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중년의 시작을 선언함

by namoo

번아웃, 우울감, 불안장애, 갱년기 증상 등 수많은 감정과 증상에 섬세하고도 전문적인 이름이 붙는 시대가 되었다. 조밀한 체에 거르듯 덩어리진 감정을 그 틀에 넣어 보았지만, 복잡한 감정은 오히려 더 소란스럽게 튀어 올라 그 이름은 아니라고 아우성치는 듯하다. 지난 가을부터 무언가 불만스런 감정들이 겹겹으로 쌓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환멸의 감정으로 끝난다. 내 탓으로 돌리는 듯한 일에는 억울함이 들고, 예의를 갖추어 의사를 표현한 것에는 변명만을 돌려받아 수치와 좌절감을 느꼈으며, 애를 쓸 수록 진심은 가 닿지 않는 듯했다.


그러던 중에 20년도 넘게 한 분야에서 일하던 J가 이직을 준비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오히려 자기의 길을 좁힌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더구나 전문성이 축적될 수록 순발력과 적응력과 자신감은 무뎌졌다. 전문성은 나이와 나란히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 연봉, 좁아진 전문 분야로 인해 그 궤도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나면 순식간에 선택의 폭은 줄어든다. 그게 전문직 중년의 일반적인 비애이다.


늦은 밤, 나는 J가 새로운 직장에 지원할 이력서와 커버 레터를 다듬고 있다. 그곳은 누군가의 소중한 일터이겠지만, 우리가 아직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탓에 J가 그 직무에 맞는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나열하고 있는 단어들이 서글프기만 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에 내가 적격자라고 채용 관계자를 설득해야 하기에 새로 쓴 이력서에는 지금껏 그의 시간들과 함께 쌓아 온 성취들이 너무도 많이 지워졌다. 한국에서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지워버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이민자의 삶.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결국 어느 날인가는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이 땅에 남아 살아가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용기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잃어버린 마당에 꺼내 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나이듦의 쓸쓸함만을 느끼고 있으니. 이제 막 이민을 온 것처럼 또 한 번 어제의 나를 지워내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껏 이 낯선 땅에서의 삶을 위해 수고한 J의 것이기에 더 슬퍼지는 것만 같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길을 나섰던 그의 뒷모습이 안스러워 마음이 저렸던 날들이 쌓이는 동안 그는 더 늙어버렸다. 더구나 나는 그를 붙들고 세울 수 있는 제대로 된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해서 더 서글펐다. 이 현실이 중년의 시작을 선언하는 듯하다.


비뚤어지기 시작한 마음을 절제하려고 하는 중이다. 조용히 혼자 있을 때면 더 소란스러워지는 생각들, 쉽게 잠재워지지 않는 생각들에 치인다. 오늘은 종일 비가 왔다. 수년 전에도 이런 겨울이었다. 며칠동안 따뜻했던 영상의 날씨에 때이른 목련 봉우리가 오르기 시작했다, 걱정스럽게도. 목련 탓은 아니지만 견뎌야 할 혹한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어쩌나 싶어 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