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이 아닌 스펙트럼으로 보는 육아의 행복

광의와 협의, 그 사이에서 찾은 나만의 의미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올립니다.

디자이너로, 기획자이자 리서처로 생활하는 하루 일상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며, 육아라는 세계에 대한 글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비슷한 고민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길 바라며.




육아로 시작하는 나의 하루


아침 등원길에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다 보면, 꼭 하나 빠트린 게 생각나는 것 같다.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했는데도, 아침의 한 시간은 여유를 갖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작디작은 어린이집 가방에는 수저통과 물통, 기저귀가방, 그리고 작은 하원용 간식 꾸러미가 들어간다. 벌써 기관 생활을 한 지 1년이 넘은 아이는, 고맙게도 울음 없이 손으로 빠빠이를 하며 아빠엄마와 잠시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제야 다시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가면서 페르소나를 바꾸어 직장인의 모습으로 출근을 한다.


맞벌이라는 단어로는 정리되지 않아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기에도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육아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하나둘씩 생겨난다. 랜선으로 친분을 쌓은 오픈채팅방에는 여러 가지 육아 고민을 가지고 서로에게 조언을 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최근 유행하는 서열 밈 시리즈 중에서는 육아의 힘듦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은 영상이 있다.

육아 힘듦 서열 (출처:인스타@kk_j_r_2308)

영상에 나오는 여러 가지 재접근기, 잠태기 등의 어려움은, 경험해 본 사람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만큼, 육아의 어려움으로 손꼽히는 내용들이다. 소위 말하는 "잠잘 때가 제일 예쁜" 아기들은 발달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과정은 아이가 갑자기 큰 성장을 겪고 있거나, 인지적으로 발달해서 자아가 생겨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하루 일과에 지쳐서 루틴 한 삶을 지향하고, 효율적인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은 부모에게는 해당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조금 적응했다 싶으면 그새 자라서 또 다른 성장 과정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나도 모르게 지친 몸과 잃어버린 마음의 여유로 인해 아이의 성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아이가 잠들면 미안함에 등을 한번 더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육아가 힘들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아닐 테지만, 요즘 특히 결혼과 육아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하나의 일반화된 모습으로 인해 "육아는 힘들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다채로움 모습이 가려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


슈카월드에서는 최근 유명한 독일 사회과학 유튜버인 쿠르츠게작트(Kurzgesagt)의 영상을 리뷰하면서 낮은 출산율로 인해 대한민국에 닥칠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해당 영상의 결론은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슈카월드에서 강조한 것은, 지나친 경쟁 속에서 수도권으로 쏠리고, 대학 입시를 위해 어린 나이부터 사교육의 전쟁터로 치열하게 들어가는 사이에, 우리가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 그리고 사랑이라는 가치였다.


출처 : 슈카월드


개인주의가 한국보다 더 강하다고 알려진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가족이라는 가치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연말에는 긴 휴가를 쓰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결혼식에는 하루 종일 함께 하며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고 그동안의 시간에 감사하는 편지를 낭독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집단의 개념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고 알려진 것에 비해, 가족의 의미는 세대가 지날수록 더 옅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Z세대가 부모와 친밀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보긴 하지만, 가족을 구성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본인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1인 가구와 독립된 성인들에 더 포커스가 맞추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함께 꾸는 꿈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지나 단단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컬러 스펙트럼 그 어딘가에서


디자인을 하다 보면 가장 자주 보게 되는 화면이 바로 색깔 스펙트럼이다. 가장 적합한 색상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고민하기도 하고, 필요할 땐 그레이스케일로 흑백의 정도를 지정하여 적용하기도 한다.

Color Palette

육아를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 내가 마치 흑백으로 그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 고유의 모습보다는, 부모의 모습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결정들을 잠시 미뤄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이 육아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만드는 뿌리가 되기도 한다.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거나,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삶이 쉽지는 않아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금쪽이로 분류되어 소개되는 솔루션이 필요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미소로 오늘의 피로를 씻어내려가기도 하고, 등원길에 같이 흥얼거리는 노래로 하루를 밝게 시작하기도 한다.


감정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이름이 있는 것처럼, 육아에도 여러 가지 컬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을 매일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배우고 있다. 오늘 내가 어린이집 앞에서 배웅했던 아이는 몇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성장해서 나를 만나줄 것이고,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한 뼘씩 성장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육아는 커리어의 변동, 하루 일과의 변수, 그리고 가사 노동까지 포함하게 되어 다양한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밥을 준비하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이 육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배워가면서, 어디까지가 육아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만을 위해 만들었던 이전의 라이프스타일 안에 아이라는 새로운 주인공을 계속해서 초대하고 함께 만들어가며 변화를 의지적으로 경험하는 것, 그것이 육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색깔이 이전과는 많이 다를 수 있지만, 처음 느껴보는 색상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으로 물들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도 한 손에는 출근 가방을, 다른 손에는 어린이집 가방을 야무지게 챙기고 아침을 시작한다.



신이 있다면, 신은 우리에게 잠시 온 영혼을 고갈시키듯이 사랑하라고 아이가 있는 한 시절을 주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사랑할 시절을 가지라고, 삶의 가장 깊은 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오라고 말이다.

- [그럼에도 육아] 정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