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디자인, IT계에서는 서울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더욱 큰 것 같다.
많은 친구들이 농담으로, 때로는 진심으로
'얼른 서울로 와.' 라는 말을 수시로 건네온다.
이 말을 정말 너무너무 많이 듣는다.
개중에는 내 귀에 콕콕 꽂혀서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도 있다.
대구에 있으니까 이것도 모르지,
대구에 있으니까 너 사상이 그렇게 된거 같아 (가부장적으로 바뀐거같아)
대구에 있더니 너 이상해졌다 (빨간물 들었다)
나는 예전과 비슷한데, 나는 여전히 나인데 대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필터가 한겹씌워진 느낌이 든다.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서울에서 대구로 귀향했다함은
폐배주의에 물들었다
더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안일하다
트렌드에 뒤쳐졌다
열정이 식었다
보수적이다
이런 말로 치환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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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예전과 같은 멋지고 간지나는
최신 트렌드는 모를지언정
나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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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의 크기는 작아지지 않았다.
방향이 바뀌고, 모양이 바뀌었을 뿐.
오히려 더 커졌다.
'일'에 관한 꿈만 있었던 과거에 비해
'삶'에대한 총체적인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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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꿈이 바뀌었다.
<과거 : 서울>
수원에서 수서역까지 편도 1시간 30분~2시간씩 출근... 하루 약 4시간.
미칠거같다. 서울로 이사가야겠다.
헐 집값 왜이래? 전세 그만두고 뭐라도 하나 사야겠다.
한..5억정도 모으면 사나?
(집값 검색해본뒤)
하.. 5억 모으기도 힘든데, 5억있어도 서울에 집 못사네.
5억있으면 수원에있는 아파트사서 여전히 1시간 30분씩 출퇴근해야하네 ㅡ ㅡ
생각을 바꾸자. 차를 살까? 한달에 얼마씩 갚아야하지.
아 그냥 눈을 확낮추자. 반지하 전세라도 들어가자.
헐. 회사근처 반지하 전세가 5000이 넘네... ㅡ ㅡ
1억 5~8천정도 있으면 30분 거리에 그나마 꺠끗한 오피스텔 전세는 되는구나.
<현재 : 대구>
대구 중심, 초역세권 오피스텔 로얄층.
집에서 회사까지 DOOR TO DOOR 15분. 물론 걸어서.
5억있으면 럭셔리한 집까찐 아니더라도 상당히 좋은 30평대 아파트.
출근거리 편도 20~30분정도걸리는 곳까지 눈을 돌릴경우 5억에 40평대이상도 가능.
신축분양권이 3~5억대. 피가 붙어도 6억. (일부 죽전,수성같은 미친곳 제외)
아침마다 겪어야 했던 지옥철. 택시를타도 굼벵이처럼 막히는 도로.
매연때문인지, 습기또한 대구 뺨때리게 높았다.
정말 기본적인 의식주, 생존권에서부터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았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기본권에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출퇴근시간이 극도로 단축되니
남는 시간은 운동을하고 취미생활을하고 책도읽고 친구도 만난다.
서울에서라면 감히 꿈도 꾸지 않았던 생활이다.
집의 위치도, 집의 컨디션도, 집세도, 회사와의 거리도, 여가시간도, 가족도...
아무것도 포기할필요가 없는 곳, 나에게는 그곳이 대구다.
서울에선 나 자신이 빠르게 발전하기는 했다. 다들 미친듯이 전력질주한다. 한주가 머다하고 스터디에, 컨퍼런스에, 세미나에, 박람회에.
그 모든 것을 '난 이런 것을 즐겨'라는 미명하게 '기왕이면 즐겁게' 해내려고 하지만 일도 취미도 인간관계도 모든것이 디자인이다보니 빠르게 번아웃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대구에선 확실히 '서울'물이 빠지긴 했다. 다들 아무것도 안한다. 스터디, 세미나 하고싶어도 없다. 용기내서 직접 열어도 올 사람이 없다. 오는 사람들의 학구열이나 자기개발에대한 집념도 솔직히 서울보단 약하고. (나도 그렇게 됐고.) 도태되는 느낌이 든다. 맞다. 실제로 어떤 면에선 도태가 될것이다. 그러나 그건 삶을 '일'이라는 단편적인 한 면에서 봤을때만 그렇다.
한동안은 대구에서 없는 세미나, 워크샵, 인맥을 어떻게든 매꿔보리라 부단히 움직였지만 '없다' 그런게 '없어'
그렇게 '없음'당하고 나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과 아무 상관도 없는 취미들. 가족과의 시간들. 미뤄뒀던 친구들과의 '쓸데 없고 영양가 없는' 모임들
나의 개인적인 기준에서, 나는 이게 더 인간다운 삶이라고 느껴진다.
이런 삶을 위해서라면 나는 좀 덜 성장해도 좋았다.
왜,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미친듯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나는 일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나의 젊은 20,30대를 가난하게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겁쟁이고 욕심쟁이라서
더 열심히해서 빨리 발전해서 서울의 주류사회에 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눈을 낮추고 내 몸과 마음이 쉽게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대구가 내게 가지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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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로 도태되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예전의 나를 보던 관점에서 나를 본다면
나는 도태되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수준부터가 차이나니까 어쩔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른 능력이 키워졌다.
사냥으로 치자면 나는 맘모스 잡는 능력은 이제 없다.
이제 맘모스 잡으러 나가라고 해도 무서워서 못잡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신에 다람쥐, 참새, 토끼 수십마리를 한번에 잡는다.
수백 수천건의 '작은' 케이스에대한 경험을 쌓았다.
수십여명의 소상공인, 사장님들과 함께 호흡하며
나는 여러번 간접적으로 창업하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회사에 오기 전까지는
창업이라는 것을 맹세코 생각해보지 못했다.
무조건 회사에 취업, 대기업에 취업. 이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간지나는 회사, 누구나 다 아는 회사에 취업하는 게 최고의 영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을 만나며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조금 바뀌었다.
후줄근하고 짜쳐보여도 나의 일을 하는 맛에대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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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외에는 꿈이 없던 나에게
나의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것이 대구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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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이 글은 자기합리화가 맞을 것이다.
변명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실컷 그렇게 보라고 말해주고싶다.
나는 찌질하기 때문에, '안주'해도 되는 도시에서 느리게 살고 있는게 행복하다.