이 아버지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십 년이면 충분히 내 차례일 수 있음을 나이 차라는 숫자가 보여준 사건일 테니. 그렇게 여느 자식만큼의 깊은 애도를 마치고 난 아버지의 모습은 쓸쓸하기만 했다. 그런 아버지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는 이별이 벌써부터 실감되는 몹쓸 괴로움을 몰고 왔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다짐이라도 한 듯 이제까지 조심스러워 꺼내지 않던 떠나는 순서에 대해, 남겨질 엄마에 대해 말씀을 시작하셨다. 남은 사람들 중에 나이 많기로는 내가 네 번째야, 하시며 아버지의 인간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떠날 순서를 가늠하시곤 했다. 그 소리는 매번 이별을 선언하는 듯해서 칼날처럼 날카롭게 내 마음을 베곤 했다.


어느덧 나도 ‘반 백’이라 불리는 나이에 들어선다. 누군가 조금 정중히 ‘반 세기’라 불러준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마음도 몸도 급했던 시간을 지나고, 이제는 꺾이고 빼앗기고 놓치고 스스로 놔야 하는 것들이 황급히 줄을 서기 시작한다. 그제야 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젠 떠나는 것이 나이 순이 아닌 것 정도는 헤아릴 노련함도 생겼다. 그게 슬픔을 가져다준다. 남겨진 자의 슬픔이 떠난 자의 안타까움 보다 크다는 것을 알기에. 구십 일 세의 어머님은 남겨진 자의 슬픔을 끌어안은 채 의연히 하루하루를 버텨 내신다. 우리의 마지막을 우리 손으로 정할 수 없는 데에서 나는 겸손을 배운다. 그리고, 쓸쓸한 빛을 감추고 웃음으로 주름진 얼굴을 아름답게 펴는 어르신의 마지막까지 힘을 다하는 모습에 숙연해진다. ‘반 세기’쯤 살아낸 사람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다.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으로 내 오십을 시작하기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